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기를 바라며 탁구장으로 향했다. 보통의 일요일 저녁과는 다르게 5명의 회원들이 탁구를 치고 있었다. 기계실로 들어가 탁구로봇 앞에 섰다. 지난번 코치에게 지적받았던 백 플릭을 연습해하기 위해서다. 그는 백 플릭을 할 때 자꾸 라켓의 밑부분을 맞춘다며 윗부분을 맞추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라켓 윗면을 맞출 수 있는지 이것저것 시도해 볼 생각이다.
라켓의 어디에 공을 맞추어야 하는지 집중하며 연습하려는 찰나, 뒤에서 보고 있던 한 회원이 오른발을 지적한다. "앞꿈치로 들어가야 하는데 뒤꿈치로 들어간다. 뒤꿈치가 들어가며 백 플릭 연습을 하는 건 하나마나한 연습이다" 라며 계속해서 지적한다. 발에 신경 쓰다 보니 라켓 위쪽에 공을 맞추어야 한다는 애초의 연습 목표는 사라졌다. 그의 말대로 발 앞꿈치에 힘을 주는 동시에 코치의 말대로 라켓 윗면에 공을 맞추면 금상첨화겠지만 멀티가 가능한 인간이 아니다. 한 번에 한 가지만 가능하다. 두 가지도 어려운데 이번엔 또 다른 회원이 "팔꿈치를 더 들어야 한다."라고 주문한다. 이제 라켓면, 발 앞꿈치, 팔꿈치 등 무려 세 가지를 신경 써야 한다. 내 능력의 한계치를 벗어났다.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왔다. 다 맞는 이야기다. 다 나 잘 되라고 하는 선의의 말이다. 하지만 자습의 목적으로 탁구장에 왔다. 혼자서 조용히 라켓의 아래에 공이 맞는 이유가 뭔지 알기 위해 일부러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택했다. 숙제를 붙들고 혼자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숙제 하나 하러 왔는데 두 개가 얹어져 세 개가 되었다. 나는 무슨 일에나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다. 코치가 지적한 부분을 붙잡고 골머리를 썩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도 쳐 보고 저렇게도 쳐 보는 시도를 통해 라켓의 밑면을 맞추는 이유를 찾아내고 싶었다. 수학 문제 풀 듯 끙끙대며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발 앞꿈치, 팔꿈치 말고 오로지 라켓면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한 번에 한 가지밖에 못하는 인간이라 더더욱 그렇다. 스스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탁구는 하면 할수록 감각 운동이라는 걸 실감한다. 포핸드 드라이브의 경우 코치가 “지금 하는 스윙이 맞다.”라고 하는데 오히려 “이게 맞다고?”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아직 포핸드 드라이브에 대한 감각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는 증거다. 내 스윙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건 아직 포핸드 드라이브에 대한 감각이 없다는 얘기다. 물론 옆에서 코치나 다른 회원이 가르쳐 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느낀 그들의 감각이지 내 감각은 아니다. 그 감각을 느껴야 하는 건 오로지 나 자신뿐이다. 언젠가 코치가 커트 서비스 넣는 걸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본인이 느끼는 감각이라 대신해 줄 수도 없고.” 이 말이 답이 아닐까? 스스로 어떤 감각인지 느껴야 한다.
이러한 감각을 느끼기 위해서는 자습이 필요하다. 이때는 오히려 주위 사람들의 조언이 독이 될 수 있다. 왜 자꾸 라켓 밑면을 맞추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싶은데 다른 조언들 때문에 처음 문제에 집중하기 어렵다. 그들은 각자 한 마디씩 조언을 하며 거의 신과 같은 능력을 내게 요구한다. " 왜 조언하는 대로 못하냐?"며 답답해한다. 나도 하고 싶다고요? 말이 쉽지. 말하는 대로 바로바로 할 수 있다면 레슨이 굳이 필요하겠어요? 그렇다면 수년간 탁구를 친 회원들은 이미 기술적으로 다 완성되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현실이 그러냐고요? 흥!
이러한 주위의 조언은 백 플릭뿐만이 아니라 다른 기술들을 연습할 때에도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온다. 마치 말하는 대로 되리라는 마법의 주문처럼 말이다. 이런 말이 들려올 때마다 헤매지 말아야 하는데 매번 길을 잃고 헤맨다. 사람들의 조언에 이리저리 휘둘린다. 이 사람이 이렇게 하라고 하면 이렇게 해 보고, 저 사람이 저렇게 하라고 하면 저렇게 해 보고. 이리 찔끔, 저리 찔끔. 머릿속은 계속 꼬인다. 그러다 보니 별다른 진전이 없다. 자습을 통해 천천히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스타일인데, 품을 많이 들여야 하는 인간인데 그걸 망각한 채 멀티가 안 되는 무능력만을 자책했다. 이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고 싶어 택한 방법이 자습이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자신이 흥미를 지닌 분야의 일을 자신에게 맞는 페이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추구해 가면 지식이나 기술을 지극히 효율적으로 몸에 익힐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라고 말한다. 내게 맞는 페이스로, 내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연습하면 된다. 내게는 자습이 그러한 방법 중 하나다. 수학 문제를 풀 듯 붙들고 고민해 보는 시간. 답지에 정답이 버젓이 적혀 있지만, 정답으로 가는 문제풀이에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오답이 있을 수도 있다. 그 오답마저도 과정이지 않을까? 잘못된 방법이라도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나만의 시간이 없다면 스스로 힘들게 답을 찾았을 때 느낄 수 있는 희열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리라. 만끽하지 못하리라. 늦더라도 내 발로 한 발 한 발 천천히 나아가고 싶다. 언제 와야 탁구장에 사람들이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