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언니는 운동신경이 뛰어나잖아. 골프, 자전거, 수영, 요가 등 안 해 본 운동이 없다며? 그러니까 탁구도 그렇게 빨리 늘지. 그런 사람은 예외야” 한 여성회원에게 "드라이브를 구사하며 게임하는 건 그녀가 유일하다."는 말을 했더니 이렇게 답한다. “정말 징글징글하게 연습하더라. 옆에서 다 봤다.”라고 반박해 보지만 상대는 “운동 신경이 있어서 그런 거야. 그렇게 빨리 늘 수 없다고. 타고난 거야." 라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녀는 그야말로 단기간에 실력이 급성장했다. 그녀가 처음 라켓을 잡고 포핸드를 배울 때부터 보아 왔으니 어떻게 실력을 쌓아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녀는 거의 2년을 탁구에 올인했다. 오후 2시쯤 탁구장에 나와 밤 10시까지 탁구 기술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정말 징글징글하게 연습했다. 커트가 안 된다며 몇 날 며칠을 커트 연습만 하고. 드라이브가 안 된다며 탁구로봇을 붙잡고 살다시피 하고. 어느 날 그녀의 손을 보았다. 손바닥에 딱딱한 굳은살이 박이다 못해 갈라져 있었다. 운동이라곤 탁구가 처음인 내게 그녀의 손바닥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골프 할 때는 손이 더 엉망이었다."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더 놀라운 건 부상을 대하는 태도였다. 탁구를 심하게 치는 바람에 엘보가 왔는데 "운동을 하면서 겪는 당연한 과정이야."라며 별일 아니라는 듯 운동을 쉬지 않았다. 아프면 아픈 대로 연습을 이어 나갔다. 조금만 아파도 병원으로 쪼르르 달려가던 나와는 정반대였다. 아! 운동이라는 건 그녀처럼 하는 건가?
그러나 대부분의 탁구장 회원들은 그녀가 골프를 10년 이상했고, 자전거, 수영, 요가를 해 운동신경이 뛰어나 탁구도 쉽게 배웠을 거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 빨리 탁구가 늘 수 없다면서. 물론 다른 운동을 해서 탁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수 있다. 그러나 이해하는 것과 탁구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어느 누구도 그녀가 손바닥이 갈라질 만큼, 엘보라는 부상에도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저 그녀가 재능 있다는 말만 할 뿐. 그녀의 연습은 재능이라는 말에 철저히 가려져 있다.
이처럼 우리는 재능에 대해 쉽게 말한다. 감히 넘볼 수 없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원래 타고났어 "라는 말로 퉁쳐 버린다. 이러한 말에는 어떠한 심리가 깔려 있을까? 난 또 이런 게 궁금한 인간이다. 앤젤라 더크워스의 <그릿>이라는 책은 우리가 재능이라는 단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지 알려준다. 이 책에서 사회학자 챔블리스는 “재능이란 우리가 성공한 운동선수에게 붙이는 가장 비전문가적인 설명이다. 우리는 마치 재능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가 경기 성적이라는 표면적 현실 뒤에 존재하고 있어서 최고 선수와 나머지 선수들을 구별해 주는 것처럼 말한다. 그리고 위대한 선수들을 나머지 우리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특별한 재능과 신체적, 유전적, 심리적, 생리적인 인자를 타고난 축복받은 존재처럼 바라본다.”라고 말한다. 앤젤라 더크워스는 그의 관찰이 정확하다며 “우리는 운동선수나 음악가 등이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놀라운 성과를 어떻게 냈는지 설명할 수 없으면 이내 포기하고 “재능이네! 그건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야.”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경험과 훈련만으로 통상적인 범위를 훌쩍 넘는 탁월한 수준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었는지 쉽게 이해가 안 될 때 자동으로 ‘타고났다.’라는 분류를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그 사람은 타고났어.”라는 말을 수도 없이 하며 살았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고.
그럼 우리는 왜 이러한 말을 하는 걸까? 앤젤라 더크워스는 우리가 뛰어난 선수를 바라볼 때 우수한 기량을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고 우리 스스로를 기만하는 이유를 니체의 말에서 찾았다. “우리의 허영심과 자기애가 천재 숭배를 조장한다. 왜냐하면 천재를 마법적인 존재로 생각한다면 우리 자신과 비교하고 우리의 부족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신적인 존재’로 부르면 우리는 그와 경쟁할 필요가 없어진다. 즉 선천적 재능으로 신화화함으로써 우리 모두는 경쟁에서 면제받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 안주하게 된다.” 아! 경쟁에서 면제받기 위해서, 내 부족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그 사람의 노력을 제대로 보지 않고 재능이라는 단어로 가리는 거였군!
왜 회원들이 그녀에게 "운동신경이 뛰어나다."라는 말을 하는지 이제야 알겠다. 그녀의 재능을 부각함으로써 그녀와 경쟁할 필요가 없어지고 부족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 아닐까? 나 역시 다르지 않다. 그녀가 뛰어난 기량을 노력으로 얻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산증인임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와 탁구 치면서 “그녀는 수십 년 동안 운동을 해 왔잖아. 그녀에게는 내게 없는 운동신경이 있잖아.”라는 말로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그래야 그녀와 경쟁할 필요를 못 느끼고 내 부족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니까.
앤젤라 더크워스는 성공한 사람들이 가진 특별한 점이 '그릿'이었다며 그릿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그릿은 '열정과 집념이 있는 끈기'를 말한다. 그녀는 "열정과 결합된 끈기가 오히려 재능보다 더 중요하다. 우리가 재능만 집중 조명함으로써 나머지 모두를 가릴 위험이 있으며 그릿을 비롯한 다른 요인들이 실제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어 해로울 수 있다."라고 말한다. 재능에 대한 오해부터 풀어야겠다. 그래야 열정과 결합된 끈기가 재능보다 중요함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사실 재능이 아니라 열정과 집념이 있는 끈기 즉 그릿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