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여성 센터가 개관했을 때 처음 탁구 라켓을 잡았다. 운동이라곤 1도 안 해본 운동 문외한이었지만 '그래도 살면서 한 가지 운동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탁구를 시작했다. 배드민턴보다 과격한 운동이 아니니, 2-3년만 잘 배워두면 노후까지 무리하지 않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탁구라는 종목을 선택한 이유라면 이유다. '라켓 들고 치면 되는 거 아냐?' 쉽게 생각했다. 주위의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탁구를 배운다고? 안 배워도 탁구 정도는 그냥 칠 수 있는 거 아냐?”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만큼 밖에서 바라본 탁구는 진입장벽이 낮았고 만만해 보였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생각했다.
포핸드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레슨비는 사설 탁구장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월 1만 원으로 공교육에 가까웠다. 라켓 잡는 법을 익힌 후 바로 포핸드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1인당 할당된 시간은 대략 7분. 라켓 잡고, 탁구대에 서고, 잠깐 레슨 받으면, 정해진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처음이라 공을 라켓에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다. 레슨 후 파트너와 랠리 연습을 하는데 랠리라기보다는 공을 넘기는데 급급했다. 배운 대로 스윙하려니 더 어려웠다. 하지만 코치님은 "선수될 것 아니잖아요? 즐겁게 치면 됩니다."라며 정확한 스윙을 무리하게 요구하지는 않았다. 나 또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탁구라는 운동이 일상에 자리 잡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일주일에 두 번, 7분씩 레슨 받고, 회원들과 랠리 연습을 하며 1년 정도를 보냈다. 이후 "본격적으로 탁구를 배워 보자."라며 사설 탁구장으로 옮긴 센터 동기들의 권유로 사설 탁구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레슨 시간은 무려 13분. 두 배 이상 시간이 늘었다. 공교육에서 벗어나 사교육에 발을 내디게 되었다.
처음으로 관장님께 레슨 받던 날을 잊을 수 없다. "포핸드 스윙이 이상한데요. 스윙을 다 고쳐야겠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저 취미로 배우는 탁구라고 생각해 공을 넘기는 데만 급급했던 것이 문제였다. ‘레슨비가 싸니까, 탁구 선수 될 것도 하려고 아닌데.’라는 안일한 마음이 스윙에도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나 보다. 즐겁게 치면 된다는 코치님의 마인드도 안일하게 했지만 탁구를 처음 배울 때의 마음가짐이 더 문제였다. 탁구라는 운동에 대한 이해 부족과 탁구라는 운동을 만만하게 본 것이 화근이었다. 구력 16년의 한 고수는 동사무소에서 10년을 배우고 4부까지 승급을 했다고 한다. 코치님 탓이 아니라 내 탓이다. 센터든 동사무소든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마음만 있었다면 제대로 배우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반성하며 나를 탓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는 알았다.
어설프게 배운 스윙은 오히려 독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차라리 처음 배우는 신입 회원들이 부러웠다. 이미 몸에 밴 나쁜 습관을 교정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레슨을 통해 계속해서 포핸드 스윙을 교정했다. 관장님 앞에서는 교정이 되는 듯했으나, 연습을 할 때면 예전 스윙이 나와 한참 애를 먹었다. "에이 차라리 탁구 라켓을 잡기 전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라는 말도 안 되는 말도 여러 번 했다. 그만큼 처음 배울 때가 중요하다는 말을 뼈저리게 깨닫는 시간이었다.
주부반은 구력 2-3년 차의 40-50대의 여성회원 10명이 주축을 이루었다. 그들 중 3명이 새로운 코치에게 레슨을 받고 싶어 했다. 얼떨결에 나도 그들과 합류하게 되었다. 새로운 코치 역시 포핸드 스윙의 교정이 필요하다며 포핸드 스윙 위주로 가르쳤다. 포핸드 스윙이 기본 중에 기본이라 중요하다는 건 알았지만 몸이 당최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몸에 많이 때려 박아 저절로 몸이 반응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공격을 하더라도 공이 계속 넘어온다는 전제하에 연결이 가장 중요하다. 파트너와의 연결 연습이 중요하다."라며 자신의 레슨 철학을 누누이 강조했다. 그의 코칭대로 파트너와의 연결 연습에 매진했다.
글스기에 미친 시절을 보내기로 마음먹으면서 예전에 다니던 탁구장으로 컴백했다. 저녁반으로 옮겨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마침 관장님 아들인 선수 출신 코치가 레슨을 시작해 기본기와 포핸드 드라이브, 백 드라이브, 백 플릭, 포핸드 플릭 등의 기술들을 배우고 있다. 이제야 탁구가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유튜브 영상도 보면서 탁구 전반에 대한 이해도도 넓혀 가는 중이다. 탁구라는 운동에 대해 알면 알수록 어려운 운동이라는 것, 연습해야 할 것들이 끝도 없다는 것, 나의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는 것 등을 알아가고 있다. 이제 구력 3년 10개월 차다. 이쯤 되면 애초에 마음먹은 대로 슬슬 재미있게 즐탁 해야 되는 거 아닌가? 내 탁구 기술 하나하나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체크해 본다. 어느 기술 하나 만족스러운 기술이 없다. 탁구를 시작한 이래 레슨도 쉬지 않고 받고 있다. 쉼 없이 달려왔다. 하지만 언제까지 달릴 수 있을까? 열심히 레슨 받고 나름 열심히 연습하고 있지만 끝이 안 보인다. 그래서 더 막막하다.
이때쯤 '레슨은 언제까지 받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마침 이전 코치가 탁구장에 놀러 와 그에게 물었다. 그는 " 만족할 때까지 받아야지요. 그건 본인에게 달렸습니다."라는 답을 한다. "2-3년만 열심히 하면 즐겁게 탁구를 칠 수 있을 줄 알았다. 탁구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며 괜히 그에게 푸념 섞인 투정을 한다. 누구라도 붙잡고 투정 부리고 싶었다. "언제까지 레슨을 받아야 하냐고요? 끝이 있긴 있냐고요?" 따져 묻고 싶었다. 2-3년이라는 프레임에 여전히 갇혀 있었다. 그는 "애초에 탁구를 그렇게 만만하게 본 게 문제다."라며 나를 질책했다. 이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요."라고 지지 않고 반박했다. 나도 안다. 괜히 엄한 사람을 붙잡고 짜증 내고 있다는 걸.
그는 20년 구력의 1부로 아마추어 출신 코치다. 그는 "20년이 된 지금에서야 탁구가 뭔지 조금 알겠다."라는 말을 한다. 아이쿠야! 20년이나 지났는데 이제야 탁구에 대해 조금 알겠다고? 3년 10개월 구력의 난 이 말에 한없이 작아진다. 쪼그라든다. 그럼 난 탁구라는 세계 근처에도 못 갔단 말인가? 어쩌라는 거지?
그럼 언제쯤이면 내 탁구에 만족할 수 있을까? 기술별로 업그레이드시키고 싶은 욕심은 계속 생기는데. 이 욕심의 탈을 쓴 열정은 과연 끝이 나긴 하는 건가? 끝나지 않는다면 10년을 생각하고 마음가짐을 달리 먹어야 하나? 계획을 수정해야 하나? "12년 동안 단 한 번도 레슨을 쉬지 않았다."라는 한 여성회원의 말도 떠오른다. 한 여성 회원은 “탁구다운 탁구를 치려면 기본 5년은 열심히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한다. 그녀는 요가, 헬스 등 다양한 운동을 하다가 탁구를 시작한 회원이다. “2-3년만 레슨 받으면 평생 그거 가지고 즐겁게 탁구 칠 수 있을 것 같았다.”라는 내 말에 코웃음을 치며 “그런 운동 종목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며 어이없어했다. 이렇게도 탁구라는 운동에 무지했다. 그녀는 골프를 10년 이상 해 온 경험이 있기에 운동에 임하는 마인드부터가, 탁구에 임하는 태도부터가 나와는 전혀 다르다. 난 운동에 대한 이해 부족, 탁구에 대한 이해 부족이 쌍벽을 이루고 있다. 그러니 얼마큼 레슨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히 서지 않는 거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레슨의 목표는 다르다. 나 역시 내가 원하는 탁구 스타일 즉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는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이 많다. 그렇다면 레슨을 언제까지 받을 것인지는 내가 추구하는 탁구 스타일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탁구는 늪이고 탁구 레슨 또한 늪이다. 레슨이라는 늪에서 “레슨 시간을 조금만 더 늘리면 더 잘 칠 수 있을 것 같은데? 레슨 횟수를 늘리면 더 잘 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환상을 품기도 한다. 하지만 환상은 환상일 뿐. 어제 잘 되었던 것이 오늘은 도통되지 않는다. 레슨 받는다고 해서 바로 늘지도 않는다. 이래서 레슨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필요한가 보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더 레슨 시간과 횟수를 늘리고 싶은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할 테니 말이다.
레슨은 레슨일 뿐, 레슨이 모든 걸 해결해 줄 순 없다는 걸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연습도 필요하고, 게임도 필요하고, 기술이 무르익을 시간도 필요하고. 이렇듯 레슨과 맞물려 가는 시간이 즉 구력이 필요함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탁구를 너무 몰랐던 거지. 레슨을 언제까지 받을 거냐고?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시간을 두고 탁구에 임해야 한다는 건 알겠다. 그거면 됐다.
그런데 어느 날 관장님의 오랜 지인이자 지역 1부인 고수님이 레슨을 받겠다고 탁구장에 나타났다. 그런데 그의 이력이 어마무시하다. "하늘 씨, 그 1부가 어떤 애인지 알아? 자그마치 20년 동안 쉬지 않고 한 관장에게 레슨 받은 애야. 그 관장이 탁구장 문을 닫는 바람에 나한테 오는 거잖아." 20년 동안 레슨 받고 있다고요? 그것도 모자라 레슨 받기 위해 관장님을 찾아왔다고요? '2-3년만 열심히 하면 즐겁게 탁구를 칠 수 있을 줄 알았다'는 나의 운동에 대한 무지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그를 보며 다시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