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먹었다고 해서 삶이 금세 바뀌는 기적 따윈 일어나지 않는다)
10대 8로 앞서고 있는 상황. 그저 공이 오는 대로 움직였다. 서비스에 이어 공격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마음일 뿐 실행에 옮길 여유는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상대방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경기 내내 공을 쫓아다닌 기억밖에 없다. 어떤 때는 미스를, 어떤 때는 몸이 자동으로 반응해 제법 잘 치기도 했다. 레슨을 통해 몸에 각인되었던 것이 게임 중에 모습을 드러내 득점을 한 경우에는 경기 중임에도 내심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공을 줍기 위해 펜스 쪽으로 가자 구장 동료가 "서비스를 길게 넣으세요."라는 코칭을 한다. 주문대로 넣었는데 상대가 스매싱을 날려버린다. 작전 실패. 10대 8로 앞서고 있었지만, 듀스의 듀스를 거듭한 끝에 나의 패배로 끝이 난다.
경기 후 벤치를 봐준 동료에게 "서비스를 왜 길게 넣으라고 했어요?"라고 물었다. "길고 빠른 서비스를 타길래 그렇게 넣으라고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그 서비스를 안 타더라고요." 그의 탓을 하려는 게 아니다. 경기의 흐름은 내가 제일 잘 아는데, 나 자신을 믿지 못하고 제삼자의 말에 기댄 나를 탓하는 거다. 시합 중 코칭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다. 분명 내 게임인데 그의 말에 기댄 게 맞는 선택이었을까? ‘서비스를 상대의 백 쪽 구석으로 예리하게 넣거나 화 쪽으로 짧게 넣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와 아쉬움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내 판단으로, 내 결정으로 서비스를 넣고 졌다면, 지고 나서도 코칭한 사람 탓을 하지 않을 텐데. 벤치를 따를 것인지, 따르지 않을 것인지 결정하는 것 또한 실력이겠지?
경기를 마치고 나오자 다들 아쉬운 경기였다며 한 목소리를 낸다. 한 상위 부수 회원은 “첫 대회인데 떨지도 않고 할 것 다하더라. 다음 대회에는 더 잘할 거다.”라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첫 대회인데 긴장하지 않고 나름 선전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한 듯 말해 주니 말이라도 고마웠다. 두나무 프로리그 선수들은 "졌짤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는데 난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말로 내 생애 첫 대회를 퉁치려한다. 그래야 한 번 더 힘을 내보지 않겠는가? 처음 보는 낯선 사람과 승부를 내는 경험은 신선했다. 모르는 사람과의 경기라 부담 없이 게임할 수 있어 마음이 가벼웠다. 사실 알지 못하는 사람과의 경기가 편해 먼 길을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탁구장에서 게임을 하지 않는 이유는 매일 보는 사람과 승부를 내야 하는 데서 오는 감정적인 불편함 때문이다. 이겨도 불편, 져도 불편. 경기 후 이러쿵저러쿵 오가는 말들로 인한 감정 소모도 질색이다. 하지만 게임을 피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내 안에 숨겨져 있는 승부욕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면서부터다. 가끔 하는 게임을 통해 지면 못 참는 성격이라는 걸 알았다. 게임을 하지 않는 지금도 탁구에 미쳐 있는데 게임을 하기라도 하는 날이면 탁구에 완전히 미쳐버릴까 겁났다. 그래서 연습이라는 가면 뒤에 숨었다. 게임으로는 운동량을 채우지 못한다는 둥, 마음이 평온해야 글을 쓸 수 있는데 게임을 하게 되면 탁구 생각 때문에 글 쓰는 데 방해가 된다며 게임을 외면해 왔다. 머릿속이 탁구 생각으로 가득 찰까 피하고 또 피했다. 버티고 또 버텼다. 그러나 승부의 세계에서 승부를 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 비겁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국대회에 자주 출전하는 한 회원이 도지사기 대회에 참가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그만 "저도 한 번 나가봐야겠어요."라고 말해버렸다. 지극히 충동적이었다.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더 이상 승부의 세계를 피할 수만은 없다는 자각이 그런 말을 뱉어버리게 한 걸까? 내 탁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내 탁구 기술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보고 싶기도 했다. 연습하는 걸 좋아하지만 막연하게만 반복되는 연습루틴에 새로운 돌파구도 필요했다. 드디어 때가 왔다고 직감적으로 느낀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게임을 시작할 대의명분도 필요했다. 연습하는 루틴에 심하게 젖어 있기에 바로 ‘게임해야지.’ 마음먹는다고 해서 호락호락 게임을 할 위인이 아님을 안다. 단단하게 나를 감싸고 있는 연습이라는 알을 깨고 나올 계기로 탁구장 경기가 아닌, 지역 탁구대회가 아닌, 더 큰 놈이 필요했다. 도지사기 대회라면 이러한 나의 니즈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해서 도지사기 대회는 나라는 인간의 알 깨기 프로젝트의 일환이 되었다. 남들은 수도 없이 나가는 대회 한 번 나가면서 포부 한 번 거창하다.
연습에 들어갔다. 대회를 3주 앞두고 급작스럽게 결정된 터라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은 짧았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우선 정리가 필요했다. 레슨은 기존 방식대로 받으면 될 거고, 문제는 게임이었다. 안 하던 게임을 해야 한다니 부담스러워 3구 연습을 주로 했다. 이 산을 넘어야 하는데, 내 한계를 깨야 하는데 마음먹었는데도 게임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습관이 이렇게 무섭다. 게임을 안 하려야 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음에도 3구 연습을 하는 관성을 깨기란 역부족이었다. 마음먹었다고 해서 삶이 금세 바뀌는 기적 따윈 일어나지 않았다. 연습 시스템이라는 철옹성을 만들어 놓고 스스로를 가두고 살았으니 이 문을 박차고 나가기엔 어쩌면 시간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3구 연습을 하기에도 시간은 부족했다. 당연히 서비스 연습은 뒷전으로 밀렸다. 시합 전 한 달 동안 서비스 연습만 했다는 관장님의 조언대로 서비스 연습에 매진하고 싶었다. 하지만 레슨과 3구 연습에 계속 밀리다 보니 매일 한 박스씩 서비스 연습을 하겠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대회에 나간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준비하겠다는 나름의 야심 찬(?) 계획이 있었다. 매일 1박스씩 서비스 연습, 레슨으로 부족한 점 보완, 탁구장 사람들과 게임을 통해 게임 수를 최대한 늘리기 등이었다. 대회 전 이러한 계획을 얼마나 실행했을까? 부족한 점을 레슨으로 보완한 거 빼고는 서비스 연습도, 하루에 몇 게임씩 하겠다는 다짐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서비스 연습의 부족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어떻게 10박스의 서비스 연습도 없이 대회에 나갈 수 있는지. 아무리 첫 대회고 경험을 쌓고 온다는 데 의의를 둔다지만 대회에 임하는 자세부터가 틀려 먹었다.
안일한 마음으로 대회에 임했던 또 한 가지의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내가 참가하는 8부는 말이 8부지 지역 5부부터 지역 8부까지 신청이 가능했다. 순수 8부인 내 경우 '이기면 금상첨화겠지만 져도 본전'이라는 생각이 오히려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절박함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져도 "다들 고수잖아요."라는 말로 핑계를 댈 수 있었다. 여자인 내가 끼어 있는 단체전 역시 이기면 좋겠지만 져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었다. 나와 함께 팀인 남자 동료들은 5부 정도의 실력이고 단지 단체전 멤버가 필요해 그들 사이에 내가 낀 것이었다. 그들은 내가 진다는 가정 아래 '자신들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져도 다들 나보다 고수다.'라는 공식적인 변명이 존재했기에, 그 핑계에, 내 마음 전부를 기댔다. '지는 게 당연한 게임이다.'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고 세뇌시킨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상위 부수를 이길지도 모른다는 기적을 꿈꿨다. 게임에 임하는 태도부터가 이 모양인데 기적이 찾아올 리 만무했다.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난 경기에 패배해 있었다. 동료들이 나에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한들 그것은 그들의 생각이고 나는 나대로 악착같이 게임에 임했어야 했다. 최선을 다해 내 경기를 했어야 했다. 져도 된다는 안일한 마음 뒤에 숨지 말았어야 했다. 져도 되는 경기가 어디 있단 말인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다면 똑같이 게임에서 졌다 하더라도 패배의 색깔은 달라졌을 것이다. 시합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포부를 묻는 팀원에게 “1승이 목표입니다."라고 말했다. 안일한 마음으로 대회에 나가는 내 무의식은 이렇듯 나의 말에 배어 있었다. 그러자 대회 경험이 많은 한 팀원이 “다 이겨야겠다고 마음먹어도 1승이 어려워요. 마음을 달리 먹어야 할걸요?”라며 일침을 가했다. 그때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대회가 끝난 다음에야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첫 대회든, 상위 부수가 내 상대이든 승부욕을 불살라야 했다. 그저 편안하게 질 핑계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기대서는 안 되는 거였다. 대회에 나가 객관적으로 너를 보고 싶다며? 실력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겁나서, 패배를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이 핑계, 저 핑계 대가며 벽을 치고 있었다. ‘첫 대회니까, 상위 부수들과의 게임이니까.’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면서.
우여곡절 끝에 도지사기 대회는 끝이 났다. 대회 준비과정, 대회에 임하는 자세, 게임 운용 능력 등 수많은 생각들이 휘몰아친다. 우물 안 개구리였다. 대회에 다녀오고 나서의 가장 큰 수확은 ‘탁구장 게임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대회에 나가 만나본 낯선 전형에 비하면 '구장 사람들의 구질은 이미 익숙해지고 이기는 것에 별 의미가 없다.'라는 걸 몸소 체험했다. 상위 부수들이 수없이 이야기했지만 내가 경험하지 않았기에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이제 머리로는 ‘구장에서의 게임은 의미가 없다.'라는 걸 안다. 하지만 연습을 좋아하는, 연습에 젖어 있는 나라는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음을 알기에 다시 한번 '이순신장군배 전국 오픈 탁구대회'에 나가기로 결정했다. 이번 대회는 연습이라는 알 표면에 스크래치를 조금 냈을 뿐이다. 이순신장군배를 통해 조금 더 깨졌으면 좋겠다. 수천 번 깨져야 삶이 바뀌듯 두 번째 대회를 통해 어느 누구와의 게임도 두려워하지 않는, 승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나로 조금씩 변했으면 한다. 도전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