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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승급을 위한 연습? 장기적인 목표를 위한 연습?

by 하늘

탁구에 입문한 지 3년 7개월 차다. 한 번도 지역 대회에 나가 본 적이 없다. 이제 대회에 나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내가 원하는 기술 연습을 위해 내년으로 대회를 미뤄야 하지 않을까를 고민 중이다. 대회 준비 연습과 지금 내가 구사하고 싶은 기술 연습은 괴리가 크다.

만약 대회에 나간다면 성격상 3개월 전부터 대회를 위해 계획을 짜고 매일을 계획대로 움직일 것이다. 성향이, 기질이 그런 인간이다. 가상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서비스 연습 40분, 기본기 연습 30분, 3구 연습 30분, 게임하기 40분 등으로 시간을 배분해 연습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 3시간 이상이 필요하다. 최소한 내 서비스에서만큼은 미스를 하지 않고 득점을 하기 위한 연습이다. 집요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인간인지라 3개월 내내 이런 사이클을 지치지도 않고 해 나갈 거다. 당연히 지금 하고 있는 기술 연습은 당연히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올해 나의 목표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돌아서 스매싱을 할 때 공을 보고 돌기와 화 쪽, 백 쪽 자유자재로 코스를 가르는 것이다. 작년에는 돌아서 스매싱을 할 때 공을 보지 않고 무조건 돌았다. 그래도 도는 연습 덕분에 돌아서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그래서 올해에는 공을 보고 도는 연습에 집중해 미리 돌아서 미스하는 비율을 낮추고 돌아서 화쪽과 백 쪽, 어느 쪽이든 마음먹은 대로 스매싱을 하는 여유를 가지고 싶다. 수많은 반복연습이 있어야 돌아서 칠 때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포핸드 드라이브의 파워를 강화하는 동시에 스매싱과 마찬가지로 드라이브를 돌아서 화 쪽, 백 쪽 자유자재로 코스를 가르는 것이다. 드라이브의 미스율은 많이 줄었지만 파워가 약하다. 그저 넘기기에 급급하다. 우선 다리 힘을 키우기 위해 탁구장 벽에 기대서하는 스쿼트를 하고 레슨 때는 최대한 낮은 자세로 드라이브를 걸려고 노력 중이다. 여기에 더해 레슨 시 미스가 나더라도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치로 드라이브를 걸어 드라이브의 힘을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구력이 짧은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목표지만 장기적으로 이러한 목표를 향해 연습하고 있다.

물론 돌아서 스매싱을 코스로 가르는 기술과 포핸드 드라이브를 코스로 가르는 기술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올해 목표라고는 하지만 연말이 되어봐야 얼마큼 목표에 가까워졌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기술들을 얻기 위해서는 집중적으로 올인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이 바로 그 시기라고 생각한다. 반복하고 좀 되었다면 다시 반복하고, 여기서 좀 되었다면 다시 반복하는 등 이렇듯 한 사이클씩 돌아가야 실력이 조금씩 조금씩 쌓일 것 같다.


그렇기에 대회 참가는 점점 미뤄지고 있다. 탁구를 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대회 연습, 기술 연습 둘 다 병행할 수 없다. 분명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4년이 다 되어가니 대회를 나가야 한다."는 다른 회원들의 생각일 뿐이다. 지금 나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무엇을 욕망하는지는 나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목표와는 별개로 "그럼 승급은 언제 할 거야?"라는 의문도 든다. 언제까지 기술 연습만 할 거야?


한 회원은 "부수가 중요치 않고 내용이 중요하다. 내용이 충실하다면 부수는 자연스럽게 올라간다."라고 말한다. 다른 회원은 "대회에 나가야 실력이 는다."라며 대회에 나가지 않는 나를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본다. 미스가 나도 돌아서 스매싱하기와 돌아서 드라이브 거는 걸 계속 시도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한 상위 부수는 "부수에 맞지 않는 플레이를 한다. 부수에 맞는 플레이를 해라." 비웃기도 한다. "배우고 있는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과정 아닐까요?"라고 나는 변명에 가까운 반박을 하고 그는 "그러기엔 미스가 너무 많다"고 한번 더 일침을 가한다. 아니 그럼 미스 없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기술이 있단 말인가? 과정이니 당연히 미스가 많은 것 아닌가? 요즘 내 별명은 불나방이다. 나는 이를 기술 습득의 과정이라 합리화시키고 다른 이들은 무조건 달려드는 불나방이라고 부른다.



어쩌면 8부에 맞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꼭 필요한 연습이라고 생각한다. 8부에 맞는 연습과 게임이 따로 있단 말인가? 수학의 정석을 예로 들자면 기본 편은 건너뛰고 심화 편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심화 편 문제 하나가 풀리기 시작하면 기본 문제는 너무나 쉽게 풀린다. 돌아서 스매싱하는 게 익숙해지면서 포핸드 쪽에서 스매싱하는 것이 한결 쉬워진 것처럼 말이다.


딱히 정해진 순서는 없다. 그저 각자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8부니까 이걸 해야 하고 5부니까 이걸 해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일종의 관습일지도 모른다. “그저 관습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하는 사람은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한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자유론>에서 “사람의 지각, 판단, 특이한 감정, 정신 활동, 그리고 심지어 도덕적 선호와 같은 능력들도 오직 선택을 거듭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단련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선택을 거듭하는 과정을 통해 단련이 된다잖아. 나는 앞으로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해 단련될 것이다. 장기적인 목표를 위한 연습을 선택했다. 심화 편을 푸는 게 너무 좋다. 물론 내 방식이 틀렸을 수도 있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았어야지, 더 빨리 대회에 나갔어야지.'라며 땅을 치고 후회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지금은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탁구를 치고 싶다. 오늘도 혼자만으로는 자기 합리화가 부족해 유명한 철학자의 말을 방패 삼았다. 언제 혼자 오롯이 설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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