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여성 탁구인에게 드라이브란? (3)
(드라이브라는 그 길, 가보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드라이브에 질척대며 글을 쓰는지 말해야겠다. 나는 49세로 스트로크 세대와 드라이브 세대 사이에 끼여 있는 일명 ‘낀 세대’ 다. 50-60대의 여성회원들은 탁구를 처음 시작할 때 커트 스트로크를 배웠기 때문에 드라이브에 대한 고민이 없다. 지금의 20-30대는 탁구 트렌드가 여성들도 드라이브를 구사하는 추세라 드라이브를 처음부터 배우는데 고민이 없다.
40대 후반의 난 드라이브를 구사하려니 하체 힘이 부실하고, 커트 스트로크를 하려니 철 지난 옷을 입는 거 같아 애매하다. 체력은 50-60대에 가깝고 해야 할 드라이브는 20-30대의 체력을 요구한다. 드라이브를 하긴 해야겠는데 접근방식은 젊은 여성 회원들과는 차별점이 있어야 될 것 같아 자꾸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답을 찾고 있는 것이다. 어딜 가나 낀 세대는 피곤하다.
구력이 비슷한 여성 회원과 드라이브를 잘 걸기 위해 뭐가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코치는(그녀는 다른 탁구장을 다닌다) "드라이브를 잘 걸기 위해서는 우선 다리 힘이 필요하다. 다리 힘을 기르는 것이 먼저다."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그녀는 " 탁구 선수 될 것도 아닌데 다리 힘까지 길러가며 탁구를 쳐야 하냐? 50이 넘었는데 다리 힘 키우다가 행여 관절이라도 나가면 어떡할 거냐?"라며 지극히 현실적인 걱정을 한다. 하지만 이런 말과는 반대로 그녀의 탁구 열정은 가히 놀랍다. 그녀는 자신의 스윙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매번 분석하며 레슨 시간에 배운 대로 치려는 노력형이다. 이론적으로는 어떻게 스윙을 해야 드라이브가 잘 걸리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연습이건 게임이건 자신의 드라이브 스윙이 제대로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를 체크하며 "배운 대로 해야지."라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곤 한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없어 지속적으로 자세를 낮추지 못해서 드라이브가 잘 걸리지 않는다."라며 한숨짓는다.
다리에 힘이 없는 게 문제라는 걸 그녀는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다리에 힘을 키우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드라이브 기술만 계속 밀어 넣고 있다. 이런 식의 프로세스는 드라이브를 잘 걸기 위한 과정으로 올바른 방향일까? 다리 힘을 키우지 않은 채 드라이브만 기술적으로 접근한다고 한들 원하는 드라이브를 얻을 수 있을까? 헛바퀴 돌리고 있는 건 아닐까? “선수될 것도 아닌데, 다리 힘까지 따로 길러야 하냐?”는 말이 발목을 잡는다. 하체 힘을 기른다고 해서 선수가 되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사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가 더 큰 저항으로 작용한다. 탁구 외에 또 하나를 추가해야 하는 걸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건 이리도 어렵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탁구 유투버 중 한 젊은 여성회원은 드라이브를 잘 걸기 위해 헬스장에서 스쾃도 하던데. 다리 힘을 키우는 시늉이라도 노력이라도 해 봐야지 않을까?
'왜 여성 회원의 드라이브 습득 속도가 남성 회원보다 느릴까?'를 고민하던 중 남성 회원과 여성회원의 드라이브 레슨 시간 배분과 연습 내용을 지켜보다 답을 찾았다. 답은 항상 가까이 있다. 인지하고 있지 못할 뿐. 20분 레슨을 받는다고 할 때, 여성 회원의 레슨 구성은 포핸드, 백핸드, 스매싱, 포핸드 드라이브, 백핸드 드라이브로 이루어져 있다. 포핸드, 백핸드가 주력이고 드라이브 시간은 기껏해야 5분 정도다. 남성 회원의 경우 포핸드 드라이브, 백핸드 드라이브가 주력이고 포핸드와 백핸드는 부수적이다. 포핸드도 민 드라이브를 하지 포핸드를 하진 않는다. 드라이브에 최적화에 되어 있다.
레슨실을 벗어나 연습할 때도 남녀 간 차이가 크게 보인다. 여성 회원들은 드라이브 연습보다는 주로 포핸드, 백핸드, 스매싱을 연습한다. 남성 회원들처럼 드라이브를 연속해서 거는 드라이브 랠리를 연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남성 회원의 경우 포핸드 드라이브를 오랜 시간 연습한다. 레슨실에서는 2배 이상의 차이가 나고 연습에서는 아예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드라이브의 연습량이 이토록 미약한데 드라이브가 게임 중에 나올 리 만무하다. 여태 드라이브를 배워왔다고, 연습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을 직시해 보니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 한 게 아무것도 없구나!’라는 현타가 왔다. 감나무 아래서 마냥 감이 떨어지기만 바랬군!
드라이브가 왜 안 되는지 이제야 알겠다. 현실이 내게 알려준 것은 '드라이브를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사실이다. 외부적으로는 드라이브를 배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흉내만 내고 있을 뿐이었다.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 해 보고 툴툴거리기만 했다. ‘언제 드라이브가 느는 거야?’ 세월만 탓했다.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도 한몫했다. 탁구장을 10년 다니는 거랑 기술을 얼마나 집중적으로 배웠느냐는 엄연히 다른 문제인데 말이다.
언제까지 '여자는 다리에 힘이 없어서 드라이브를 잘 걸지 못한다'라는 말에 갇혀 스스로를 합리화시킬 것인가? ‘여자는 드라이브가 약해 의미 없다’라는 말에 언제까지 휘둘릴 것인가? 드라이브의 레슨 시간과 연습 시간이 가뜩이나 부족한데 심리적으로 이러한 말들에 갇혀 스스로를 여자라는 한계에 가두고 있었다. 드라이브를 구사하기에 신체적으로 젊은 나이는 아니지만, 나이라는 한계도 사실은 내가 정해놓았다. 나를 가두고 있는 건 내 자신이었다. 다시 한번 내게 "진짜 드라이브를 구사하고 싶니?" 물었더니 그렇단다. 여자라는 핑계는 그만 대자. 시작도 안 한 거나 마찬가지다. 이제야 비로소 드라이브의 출발점에 서 있는 것 같다.
드라이브에 대한 나름의 정리가 끝났으니(참 오래도 걸렸다) 이제 드라이브라는 기술에 집중해 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전략, 즉 드라이브를 위한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내가 생각한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다리 힘을 기르는 것이다. 시간상 다른 운동으로 이를 뒷받침하기는 어렵다. 부담스럽다. 탁구장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탁구장에 들어가자마자 벽에 기대 스쿼트를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남성 회원이 다리 힘을 키우기 위한 방법이라며 추천해 주었는데 며칠 되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한다면 다리에 근육이 생길 것 같다. 사실 이를 실천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그래도 해야지. 두 번째는 탁구대에서 하는 빈 스윙 연습이다. 어떻게 드라이브 스윙을 해야 하는지 중얼거리면서 몸에 각인시키는 방법이다. 셋째는 레슨 전 기계 볼로 드라이브 연습을 하는 것이다. 레슨 시 자세를 낮추기 위해서다.
네 번째가 가장 중요한데 레슨 시간의 구성을 달리하는 거다. 당분간 20분 중 15분은 포핸드 드라이브만 해서 드라이브 감각을 몸에 익혀야겠다. 탁구 코치이자 유투버 임창국은 감각을 중요하게 여긴다. 손맛이 중요하다는 거다. 난 한 번도 턱 걸리는 드라이브의 손맛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는 “탁구는 탁구 조직이 있고 근육이 있다며 그 근육이 발달해야 감각이 생긴다. 드라이브도 드라이브 근육이 있어 무한 반복이 되면 학습이 되어 어느 순간 그 감각이 생긴다. 공을 치면서 먹는 근육이 더 빠르기 때문에 볼 박스를 많이 해야 한다.”라고 조언한다. 그래서 스윙의 완성보다는 공을 치면서 먹는 근육을 키우려고 노력 중이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목표가 있다면 레슨을 통한 다리 힘의 강화다. 드라이브를 하기 위해서는 자세를 많이 낮추어야 하는데 반복된 자세 낮춤이 다리 근력을 강화시키리라 믿는다. 볼 박스로 인한 다리 근력 키우기는 하체 힘이 없는 여자로서의 한계를 조금이나마 극복시켜 줄 것이다.
여태 제대로 된 나만의 드라이브 프로세스를 만들지 못했다. 이제 프로세스는 만들어졌으니 인풋 싸움만 남았다. 경제 유투버 신사임당은 사람마다 인풋 양의 기본 눈높이가 다르다는 걸 자신의 예를 들어서 설명한 적이 있다. 그는 “200만 개의 워드를 등록한 적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200개를 등록하고 성과가 없다고 포기했다. 다른 영역에서 성과를 낸 대가들도 인풋의 기본 눈높이가 다르다."라고 말한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았다. 인풋의 기본 눈높이가 다르다고? 나를 돌아보니 인풋은 200개만 한 채 “성과가 없네”라고 말하는 후자 쪽에 속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인풋을 얼마큼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20만 개 대 200개? 결과는 뻔하지 않겠는가? 또한 그는 “목표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될 때까지 해야 한다.”며 나를 식겁하게 만들었다. 아! 난 정녕 시늉만 하고 있었구나! 200개도 안 했으면서 성과가 없다고 탄식만 하고 있었구나! 어떠한 자세로 드라이브에 임해야 하는지 알았다.
탁구의 기술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프로세스의 구축과 마음가짐이 내게는 더 절실하다. 이제야 드라이브에 대한 기준점이 생긴 것 같다. 최고의 훈련은 자기 객관화라고 했던가?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현실 직시는 역으로 내게 희망을 준다. 해 보았는데 안 된 것이 아니다. 시작을 안 했을 뿐이다. 이제 시작만 하면 된다. 아! 써 놓고 보니 해야 할 일 투성이다. 솔직히 해야 할 게 많아서 ‘선수가 될 것도 아닌데’라는 말 뒤에 숨고 싶다. 그래도 한 번 해봐야겠지? 드라이브라는 길을 걸어가 봐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