104. 내가 잘하는 탁구? 내가 하고 싶은 탁구?
“어떻게 해서든 공이 넘어온다니까.”
백 쪽 깊숙이 드라이브를 걸었는데 내가 그 공을 상대의 화 쪽으로 빠르게 빼는 바람에 실점한 고수님이 맥이 빠져 내뱉는 말이다. 다른 회원들에게도 “수비가 좋다. 공이 계속 넘어온다.”등의 말을 종종 듣는다. ‘이건 못 막겠지? 이건 결정구야’ 하는 눈빛으로 드라이브를 걸었는데 별 어려움 없이 받거나 그것도 모자라 드라이브를 맞받아치는 역공이라도 하면 상대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애는 뭐지?’라는 눈빛으로 황당해한다. 멘털이 흔들리는 게 보인다.
그렇다. 재수 없게 들리겠지만 부수에 비해 수비가 좋은 편이란 걸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나서 수비가 좋은 게 아니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일주일에 두 번 7분씩 레슨 받는 집 앞 여성 복지 센터에서 탁구를 시작했다. 말 그대로 나라에서 지원하는 생활체육 공교육 시스템이다. 레슨 시간이 짧으니 뚜렷한 변화도 없고 라켓만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 느낌? ‘제대로 배워보자’라는 마음에 사교육 기관(?)인 사설 탁구장으로 옮겼다. 그곳엔 이미 1년 전부터 그 탁구장에 둥지를 틀고 있던 이웃 언니들과 또래 몇이 있었다.
그녀들과 함께 탁구를 배우고 6개월이 지났을 무렵, 그녀들 중 세 명이 새로운 코치에게 배우겠다며 탁구장을 떠났다. 그중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함께 가자고 제안해 얼떨결에 그녀들을 따라나섰다. 구력으로 치면 셋 중 막내로 1년 차이가 난다. 탁구를 처음 배우는 시기였기 때문에 그 당시엔 1년 차이도 엄청난 차이로 느껴졌다. 어찌 되었든 구력이 나보다 1년 많은 선배 언니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코치는 연습 시스템을 알려주고 둘씩 짝을 지어 연습하게 하고 파트너를 바꾸어 연습하게도 했다.
사람은 자연스럽게 서열정리를 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는 걸까? 아니면 본능적으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일까? 쇼트 하나, 화 하나 연결 연습을 하는 경우 한 사람은 계속해서 쇼트로 대줘야 한다. 나는 내가 연습하는 것보다 대 주는 게 마음 편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래야 될 것 같았다. 공격보다는 수비가 편했다. 스매싱을 하는 것보다 스매싱을 받는 게 편했고, 공격하라고 하고 쇼트로 대 주는 게 편했다. 세 명 모두 나와 연습하는 걸 좋아했다. “다 받는다니까. 어떻게 해서든 넘어온다니까.” 그녀들은 아낌없이 칭찬해 주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부수에 비해 수비가 참 좋아요”라는 말을 많이도 들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법. 그렇게 1년 반을 그녀들과 연습하면서 수비 실력은 그야말로 일취월장했다.
내 마음 편하자고 한 행동이 오히려 수비 실력을 키우다니! 세상사 다 나쁜 것도 없고 다 좋은 것도 없다더니 그 말이 맞는 듯하다. 세계적인 탁구 선수 마롱도 어느 시절엔 포핸드 드라이브를 미친 듯이 하고 어느 시절엔 백 드라이브를 미친 듯이 했다는데 이 시절의 나는 쇼트를 미친 듯이 대 주었다. 부수에 비해 수비가 뛰어난 자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1년 반을 그녀들과 보낸 후 각자의 이유로 우리는 흩어지고 나는 원래의 탁구장으로 컴백했다. 수비에 진력이 났는지 아니면 수비만 하는 탁구가 징글징글했는지 예전에는 들리지도 않았던 관장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하늘 씨 언제까지 수비만 해서 점수 딸 거야? 공격해서 점수를 따야 실력이 늘지.” 이때부터였나 보다. 사람이 살면서 평생 해야 할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듯 공격의 총량을 채워보겠다는 욕망이 활활 타오른 것이. 공격형으로 바뀌고 싶었다. 수비도 좋지만 상대의 실수에 기대거나 상대의 컨디션 난조로 게임에서 이기기라도 하면 실력이 아닌 운에 의해 이긴 것 같아 찜찜했다. 수동적으로 탁구를 치고 있는 것 같은? 수비를 잘해 상대가 못 치고 실수하는 거에 희열을 느끼는 기질이라면 성향에 맞을 텐데 그런 기질이 아니었나 보다.
돌아서 상대의 백 쪽과 화 쪽으로 스매싱하는 연습과 레슨을 병행하면서 닥치고 공격 스타일 즉 닥공 스타일이 되었다. 마치 1년 반 동안 수비만 한 게 억울했는지 아니면 원래 기질이 공격 스타일이었는지 헷갈릴 정도로 기회만 있으면 스매싱을 날렸다. 불나방이 되었다. 스매싱으로 공격해 한 점이라도 따면 그게 뭐라고 기분이 째졌다.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다. 뭔가 자기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느낌에 해방감까지. ‘그래. 난 원래 공격수였다고.’ 스스로를 공격수라 부르며 좋아라 했다. 공격하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
그러나 다 가질 수는 없는 법.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무조건 공격으로만 점수를 내려고 하니 미스가 많아졌다. 줄곧 스매싱만 하니 체력소모도 커서 쉽게 지쳤다. 공격도 하면서 수비도 하면 좋으련만 주로 공격을 하다 보니 수비하는 법이 퇴화했다. 대야 하는 순간에도 공격하려고 쳐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그렇게 실수가 많아도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든다. 하고 싶은 탁구를 하니까. 원하는 스타일의 탁구를 하니까. 실수는 앞으로 줄여나가면 되니까.
이렇게 변해버린 내게 한 고수님이 이런 말을 건넨다. “사실 나는 하늘 씨의 예전 탁구 스타일이 좋아요. 그 부수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수비력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 수비력을 더 발전시켰으면 지금보다 훨씬 실력이 올라갔을 텐데 내가 다 아쉽네요. ” 아! 내가 그렇게 수비를 잘했던가? 실력이 더 나아질 수 있었다고? ‘수비 전형으로 다시 바꾸어 볼까?’ 잠시 귀가 팔랑거렸다. 공격이 다 막히고 그나마 수비로 점수를 한 점 얻게 되면 '잘하던 수비전형을 발전시켜야 했나?' 후회도 많이 했다. 그러나 결국 좋아하는 걸 하기로 했다. 불나방으로 살기로 했다. 잘하는 탁구보다 하고 싶은 탁구를 하기로.
존 스튜어트 밀의 책 <자유론>에 나오는 이 문장을 응원 삼아 말이다. "모든 인간의 삶이 어떤 특정인 또는 소수 사람들의 생각에 맞춰져 정형화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누구든지 웬만한 정도의 상식과 경험만 있다면,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 자체가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