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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무엇이 그녀를 저리 혹독하게 연습하게 만드는가?

by 하늘

탁구로봇과 백 푸시를 연습하고 있다. 코치에게 백 플릭을 배우고 있는데 공에 힘이 없는 것 같아 '백 푸시를 하면 힘이 키워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다. 세게 치니 오른팔이 아프다. 한번 더 기운을 내 본다. 백푸시가 끝난 후 힘이 생겼는지 확인하기 위해 백 플릭을 시도해 본다. 예전보다 공이 힘 있게 넘어간다. 오케이. 이러한 방식으로 연습하다 보면 점점 좋아지겠지? 이것저것 시도해 보며 연습하는 것이 기질에 맞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 순간 잘하고 있다는 감각이, 더 나아가 잘 살고 있다는 감각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라고 한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인 건가? 뭔가를 붙잡고, 골머리를 썩고 있는 이 순간이 정말 좋다.


짧은 커트 공에 대한 백 플릭 연습 후, 긴 커트 공에 대한 백 드라이브 연습을 시작한다. 팔을 쭉 피지 않아서 공이 네트에 걸린다는 코치의 지적을 생각하며 팔을 피는데 집중한다. 오른발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거는 백 플릭은 나름 익숙해졌는데, 긴 커트 공인 경우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해 더 어려워졌다. 짧은 공과 긴 커트 공의 불규칙 레슨 때 짧은 커트 공에 자신이 생겨 앞으로 들어가려다 보니 상대적으로 길게 오는 공에 대한 미스가 많아졌다. 백 푸시, 백 플릭, 백 드라이브 연습만 했는데도 1시간 가까이 흘렀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한 회원이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그녀를 저리 혹독하게 연습하게 만드는가?” 옆에 있던 회원이 대신 답을 한다. “5부가 되려고.” 거기에 난 “전 다른 사람보다 느려서 연습이 많이 필요해요. 그리고 연습하는 게 재미있어요.”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이후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단지 연습하는 게 재미있어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는 거라고?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닐 텐데.


한 회원이 올해 목표가 무엇인지 물은 적이 있다. “누구를 이기는 게 목표냐?"는 것이었다. 누구를 이기는 게 목표가 될 수 있다는 걸 그의 질문을 통해 알았다. 질문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다. 그는 게임을 좋아하고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다. 그의 관점에서는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이 당연히 목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나의 올해 목표는 무엇일까? 야심 차게도 난 포핸드 드라이브와 백 드라이브를 코스별로 자유롭게 보내는 걸 목표로 삼았다. 어느 고수는 “이게 다 되면 선수지”라며 코웃음을 친다. 그에게는 구력이 짧은 탁구인의 무모한 목표로 보였으리라. 어찌 되었든 이렇듯 큰 목표의 틀 안에서 레슨을 받고 이를 위해 연습 중이다. 그럼 난 왜 이러한 목표를 세웠을까? 5부가 되길 원하는가? 물론 쉽진 않겠지만 5부가 되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나라는 인간에게 목표일 수 없다. 어느 고수는 "탁구장은 승부를 내야 하는 전쟁터다. 게임 시 전쟁터에 나간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의 말대로 생각해 보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생각 자체가 내 성향과 맞지 않았다. 그런 위인이 되지 못한다. 예전부터 그랬다. 다른 사람을 상대로 이기거나 지거나 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성향이 그랬다. 내 만족이 중요했다.


10년 지기 친구는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내가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질문한 적이 있다. 그런 뜻이 아닌데 상대가 그렇게 느꼈다면 내 잘못이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싶어 아차 싶었다. 부족하면 부족했지 우월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 기질이 그렇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뿐이다. 내가 정한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 없는가에 관심이 더 쏠리는 인간이다. 게임 시에도 레슨 받은 것, 연습한 것이 하나라도 나오면 뿌듯하고, 흐뭇하고, 뭔가 해낸 것 같은 만족감에 몸을 부르르 떠는 인간이다. 코치에게 "어제보다 백 플릭이 좀 나아졌다"라는 말을 들으면 행복한 나머지 기분이 째지는 인간이다. 탁구를 칠 때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내가 탁구를 치는 건지, 탁구가 나를 치는 건지 모르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다. 마치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 상태가 미하이 칙센트 하이가 말하는 몰입의 순간이 아닐까? 순간을 사랑한다. 이러한 이유로 승부를 내야만 하는, 성향과 도통 맞지 않는 탁구를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그럼 무엇 때문에 연습에 이리 매달리는 것일까? 원하는 탁구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서다. 원하는 스타일은 게임 중 백 드라이브와 포핸드 드라이브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은 물론 백 플릭, 화 플릭 등 최대한 다양한 기술을 구사해 풍성한 게임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스타일로 탁구를 치고 싶은 게 장기적인 목표다. 이를 위해 혹독하게(?) 연습 중인 것이다. 하지만 단기간에 결과가 나타나진 않는다. 언제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스타일로 탁구를 치고 싶. "8부가 8부 수준에 맞게 탁구를 쳐야지 상위 부수처럼, 선수처럼 탁구를 치려고 하냐?"는 비웃음도 들린다. 백 플릭을 시도하면 게임 중에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며 안전하게 커트를 하라며 시도 자체를 막는 회원이 있다. 돌아서 치면 돌아서 치는 건 무모하다는 말을 해 의욕을 꺾는 회원도 있다. 커트가 많이 먹어오는 공을 백 드라이브로 넘기다 미스를 하면 안전하게 커트를 하라고 압박하는 회원도 있다. 여기에 맞서 원하는 탁구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연습이든 게임이든 주구장창 연습 중이다. 홀로 마이웨이를 가고 있다.

유투버 임창국은 여성 회원인 러블리 핑퐁을 가르치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녀는 처음부터 드라이브 전형을 배웠다. 드라이브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지금 당장 비슷한 부수와 게임을 하면 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드라이브 전형으로 그녀가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게 되면 앞으로 그녀의 탁구는 훨씬 발전 가능성이 있다. 나중을 보고, 내가 어느 정도 만들어졌을 때의 그림을 보고 레슨을 받고 연습을 해야지. 당장을 어떻게 하려고 하지 마라. 길게 보고 가라. 하위 부수인 경우 대회에서 커트해서 결승 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거 하지 마라. 차라리 예선 탈락해도 좋으니까 처음부터 백 드라이브 걸어라. 안 돼도 해라. 이게 되어야 빨리 부수 올릴 수 있다.”

길게 보고 가라는 말, 지금 당장은 늦을 수 있지만 자기 스타일은 자기가 만들어 가면 된다는 말. 이 말에서 탁구의 방향성을 찾았다. 이렇게 마음먹으니 포핸드 드라이브, 백 드라이브를 걸어 미스를 해도 과정 중이라는 생각에 더 열심히 시도한다. 다른 회원들의 조언에도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포핸드 드라이브, 백 드라이브, 백 플릭, 화 플릭 등 다양한 기술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이렇게 게임할 수 있다면 게임 내용은 자연스럽게 풍성해질 것이며 내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만족감 또한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하는 만큼의 기술을 구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생각한 것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것들을 추구하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닐까?' 이 말이 내 안에서 굳건히 버텨 주는 한, 원하는 탁구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길게 보고 갈 수 있다. 어느 정도 만들어졌을 때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오늘도 난 그 길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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