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어떻게 매일 성장하니?
(라이징 스타?)
정체국면이다. 한참 물이 올랐다고 해서 붙여진 요즘 나의 별명은 라이징 스타다. 가장 하위부수니 올라갈 일만 있으니 회원들이 좋게 봐주어 이런 별명이 붙은 거다. 이 나이에 어디 가서 라이징 스타라는 말을 듣겠는가?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이제 라이징 스타에서 내려와야 하나? 한참 잘 되던 탁구가 안 된다. 쭉쭉 실력이 늘던 느낌이 온 데 간 데 없다. 직관적으로 탁구가 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몸이 말해주고 있었고 고수들과의 경기에서 이제껏 레슨 받고 연습했던 것들이 저절로 나왔다. 의식해서 치지 않아도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내 몸의 반응이 신기했고 연습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내심 뿌듯했다. 연습 스타일의 내 탁구 치는 방식이 인정받는 것 같아서, 마치 내 삶이 인정받는 것 같아서 더 좋았다.
주말 리그전에서 몇몇의 고수들을 이기자 “8부가 아니다. 7부로 승급시키자.”는 의견이 나왔다. “무슨 8부가 드라이브를 구사하냐? 미스도 거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거의 4년를 기본기라고 할 수 있는 포핸드와 백핸드만을 주야장천 연습해 왔다. 10년 이상 탁구를 친다면 4년 정도의 기본기 연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중국에서 탁구를 배우는 사람들은 5년 동안 다른 건 하나도 배우고 포핸드, 백핸드만 배운다”라고 귀에 딱지가 앉게 말씀하시던 관장님의 말에 세뇌당했는지도 모른다.
게임의 유혹도 많았지만 의도적으로 피했다. 연습을 안 하고 집에 오면 운동을 한 것 같지 않은 성향이 크게 한몫했다. 게임만 하고 집에 오면 뭔가 한 것 같지 않은 느낌에 짜증이 났다. 연습을 통해 희열과 자기만족을 느끼는 인간이라는 걸 탁구를 치면서 알았다. 열심히 연습하고 집에 온 날 마시는 맥주는 꿀맛이었다. 하지만 게임만 하고 온 날의 맥주는 영 맛이 없었다. 맥주 맛이 그날의 탁구 만족도의 지표가 되었다.
라이징 스타의 화려한 시절은 만끽하기도 전에 지나가 버렸다. 뭐든 누릴 수 있을 때 누리라더니 누리기도 전에 찰나의 시간은 지나가 버렸다. 낯선 구질에 당황하던 고수들도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게임이 쉽지 않아졌다. 다시 벽에 부딪힌 느낌. 밑천이 다 드러났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벽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까? 더 정교하고 퀄리티 있는 기술들이 필요하겠지? 지금 가지고 있는 기술의 수준으론 택도 없다. 결국 기술들의 순도를 높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말은 뱉기 쉬우나 쉽게 늘지 않으리라는 걸 4년 탁구 짠밥으로 알고 있다. 얼마나 더 연습하고 갈고 닦아야 백 드라이브와 포핸드 드라이브의 회전량이 늘지? 그저 서서히 는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저 묵묵히 연습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세뇌시키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10년 이상의 구력을 가진 회원들이 수두룩 빽빽인 탁구장에서 “4년 차니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가장 높다.”라는 말에 기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 면 장점이다. “떨어질 곳이 없는 부수, 앞으로 올라갈 일만 남았다.”라는 탁구계의 우스갯소리가 이렇게 크게 위로가 될 줄이야. 그래.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
라이징 스타에서 반짝하고 내려왔지만 그럼에도 내일 해야 할 연습이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앞으로도 이런 사이클이 반복되겠지? 연습하면 돼. 연습하면 된다가 만능키가 되어 버렸다. 몸이 따라주지 않아 오래 걸려도 언젠가는 길이 열릴 테니.
길이 나지 않아도 어쩌겠는가? 수많은 시도를 해 보고 노력하는 하루하루로 만족하는 수밖에. 완전한 실패와 완전한 성공을 믿지 않는다. 그런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부분적인 실패와 부분적인 성공만을 믿는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 “외적으로 길이 안 나 보여도 내적으로 길이 나게 되어 있다.”라는 문장이 있다. 다른 사람들 눈엔 보이진 않지만 연습하는 동안 내적으로 어렴풋이 길이 나고 있음을 느낀 적이 있다. 정체국면도 있어야지. 어떻게 매일 성장할 수 있겠는가? 경제학자들의 성장 논리도 아니고. 그러니 눈에 보이는 성장이 없다 하더라도 묵묵히 순도를 높이는 연습의 길을 가려한다. 주문을 다시 한 번 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