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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잘하고 싶은 걸 강화시킬 때의 부작용?

by 하늘

일주일에 한 번 구장에 나타나는 펜 홀더 전형 회원과의 게임. 그와의 게임은 쉽지 않다. 그는 길게 백 쪽으로 보내는 내 서비스를 빛의 속도로 포핸드 쪽으로 뺀다. 공을 쫓아가기 바쁘다. 내 서비스인데 주도권이 그에게 넘어가 버리니 게임이 녹록지 않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그의 커트 서비스를 한결같이 백 드라이브로만 리시브하려는 데 있다. 한결같이 백 드라이브로 리시브하기에 그는 매번 내 공을 포핸드 쪽으로 빼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다 백 드라이브로만 받으니 뻔한 리시브가 아닐 수 없다. 백 드라이브의 회전량도 많지 않기에 빠르게 빼는 데 안성맞춤인가 보다. 그럼에도 난 백 드라이브로 리시브하는 걸 포기하지 않는다. 게임 내내 나는 백 드라이브로 리시브를 하고 그는 내 포핸드로 빼는 것을 반복한다. 왜 이러는 걸까?

처음에는 백 드라이브로 서비스를 받아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서비스부터 백 드라이브로 받으면 선제를 잡게 되어 게임에 유리하다는 걸 알게 되면서 백 드라이브로 리시브하는 게 점점 재미있어졌다. 급기야 모든 커트 서비스를 백 드라이브로 리시브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탁구 유투버이자 코치인 임창국은 이런 나의 행동에 근거를 찾아 헤매는 합리화의 왕인 내게 딱 맞는 말을 해 주었다. “잘 치게 되면 해야지 생각 말아라. 해야 잘 치게 된다.”라고. 그래. 시도해야 잘 친다잖아. 백 드라이브로 리시브해야 그 기술이 느는 것 아니겠어? 내 방식을 합리화시켰다.

생활 탁구인 중 최강이라 불리는 윤홍균 또한 비슷한 맥락의 말을 했다. 그는 젊은 시절에 탁구장에 가기 전 “오늘은 절대 커트를 하지 않겠다. 커트로 넘겨주지 않고 무조건 공격을 하겠다.”는 다짐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 커트를 일부러 안 하려고 작정한 사람도 있잖아. 물론 그는 커트를 잘함에도 공격적인 탁구 스타일을 원했기에 커트를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그런 시도를 한 것이니 내 경우와는 다르다. 커트를 못해서 안 하는 사람인 나와 잘하는데도 안 하려는 사람과의 차이는 확연히 다르지만 이러한 팩트 따위 중요치 않다. 내게는 백 드라이브 리시브를 계속해도 된다는 허락처럼 들렸다. 내 마음 편하자고, 계속 백 드라이브로 리시브를 하고 싶으니까,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백 드라이브로 리시브하는 데 단단히 눈이 멀었다. 쯧쯧. 알면서 이러는 게 더 무섭다.

어찌 되었든 문제의 백 드라이브 리시브는 여러 회원과의 게임에서 다양한 상황을 만들었다. 커트 서비스를 넣고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 커트 리시브를 기다리던 한 회원은 내가 먼저 백 드라이브를 걸기에 원하는 플레이를 할 수 없었다. "드라이브 하나 제대로 못 걸었다."는 회원도 있었고 "게임 중 커트가 아예 없다."라고 말하는 회원도 있었다. 어느 상위 부수는 “선수냐? 왜 다 걸려고 하느냐? 커트로 줄 건 주고, 걸 것만 걸어라.”라고 비웃기도 했다. 또 다른 상위 부수는 “대회에 나가봐라. 백 드라이브로 리시브가 안 되면 어쩔 거냐? 대회에서 다들 커트로 리시브하는 이유는 커트가 안정성이 높기 때문이다. 백 드라이브로 리시브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백 드라이브와 커트 리시브를 섞어야 상대가 어려워한다. 커트 리시브도 시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스타일이 굳어져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다”라고 조언했다. 모두 나의 극단적인 리시브 방식에 이의를 제기한다. 잘하고 싶은 걸 강화시키려다 보니 극단적이다. 중간이 없다.


커트 리시브를 해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백 드라이브로 리시브하는 게 재미있는데 어쩌나? 선제의 맛을 알아 버렸다. 선제를 잡는다고 생각하니 상대에게 커트로 공을 넘기는 것 자체가 내키지 않는다. 아이고! 내가 무슨 선수도 아니고. 솔직히 말하면 커트에 자신이 없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커트를 못한다. 백드라이브로 리시브하기 시작하면서 약하게나마 가지고 있던 커트 감각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쓰지 않으니 커트 감각이 퇴화되 버렸다. 커트 리시브 시 상대편 탁구대에 낮게 가야 하는데 붕 떠서 간다. 드라이브나 스매싱으로 두드려 맞기 일쑤다. 그래서 더더욱 백 드라이브를 고집하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실점이라면 내가 잘하는 백 드라이브를 하고 점수를 내주는 게 오히려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백 드라이브 리시브를 고집하고 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겠다. 재미있는 걸 할 테다. 잘하고 싶은 걸 강화시키는 과정이야’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커트 리시브를 시도하지 않은 건 아니다. 어느 날은 큰 맘(?) 먹고 커트 리시브를 시도한다. 하지만 “나는 커트가 약해. 나는 커트를 못 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커트 리시브를 하고 수비를 하면 되는데 커트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에, 수비도 덩달아 되지 않는다. 커트 리시브하는 나를 믿지 못하는 게 자신감의 문제로 연결되어 수비에도 영향을 끼친다. 게임 전체를 뒤흔든다. 거봐. 커트 리시브보다 백 드라이브 리시브가 더 편하다고. 커트에 자신감이 없다고.

“커트 연습을 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한 상위 부수는 말하는데 사실 게임 중 커트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큰 건 아닐까? 왜? 커트보다 백 드라이브로 리시브하는 게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탁구를 하는 이유도 결론적으로는 재미있으려고 치는 것 아닌가? 지금은 이렇게 백 드라이브로 리시브하는 게 재미있다. 이놈의 재미, 놓치고 싶지 않다. 또 다른 핑계는 백 드라이브로 리시브하는 것도 아직 미숙한데 더 미숙한 커트를 해 게임에서 실점할까 봐, 경기 자체가 흔들릴까 봐 두려워서다. 탁구에 완벽이라는 게 있을까만은 지금은 잘하고 싶은 걸 더 강화시키고 싶다. “못하는 걸 보완해서 전체적인 밸런스를 맞출 때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지만 잘하고 싶은 걸 더 강화시키는 걸 선택했다. 부작용이 속출하지만, 어느 순간까지는 안고 가야 하리라. 백 드라이브로 계속 리시브하겠다는 걸 이리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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