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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스스로 만든 자존감

(필사의 말들) 이옥선 『즐거운 어른』

by 하늘

“책을 읽으면서 나이가 드니 어쩐지 스스로 베짱이 두둑해지면서 세상에서 제일 잘 나가는 다른 사람들이 별로 부러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전업주부로만 쭉 살아왔지만 이게 스스로 만든 자존감인가 싶었다.”(p.6)

“언니, 애 키우고 살림하는 거 너무 힘들어요. 거기다 돈도 모아야 하고요.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나요? 롤모델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독서 모임을 함께하는 동생이 이렇게 물어왔을 때 “그래, 시간이 흐르면 좀 나아지지.”라는 말을 속 시원하게 해주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8살 차이 나는 동생이라 과거 내 경험치로 조언해 준다는 게 뭔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주변에 전업주부가 넘쳐나던 시대의 사람이고, 지금 그녀의 주변엔 파트타임이라도 일을 하려는 여성들이 넘치는 시대다. 처한 환경부터가 다르니 뭐라 말해주기 어렵다. 개인은 시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람은 자기가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인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마이너스 1000만 원으로 시작된 신혼생활은 처음부터 평탄치 않았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었겠는가? 1997년 결혼할 당시 남편 월급은 85만 원, 그중 30만 원은 시댁 생활비로 보태야 했다. 그나마 사택이 있어 아이 둘을 낳고, 그럭저럭 생활을 꾸려 갈 수 있었다. 아이 둘을 맡기고 맞벌이를 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받는 월급과 맡기는 비용이 비슷해 아이 키우는 데 전념하기로 했다. 일에 대한 열정도 크지 않았거니와 그때는 애 키우고 살림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라 크게 고민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렇게 주어진 상황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선택해야 했다. 내가 선택한 방식은 그야말로 극단적이었다.

지금도 그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지인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지나간 유행가처럼 지루하게 들릴까 봐 가급적 이야기하지 않으려 하지만,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말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친정 엄마가 저보고 정말 지독하다고 했어요. ”라는 말과 “딸기 먹은 지 얼마 안 되었어요.”라는 말.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김보라 감독의 <벌새>라는 영화가 있다. 한 후배가 선배를 좋아하다 애정이 식었는데,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선배에게 이렇게 말한다. “선배,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 물론 내 상황에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내가 반복적으로 말하는 이 두 문장 역시 지나간 학기에 관한 말이지 않을까 싶어 가급적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려 한다. 지금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돈을 버는 것보다 극단적으로 아끼는 것이 내가 제일 잘하는 거였다. 내게 맞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추천할 수는 없다. 내게 맞는 방법이었어도 그렇게 사는 건 결코 쉽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론 지나온 길이기에 미화될 수도 있겠지만 다시 그렇게 살라고 하면 과연 내가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싶다.



그렇게 20년 넘게 50대 초반까지 살았다. 나보다는 가족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았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고 그래야만 되는 줄 알았다. 그나마 일주일에 한 번 2시간, 읽고 토론하는 독서 모임이 있었기에 이런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빡빡하기만 했던 일상 속에서 숨통이 트이는 시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한 날들이었다. 일주일에 책 한 권 읽었다고 해서 생활이 크게 변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내 안의 뭔가가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떠민 것도 아닌데, 머리에 계산기를 장착하고 나를 극단까지 몰아붙이며 살면서도 일주일에 두 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으로 채웠다. 이런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은 생계를 위해 돈을 벌러 나가지 않아도 될 만큼의 여유가 생겼다. 저절로 생긴 여유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엄청난 부를 이루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다른 걸 좀 줄이고 조금 덜 쓰면 용히 글을 쓰면서 살 수 있는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는 이야기다.


지금의 나는 이러한 서사 위에서 읽고 토론하고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지금의 모습만 놓고 본다면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사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이렇게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기까지 나름의 대가를 치렀다.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건 아무것도 었다. 20년을 극단적으로 살았으니 이 정도의 시간적 여유는 선물로 받아도 괜찮지 않나,라 생각도 가끔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에게 나처럼 살라고 할 순 없다. 누구나 자기가 짊어져야 할 생의 무게가 있다. 나 또한 내 삶의 무게가 있었고, 그 무게를 짊어지는 방식으로 내게 맞는 방식을 선택했다. 하지만 선택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방법만 선택했을 , 선택지 안에서 겪어내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겪어야 할 일들은 어느 순간 ‘끝’ 하고 사라지지다. 겪어야 할 일들은 지금도 김없이 매일 다른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내일도 계속 반복될 것이다.


그녀 역시 자신이 짊어져야 할 생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는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그녀는 “어떤 걸 선택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라며 전보다 훨씬 많아진 선택지 앞에서 혼란스러워한다.

이런 그녀에게 굳이 조언을 한다면, 48년생, 70대 후반인 이옥선 작가님의 이 말을 빌려야 될 듯싶다. “책을 읽으면서 나이가 드니 어쩐지 스스로 베짱이 두둑해지면서 세상에서 제일 잘 나가는 다른 사람들이 별로 부러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전업주부로만 쭉 살아왔지만 이게 스스로 만든 자존감인가 싶었다.” 나 또한 10년 넘게 책을 읽으면서 베짱이 두둑해진 건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별로 부럽지 않았다고. 앞으로도 함께 책을 읽으면서 자존감을 만들어 가자고. 스스로 만든 자존감이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큰 힘이 되는 것 같다고.


70대 후반인 이옥선 작가님이 이 말을 해 주어 얼마나 위안이 되는 줄 모른다. 앞으로도 쭉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잘 살고 있다고 어깨를 다독여 주는 것만 같다. 사실 이 말은 그녀가 아니라 내게 더 필요한 말이다. 그녀에게 롤모델이 필요했듯 내게도 이런 인생 선배님의 조언이 절실했다. 보통의 삶을 사는 내게 보통의 삶을 오랫동안 살아온 선배님의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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