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해서 더 이상 못 하겠어. 그만하자.” 한 회원이 이전 게임에서 이긴 후, 다시 경기를 시작해 2대 2인 상황에서 하는 말이다. 상대는 “경기 도중 그만두는 게 어딨어요?” 어이없어하고, 그녀는 “힘들어서 그래. 오늘 너무 많이 쳤어.”라며 태연히 짐을 싸 탁구장을 빠져나간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그는 “기권승이죠.”라고 말하는데 표정은 씁쓸함이 가득하다.
연습을 좋아해 평일에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며 게임을 피해 왔다. 아예 안 하는 건 아니고 주말에는 간간이 게임을 해 왔다. 하지만 내 성향은 그렇다 치더라도 내 욕심만 차리는 거 같아 다음 달부터는 게임을 하기로 했다. 게임을 하면서 부딪히는 여러 상황에서 현명하게 대처하고 싶어 회원들에게 게임 매너에 관해 물어보았다. 나도 모르게 하는 행동이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기에 이참에 정리해 보고 싶었다. 이러한 것들을 알아야 무의식중에라도 나올 수 있는 매너 없는 행동들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습관을 잘 들여야 한다. 몸이라는 건 생각 이전에 습관으로 움직인다.
첫 번째는 네트나 엣지(edge) 때 “죄송합니다.”라고 인사 안 하는 경우를 꼽았다. 대부분의 회원이 이 말을 하지 않는 회원을 가장 기분 나빠했다. 실력보다는 운인 네트나 엣지에 대한 태도가 그 사람의 인격을 보여준다고 한다. 나 역시 이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한 상위 부수 회원과의 게임에서 네트나 엣지가 나왔을 때 말로는 “죄송합니다.” 꾸벅 인사했지만, 얼굴은 전혀 죄송하지 않은 함박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한 점 땄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두 번째는 이겼을 때 바로 내빼기다.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이기면 바로 내빼는 경우다. 이런 경우 승자가 패자에게 한 번 더 게임을 할 건지 물어봐야 하는 게 예의란다. 한 상위 부수 회원은 “특히 하위 부수 회원들이 상위 부수를 이겼을 때 이런 일이 많이 벌어진다. 이때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다.”라고 성토한다. 실제 자주 게임을 하는 하위 부수가 있는데 그가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이기면 얼른 휴식 테이블로 내뺀다니까. 어이가 없어.”
세 번째는 경기에서 이겼을 경우, 상대의 심기를 건드리는 경우다. 예를 들면 승자가 패자에게 “서비스는 이게 문제고 리시브는 이게 문제예요.”라고 가르치기 시작하면, 진 것도 기분 나쁜데 패자의 기분을 더 나쁘게 만드는 최악의 태도라는 것이다. 이겼다고 그 사람의 탁구를 평가할 자격이라도 얻은 양 마구 쏟아내는 말들은 오히려 감정을 상하게 한단다. “제가 오늘 컨디션이 더 좋았나 보네요.”라든지 “잘 배웠습니다.”라고 말하는 선에서 끝내야 하는데, 승부에서 이겼다는 우월감을 뽐내고 싶어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승리에 도취하여 원하지도 않는 걸 가르치려는 회원은 딱 질색이란다.
네 번째는 경기에서 진 후 패배를 승복하지 않는 태도다. 예를 들면 ‘컨디션이 안 좋아서, 배가 고파서, 서비스만 아니면 이길 수 있었는데’ 등의 핑계를 대는 태도. 승부에서 졌으면 깨끗이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데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하는 태도는 승자를 무시하는 처사란다. 이러한 이유만 없었다면 매번 패자가 승자를 이긴다는 논리라 더 기분 나쁘다고 한다. 어느 고수는 “컨디션 관리도 실력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이 정답 아닐까? 진다는 건 실력이 부족해서다. 실력 부족 말고 다른 변명은 그저 핑계일 뿐이다.
나 역시 이런 경험이 있다. 한 회원과의 게임에서 졌는데 포핸드 쪽으로 오는 짧은 서비스를 전부 포핸드 플릭으로 넘기려고 한 게 패배의 원인이었다. 포핸드 플릭 하는데 한참 꽂혀 있을 때라 계속 시도하다 망했다. 5세트에서 커트로 넘기려고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포핸드 쪽으로 오는 짧은 서비스만 잘 받았으면 이길 수 있었는데.”라는 말이 딱 맞는 경기였다. 다행히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가 “서비스 때문에 이겼네.”라는 말을 대신했다. 나는 “아닙니다. 이게 제 실력이죠.”라는 답을 했고 게임은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만약 내가 “서비스만 잘 받았어도.”라는 말을 했다면 분위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상대에게는 “내가 서비스만 잘 받았어도 너를 이겼어.”라고 말한 거나 다름없이 느껴졌을 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상위 부수와 하위 부수 간의 게임에서 하위 부수 회원이 이겼을 경우,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탁구에는 핸디 제도가 있는데 상위 부수가 부수에 따른 핸디를 하위 부수에게 잡아주고 게임을 한다. 한 탁구 유튜버는 “요즘 핸디를 받는 하위 부수가 이길 경우, 오히려 하위 부수의 어깨가 올라가고, 누구를 이겼다고 자랑하는 등 기이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맞잡고 대등하게 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라며 이를 우려한다. 한 상위 부수 회원에게 “오늘 고수님 컨디션이 안 좋았나 보네요.”라고 말하는 건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것보다는 “잘 배웠습니다. 열심히 연습해서 다시 도전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듣기 좋다고 한다. 다른 회원들이 상위 부수 회원을 이겼다고 칭찬해 줄 경우에도 “그게 이긴 건가요? 고수님이 봐주신 거죠.”라고 말함으로써 고수를 존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 역시 예의 있는 태도라는 말도 덧붙인다. 이 외에도 상대에게 공을 넘겨줄 때 공을 집어 던지는 행동, 상대는 진지하게 탁구치는데 상대에게 집중 안 하는 태도 등 매너 없는 행동들이 많았다.
*공이 네트를 맞고 들어가거나 에지(edge:탁구대 모서리)로 득점하게 되면 미안함을 표시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