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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와 질투는 정말 나쁠까?

by 하늘

연습 파트너와 암묵적인 룰이 있다. 다른 회원과는 게임을 하더라도 그와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 거의 매일 보는데 매번 승부를 내야만 하는 상황이 성향에 맞지 않아 연습만 함께 해 오고 있다. 다행히 그도 게임을 좋아하는 성향이 아니기에 누가 먼저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룰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게임만 하지 않을 뿐, 시스템 연습과 3구 연습만 해도 1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간다. 시스템 연습이 늦게 끝나 3구 연습을 못 하는 날도 있다. 마음 편하게 연습할 수 있는 파트너가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는 주 3회 그와 정해진 시스템을 연습하지 않으면 운동을 하지 않은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가 게임을 제안해 왔다. 모처럼의 제안이기에 게임을 시작했다. 3대 1로 그의 승리. 그의 다양한 서비스를 제대로 리시브하지 못했고, 연습 패턴에 젖어 아무 생각 없이 게임한 것이 패배의 원인이었다. 게임은 게임이고 연습은 연습인데, 게임이 연습인 줄 알고 연습 패턴으로만 게임 하려고 했다. 그만큼 연습 패턴에 젖어 있었다. 서비스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게임에 집중했어야 했다.


졌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마음속은 시기와 질투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다 못해 활활 타오른다. 같은 부수에게 졌다는 것에 더 예민한지도 모른다. 게임 내용을 복기하고 다음 게임의 계획을 세우느라 밤새 뒤척였다. 이럴 줄 알았다. 승패가 미치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균형 잡힌 일상을 깨뜨리는 게 싫어 그리도 게임을 하지 않으려 했건만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탁구장에서의 승패가 잠자리에까지 침투해 나를 KO패 시켰다.


이튿날 아침, 제대로 못 잤으니, 몸은 찌뿌둥하고 시기와 질투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질 않는다. 당연히 해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글쓰기는 말해 무엇하랴. 노트북 빈 화면엔 커서만 깜박거린다. 이래서 게임을 하기 싫다고요. 탁구로 인해 일상이, 루틴이 흔들리잖아요. 이런 생각과는 반대로 ‘탁구장에 빨리 가서 연습해야지. 더 열심히 해야겠어.’라는 마음이 꿈틀거린다. 이미 마음은 탁구장에 가 있다.


이렇듯 게임에서 진 경험을 좋은 동력으로 삼아 투지를 불태울 수 있다면 탁구 실력이 한 번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성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문제는 시기와 질투라는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시기와 질투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받아들이는 게 너무 힘들다. 왜냐하면 시기와 질투는 신데렐라의 이복언니들이나 살리에르가 품는 나쁜 감정이며, 그런 감정을 품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으로는 시기와 질투에 힘들어하면서도 밖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해 왔다. 승패에 연연해하는 이런 감정 소모 따위 원하지 않는다고 자신에게 세뇌하면서 이러한 감정들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불편하니 대면하지 않으려 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다른 사람을 보면서 샘도 내고, 질투도 하면서 투지를 불태울 수도, 좋은 동력으로 쓸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을 질투하면서 자기가 몇 걸음 더 나가게 되면, 다른 사람의 질투를 받기도 한다. 그러면 또 역지사지가 되고 이러면서 감정들이 훈련되는 거다. 고립된 채로 절대 성장은 없다. 그것은 본원적으로 불가능하다.” 시기와 질투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라는 이야기임과 동시에 이러한 감정들의 훈련 없이는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혼자 고고한 척, 고립된 채로 성장은 없다는데, 근원적으로 불가능하다는데 그러한 감정 훈련 없이 너무나 편안한 길, 이를테면 연습만으로 점프해서 공중 부양하려 했다. 어리석었다. 세상에 정면 대결 없이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는데 말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고수들이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면 또 다른 세상이 보인다. 그들도 수없이 이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었으리라. 질투하고, 시샘하고, 그것들을 극복하려 노력하고 그러면서 성장했겠지? 이러한 사이클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단박에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시기와 질투라는 감정을 나쁘게만 보지 말고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려고 한다. 수많은 밤을 뒤척여야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것들이 나를 성장시키는 과정이라는 걸 받아들인다면 훨씬 마음이 편할 것이다.


‘싱 어게인’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가수 이승윤이 “다른 가수들 재능에 배가 아프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아무렇지도 않게 배 아프다고 당당히 말하는 그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마음속으로는 시기와 질투에 힘들어하면서 밖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행동해 온 내 모습과는 정반대여서 마음에 와닿았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감정 훈련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나? 부러웠다. 그처럼 그냥 배 아프면 배 아프다고 하면 될 것을, 본성을 거스르려고 하니 그리도 마음이 부대꼈나 보다.


앞으로 탁구를 치면서 비슷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수없이 겪을 것이다. 이러한 감정 훈련 없이는 성장도 없겠지?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아이고 배 아파. 배 아파서 안 되겠다. 꼭 이겨야겠다.”라는 말을 자주 입 밖으로 내뱉으려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기와 질투라는 감정을 수면 위로 꺼내 놓으려 한다. 음지에서 양지로. 이러한 시도를 통해 시기와 질투라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 한다. 나를 성장시키는 좋은 동력으로 쓰려고 노력하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감정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아마 수많은 불면의 밤을 겪으리라. 그래도 겪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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