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있는 기계실도 탁구대도 빈 곳이 없어 핸드폰 메모장을 열고 2023년 목표를 적기 시작한다.
다 부족하지만 더 많이 부족한 백푸시를 강화해 보자. 1년 내내 돌아서 화 쪽, 백 쪽으로 스매싱 코스 가르기를 연습했다. 거기에 미쳐 시도 때도 없이 돌았다. “돌아서 쳐야 탁구 실력이 는다.”라고 격려하던 관장님도 “그런데 하늘 씨, 매번 돌아서 칠 수는 없어. 백푸시를 강화하는 게 어때?” 라며 돌아서 치는 것에 제동을 건다. 아니 관장님, 그렇게 해야 실력이 는다면서요? 관장님이 보기에도 지나치게 돌았나? 하긴 무모하리만치 돌긴 했다. 도는 거에 미쳐 있었다. 왜 그리 도냐고 회원들의 민원이 빗발쳤지만 돌아서 치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에 마치 돌만큼 돌아서 쳐야 끝이 난다는 듯 막무가내였다. 그래. 다 돌아서 칠 순 없지. 돌아서 스매싱을 하는 건 화쪽에서 스매싱하는 것보다 두 배 아니 세배는 더 힘들다. 나이도 한 살 더 먹었는데 백 푸시를 강화해 이제는 좀 덜 힘든 탁구를 치자. 네가 언제까지 돌아서 칠 수 있을 거 같아? 네가 언제까지 젊을 거 같아?
백 드라이브의 파워도 약한 편이다. 백 드라이브 걸 때 임팩트 있게 거는 것도 올해 목표에 추가하자. 백 쪽은 백 푸시 강화와 백 드라이브 파워 기르기가 목표다. 그럼 화 쪽은? 당연히 작년에 연습했던 백 쪽에서 돌아서 스매싱 코스 가르기를 유지해야 한다. 어렵게 얻은 감각을 잃어버릴 순 없다. 꼭 붙들고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게 해야 한다. 여기에 플러스 하나, 백 쪽에서 돌아서 포핸드 드라이브를 화 쪽, 백 쪽으로 자유자재로 걸고 싶다. 탁구 기술 중 가장 구사하고 싶은 기술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바로 이 기술이다. 그만큼 난이도가 높다. 작년 목표 중 하나였지만 돌아서 치는 스매싱 코스 가르기 연습에 매번 밀렸다. 일 년에 한 가지밖에 집중 못하는 인간임을 알았다. 이렇듯 큰 줄기는 정해졌다.
대망의 레슨 시간. 라켓을 잡고 탁구대 앞에 선다. 새로운 시작이라 그런지 표정은 진지하다 못해 비장하다. 우선 백 드라이브 파워 기르기. “마지막 순간에 라켓을 잡고 멈춰야 임팩트가 생긴다” 관장님 주문에 백 드라이브 스윙 후 절도 있게 라켓을 잡으려 한다. "백 드라이브 길이가 짧잖아, 길게 보고 걸어." 주문에는 모서리 꼭짓점을 째려보며 건다. 마치 째려보면 거기로 공이 가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눈에 잔뜩 힘을 준다. 볼 박스 한 바구니가 끝나자 백 드라이브에 힘이 붙었다는 감각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이렇게 조금씩 힘을 붙여가면 되겠지? 다음은 백 푸시. 그다음은 백 드라이브에 이은 백 푸시. 20분이 쏜살같이 흘러간다. “조금만 더 레슨 받으면 뭔가 될 것도 같은데.”라는 레슨 뒤 매번 느끼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새해 첫 레슨은 끝이 났다. 포핸드 드라이브 레슨은 받지도 못한 채 백 쪽에 올인했다.
레슨도 어찌 그리 극단적인지? 중간이 없다. 그럼 다음 레슨은 포핸드 드라이브에 올인할 건가? 오늘은 백 드라이브와 백 푸시에 올인하고 다음 레슨은 포핸드 드라이브 레슨에 올인하고 그럼 나머지 기술들은? 세 가지 기술에만 올인하다 보면 분명 나머지 기술들에 구멍이 생길 텐데. 쇼트, 커트, 백플릭, 화플릭, 스매싱 등등 얘네들은 어떻게 하냐고요?
대부분의 레슨은 다양한 기술들을 조금씩 나누어 배우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기술을 배우는 레슨은 이것대로 장점이 있으나 기술당 시간이 짧아 각각의 기술을 업그레이드하기엔 한계가 있다. 짧은 시간으로 언제 각각의 기술들이 늘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나처럼 백 푸시라는 한 가지 기술을 집중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키고 싶은 사람에겐 이러한 레슨법이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는 레슨을 무시할 수도 없다.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는 레슨을 받지 않으면 금세 다른 기술들이 잘 되지 않는 참사가 벌어진다. 온전히 내 것이 된 기술들이 없어서 금방 표가 난다.
오늘처럼 한 가지 기술을 집중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레슨도 필요하고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는 레슨도 필요하다. 문제는 이 비율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가지고 있는 기술을 유지하는 레슨과 원하는 기술을 집중적으로 받는 레슨. 시간과 비용은 한정되어 있고 슬기로운 레슨 생활을 위해선 어찌해야 할까? 매일매일이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