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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모든 공을 돌리고야 말 테다

by 하늘

독특한 그의 웃음소리가 탁구장에 울려 퍼진다. 아마 그가 의도한 대로 상대가 실수한 것이 틀림없다. 오늘도 그는 한 회원과 게임을 하면서 탁구공을 마구마구 회전시키고 있다. 그는 어떻게든 상대의 서비스부터 공을 회전시키려 하고, 상대가 받아넘기면 더 많은 회전을 주려 한다. ‘모든 공을 돌리고야 말겠다’라는 일념 하나로 라켓을 돌리고, 방향을 바꾸고, 공을 높이 띄운다. 그리고 상대의 공을 받기 위해 테이블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다. 회전시킨 공을 상대가 놓치면 그의 얼굴은 뿌듯함과 만족감으로 가득 차고 독특한 웃음소리로 기쁨을 만끽한다. 그에게는 탁구 칠 때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 공을 회전시켜 상대의 실수를 유발하는 데 있나 보다. 어쩜 공을 요리조리 잘 돌리는지.


그와 게임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낯선 회전 공 때문에 박자를 못 맞춰 헛스윙하기 일쑤였다. 다른 공들보다 좀 더 기다렸다 쳐야 하는데, 무턱대고 달려들어 치려고 하니 미스가 속출했다. 초보인 내게는 절대 쉽지 않은 공이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공이 있군! 관장님은 “초보가 넘어야 할 산 중 하나다. 열심히 도전해서 산을 넘어 봐. 회전을 이해하면 제일 쉬운 공이 될 수도 있다.”라고 조언한다.


우선 다른 회원들이 그와 하는 게임을 유심히 관찰한 후, 대략 네 가지 전략을 세웠다. 어설프게 공격하면 수비가 좋으니 빠르고 강하게 공격해 한 번에 끝내려고 할 것, 서 있는 위치를 확인해 반대쪽 모서리를 노릴 것, 서비스를 빠르게 넣어 공을 회전시킬 시간을 주지 말 것, 회전된 공이 오면 칠 방향을 정하고 충분히 기다렸다가 칠 것.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게임에 임하니 차츰 원하는 대로 게임이 풀리기 시작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하나하나 적용해 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의 게임을 지켜보던 한 회원이 그에게 말했다. “그렇게 공을 띄워 주고 수비만 하면 어떻게 해요? 공격해야지.” 그는 조언을 받아들여 곧바로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무리한 공격은 두 번 다 미스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의 탁구 스타일은 수비형에 가깝다. 공격하는 공을 받아넘기고 공격보다는 공을 회전시키고 수비를 완벽하게 해 상대의 실수를 유발하는 스타일이다. 왜 이런 스타일을 가지게 되었는지 물어보니 나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50대 후반에 탁구를 시작하면서 동호회에 들어갔다. 바로 게임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자연스럽게 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렇듯 탁구 생활체육인 중에는 레슨을 받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탁구를 치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세계에나 독학은 있는 법이다. “똑같은 구질의 탁구인은 하나도 없다.”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들은 자신만의 타법을 만들어 탁구를 친다. 탁구계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사파’라고 부른다. 탁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이런 스타일의 회원과 탁구 치는 걸 피했다. 보도 못한 공이고 낯설어서 감당할 수 없었다. 솔직히 “나는 레슨 받고 있는데, 저들은 사파잖아.”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단지 누군가는 레슨을 선택했고, 누군가는 독학을 선택한 것뿐인데 말이다.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되는 부분이 있다더니 탁구를 친 구력만큼 세계도 달리 보이나 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탁구를 치면서 결국 탁구를 잘 치기 위해 노력하는 건 본질적으로 똑같고,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양한 사람이 있듯 다양한 공이 있고 다양한 사람을 인정해야 하듯 다양한 공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이제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기 다른 전형처럼 보인다. 비로소 편협했던 내 탁구 세계가 조금은 넓어진 것 같다. 낯선 공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그럼 어떻게 하면 자신만의 타법으로 탁구 치는 사람들과 서로를 인정하며 즐겁게 탁구 칠 수 있을까? 이런 전형의 회원들은 게임하는 걸 좋아한다. 공을 돌리는 전형인 그 역시 연습하는 것보다는 게임을 좋아한다. 나는 유독 연습하는 걸 좋아하는 성향의 인간이다. 연습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내가 좋다. 그런데 이런 기질의 내게 그가 매일 게임을 하자고 한다.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이런 경우 난감하다. 난 연습을 해야 만족하는 스타일이고, 그는 게임을 해야 만족하는 스타일이다. 좁은 구장이라 매번 그의 제의를 피할 수 없어 더 난제다. 그래서 어느 날 조심스럽게 “평일에는 배운 걸 연습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해요. 죄송합니다. 괜찮으시면 주말에 게임하는 건 어떨까요?”하고 양해를 구했다. 감사하게도 제안이 받아들여져 그와는 주말에 게임을 한다. 평일에는 누구와도 게임을 하지 않기에 그리 기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운동이라는 게 즐겁기만 하면 되지’라는 단 하나의 목적만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인간이라는 게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탁구를 하면서 재미도 있어야 하고 성장도 해야 하고 남에게 인정도 받아야 한다. 내 경우 욕심일 수 있겠지만 이 모두를 충족시키고 싶어 레슨을 통해 기술을 배우고, 연습을 통해 성장을 꿈꾸며, 게임을 통해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물론 그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연습이고, 게임은 가뭄에 콩 나듯 하고 있지만 말이다.


탁구장에 오는 탁구인들의 목적은 제각기 다르다. 누군가는 즐거움을 위해, 누군가는 멋있는 탁구를 치기 위해, 누군가는 성장을 위해, 누군가는 건강을 위해 온다. 종종 서로의 목표가 충돌할 때가 있다. 이런 부딪힘 속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잘 지내는 방법을 찾아 가는 게 탁구 기술만큼 어렵다는 걸 배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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