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열정은 안 된다. 한순간 확 사그라지니까. 제일 중요한 건, 당신의 열정을 경계하는 것이다. 지나친 열정은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 있어서 위험하다. 열정은 자기를 이용하라고 워낙 큰 소리로 요구하기 때문에 도저히 단번에 만족시킬 수가 없을뿐더러 갈수록 더 요구가 많아진다. 처음에 너무 많이 착수하지 말고, 아주 작게 시작하라.” 아놀드 베넷의 책 <하루 24시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나오는 문장이다.
지나친 열정 때문이었을까? 어제는 시체처럼 약 먹고 자고 다시 약 먹고 자기를 반복했다. 피로가 얼마나 쌓였는지 자고 일어나도 계속 잠이 쏟아졌다. 결국 침대와 한 몸으로 하루를 보냈다. 야심 차게(?) 계획한 새해 목표를 마치 미션처럼 수행하다 탈이 나도 단단히 난 것이다. 아놀드 베넷의 말처럼 “처음에 너무 많이 착수하지 말고 아주 작게 시작” 했어야 했는데 너무 많이 시작한 것이 문제였다.
1월 첫째 주에서 셋째 주까지는 새해의 열정이 활활 타오르는 시기라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뻗치다 못해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차 안에서 탁구장에 가서 뭘 할지 말하면서 가기”와 “탁구 로봇으로 포핸드 드라이브 코스 가르기 연습 10분, 백 드라이브와 포핸드 드라이브 불규칙 연습 10분”이 올해 목표다. 새로운 루틴이라 일상에 들이기 힘들겠지만 어차피 계획한 거 새로운 습관이 자리 잡는 데 걸리는 기간인 평균치인 66일(출처:<원씽>)동안 매일 해 보리라 마음먹었다.
첫 번째 목표인 “차 안에서 탁구장에 가서 뭘 할지 말하면서 가기”는 처음엔 무척이나 낯설고 오글거렸다. 혼잣말하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새해 첫 달인 1월의 힘(?)인지 어느새 오글거림은 사라지고 급기야 “파이팅”이라는 구호도 외치고 있었다. 전에는 음악이나 유튜브 영상을 들었는데 지금은 아무런 잡음 없이 오로지 해야 할 일만 생각하며 탁구장으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두 번째 목표인 “매일 탁구 로봇으로 포핸드 드라이브 코스 가르기 연습 10분, 백 드라이브와 포핸드 드라이브 불규칙 연습 10분 연습”이 문제다. 의욕이 넘실대던 첫 3주간은 잘 지켰다. 달력에 엑스 자를 빨간펜으로 그려가며 성취감을 만끽했다. 4주 차가 접어들자 매일에서 주 2-3회로 횟수가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이유는 두 가지. 다른 것들에 밀려서이기도 하고 체력이 되지 않아서 이기도 하다. 레슨 받은 날은 체력이 소진되어 다시 20분 동안 연습할 기력이 없었다. 회원들과 연습을 길게 한 날은 또 그날대로 로봇을 붙잡고 연습할 체력이 남아 있질 않았다. 체력 안배를 해야 하는데 할 것 다 하고 목표한 연습을 하려고 하니 그게 되겠는가?
결국 회원들과의 연습 시간을 줄이고 ‘집에 가기 전 로봇과 연습해야지’라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번엔 늦은 시간에 로봇을 붙잡고 연습하는 회원이 있어 연습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변수가 속출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목표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에 4주 차부터는 몸이 힘들어 부대끼는데도 탁구로봇이 비어 있으면 얼른 들어가 꾸역꾸역(?) 연습을 하다 그만 몸살이 나고야 말았다.
에이! 미련하기 짝이 없다.
“일정의 노예가 되지 말라. 계획표가 사람을 질질 끌고 다니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계획을 적당히 존중하는 것, 과하거나 부족함이 없어 융통성을 발휘하며 생활하는 일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는 아놀드 베넷의 말처럼 나야말로 일정의 노예가 되어 계획표에 의해 질질 끌려다니고 있었다. 몸이 신호를 보내와도 목표니까 지켜야 한다는 융통성 제로의 마인드로 꾸역꾸역 일정의 노예임을 자처했다. 그러니 탈이 안 나고 배길 수 있겠는가?
<원씽>의 저자인 게리 켈러와 제이 파파산 역시 “한 번에 하나씩 습관을 들여라. 한 번에 좋은 습관을 두 개 이상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 위대한 성공 거둔 사람도 초인은 아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의 중요한 습관 들이기 위해 선택적 집중을 발휘한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나 역시 좋은 습관을 두 개 이상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은커녕 지극히 평범한 사람인데 초인이 되고자 했으니. 쯧쯧.
그래서 이제 어쩔 거냐고? 그러게 어찌해야 할까? 아놀드 베넷의 말을 따라 볼까 한다. “대게 너무 거창하게 시도했다가 실패한다. 전적으로 하찮은 성공이 중요하다. 하찮게라도 성공해야 더 큰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단 루틴으로 자리 잡은 첫 번째 목표는 유지하되 두 번째 목표는 “매일이 아닌 일주일에 3번 연습하기”로 계획을 대폭 수정했다. 융통성을 발휘하기로 했다. 3번만 연습해도 성공한 것으로 치기로 했다. 하찮게라도 성공해야 더 큰 성공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지 않은가.
이제야 좀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목표를 위해 3주 내내 달렸더니 숨이 가빴다. 4주 차부터는 솔직히 탁구장에 가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매일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자책하기 바빴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몸도 배겨내질 못했다. 이제 일주일에 3번만 지켜도 된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마음 같아선 감기도 다 나은 것 같다. 스트레스성 감기였음이 틀림없다. 오늘 탁구장을 향하는 발걸음도 새털처럼 가벼울 것 같다. 3번쯤이야 뭐 가뿐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아파보니 알겠다. 지나친 열정이 왜 안 되는지. 내겐 하찮을지라도 작은 성공이 필요했나 보다.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지 않는.
자부심을 잃게 하지 않는.
그런데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지독한 몸살 역시 '새로운 습관이 자리 잡기 위한 66일간의 여정에 꼭 필요한 과정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일상에 새로운 뭔가를 들인다는 것은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러니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 열정을 다루는 데 서툴렀을 뿐. 자기 위로 겸 자기 자비를 베푼다. 그래야 오늘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탁구대에 설 수 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