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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연습 따로 게임 따로?

(드디어 연습의 효과가 나오기 시작하나?)

by 하늘

'이순신배 전국 오픈 탁구대회'를 2주 앞두고 있다. 연습만 하던 내게 게임을 시작할 이유가 생겼다. 대회를 위해서는 게임의 양을 늘려야 한다.


한 번도 시합해 본 적 없는 7부 회원에게 게임을 부탁했다. 얼굴을 보아온 지 1년 6개월이 넘었는데도 그와의 시합은 처음이다. 그는 게임을 좋아하는 성향이고 나는 연습을 좋아해 함께 탁구를 친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는 일명 ‘게임돌이’(게임을 통해 실력을 쌓는 사람)라 불린다. 레슨을 받지 않고 게임을 통해 실력을 쌓아왔다. 게임을 좋아하는 10년 구력의 그와 4년째 연습만 해 온 나의 첫 경기.


매일 보는 데도 막상 게임을 하려니 긴장감이 감돈다. 첫 번째 승부는 그의 승. 두 번째 세트는 11대 4로 나의 압승. 그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3세트와 4세트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3대 3, 5대 5, 7대 7, 11대 9 등 팽팽한 경기가 이어진다. 한 부수 차이라 경기는 빡빡하다 못해 치열하다. 그러나 그의 구력을 뛰어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심 마음 한구석에는 '레슨 받는 사람이 게임만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오만함이 있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게임만 하는 사람은 한계가 있다. 레슨을 꾸준히 받는 사람이 발전 가능성이 높다.”라는 탁구계에 떠도는 말에 기댄 생각이었다. 결과는 3대 1로 그의 승리. 레슨과 연습으로 기본기가 다져졌지만 구력으로 쌓인 그의 실력을 넘어서기엔 역부족이었다.


잠깐의 휴식시간. 분명 그가 이겼는데 착잡한 표정의 그는 아무 말이 없다. 그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삶은 밤을 묵묵히 입으로 베어 물었다가 뱉기를 반복한다. 생각만큼 쉽지 않았나? 어쨌든 대회에 나가야 하기에 다시 한번 게임을 부탁드렸다. 두 번째 경기는 2대 2 듀스의 듀스를 거듭한 끝에 이번에도 그의 승리로 끝이 났다. 하지만 이전 게임보다 경기 내용이 나아졌다. 미스하던 서비스도 받아지고 화 쪽으로 오는 서비스는 포핸드 플릭으로 먼저 공격하기도 했다. 그의 구질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첫 경기가 이 정도라면 ‘다음에는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게임 경력 10년의 그와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나. 게임 양이 부족할 뿐 앞으로 게임 수를 늘려나간다면 점점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도 꿈틀거린다. 게임의 세계에 이제 뛰어든 거니 게임을 해 왔던 이들보다 게임 운용능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경기가 끝난 후, 경기 내용을 물어보는 한 회원에게 그는 “하늘 씨 참 까다롭네.”라는 말을 건넨다. 까다롭다는 건 뭐지? 내게는 “포핸드 쪽으로 빼는 기술이 좋으니 그걸 더 강화해라. 하지만 공을 너무 급하게 친다. 1초만 더 기다려서 치면 좋겠다.”라는 조언을 한다. 이어 가방을 주섬주섬 싸며 건네는 결정적인 한 마디. “다른 사람들은 연습 따로, 게임 따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늘 씨는 연습하는 게 게임에 다 나오네” 아! 얼마나 듣고 싶었던 말이었던가? 레슨 받은 기술이 게임 중에 나오기를, 매일 반복해서 하는 연습이 게임 중에 나오기를 얼마나 바랬던가? “얼마나 연습했게요? 징글징글하게 연습했잖아요?”라는 말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내 입으로 말하진 못했다.


연습처럼 게임을 했다고? 정작 나 자신은 느끼지 못했는데 그의 말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받으니 '그간의 연습이 헛되지 않았다.'라는 생각에 만세라도 부르고 싶었다. 최고의 칭찬이다. 몸에 때려 박았던 연습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가? 좋았어. 내가 원한 게 바로 이거였다구! 게임보다 연습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내 방식이 틀리지 않았네. 잘하고 있다는, 잘 살고 있다는 감각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우후후! 우후후!


침대에 누워 그와의 게임을 복기했다.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 각각의 기술들의 수준이 중요하지 않을까? 백핸드 드라이브와 포핸드 드라이브의 수준, 스매싱의 볼 세기, 포핸드 플릭과 백 플릭을 얼마나 잘 구사할 수 있는지 등등. 게임은 이러한 기술들 간의 싸움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누가 더 나은 기술을 가졌느냐가 득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가 당황한 것은 내가 구사하는 기술들의 수준(많이 미흡하지만)이 그가 생각한 것보다 높아서(?)이지 않았을까? '다음에 이길 수 있겠다.'생각한 것도 사실 게임 운용 능력이 미숙할 뿐이지 기술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리 뒤지지 않는다는 걸 게임을 통해 어렴풋이 알았기 때문이다. 전부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사실을 그도 알았기에 첫 경기 후 아무 말이 없었던 것 아닐까?


기술적인 부분이 중요함을 알았으니 레슨을 통해 기술적인 부분들을 계속해서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순도를 높여야 한다. 기술적인 부분들이 하루아침에 확 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 그리고 배운 기술들을 게임에 자꾸 써 봐야 한다. 레슨과 게임의 조화. 앞으로 내가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지, 성장할 수 있을지는 이 둘이 얼마나 조화를 이루면서 가느냐에 달려 있다. 드디어 게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앞으로 우여곡절이 많겠지만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똑같은 구질의 탁구인은 없다. 내가 그들과 어떠한 방식으로 게임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경쟁도, 승부도 싫어하던 내가 게임의 세계에 내 발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게임을 통하지 않고는 성장이 불가능하기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깨지고 또 깨질 것이다. 그것이 성장의 이름이든 발전의 이름이든 그 길로 들어섰다. 첫 번째 발걸음이 바로 구장 사람들과의 시합이다. 게임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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