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스타일: 미스 없는 탁구를 지향함. 수비와 공격의 밸런스가 좋음. 느리게도 빠르게도 자유자재로 박자를 가지고 놈. 상대에 따라 스타일 변환을 잘함. 서비스든 리시브든 경우의 수가 많은 만능템 부자. 그러나 본인 도취형이라 그걸 보느라 비위 상할 때도 있으니 주의요망.
지금의 탁구장에서 레슨을 받기 시작할 무렵 한 달에 한 번 정도 출몰하는(?) 그를 보았다. 부수가 있는지도 몰랐던 탁린이때라 ‘잘 치는 사람이 관장님이랑 게임하는구나!’ 별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전해 듣기로 그는 전국 오픈 2부까지 쳤고 지금은 지역 0부라고 한다. 그의 특이한 점은 연습이든 게임이든 본인의 탁구 기술에 취해 자화자찬하는 것이었다. “와! 내가 생각해도 정말 예술이다. 이 순발력과 감각 어쩔 거야? 봤죠?” 자고로 본인 입으로 스스로를 그렇게까지 칭찬하는 경우는 드문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자연스러운 일인 듯 자신에게 칭찬세례를 퍼부었다. 말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탁구장 거울에 비친 자신의 스윙폼을 만족스럽게 쳐다보며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마치 얼굴 표정이 '진짜 멋있는데?'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 인간은 정체가 뭐지? 원래 나르시시즘이 강한 인간인가? 어디서도 보지 못한 캐릭터다. 헬스장에서나 볼 법한 근육질 몸에 발은 움직일 때마다 삐삐 소리를 내며 바닥을 훑는다. 선수들이나 낸다는 삐삐 소리를 그에게서 처음 들었다.
그와 대적할 만한 회원이 없기에 그는 주로 관장님과 게임을 한다. 관장님 역시 지역 1부로 "왕년에 날아다녔잖아. 지역대회는 다 휩쓸고 다녔다.”라는 이야기를 그에게서 수없이 들었다. 1부들끼리의 대결은 흔치 않기에 회원들 모두는 숨을 죽인 채 경기를 지켜본다. 관장님 주특기는 다른 사람보다 반 박자 빠른 드라이브다. 펜 홀더 전형이라 대부분의 공을 돌아서 눈 깜짝할 사이에 드라이브를 걸어 구장 상위부수들도 쉽게 디펜스 하지 못한다.
그러나 상대의 특기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수비다. 관장님의 드라이브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 다 막아 버린다. 공격이 먹히지 않으니 몸에 점점 힘이 들어가는가 싶더니 연달아 실수를 하기 시작한다. 그 틈을 비집고 그가 코스를 깊게 드라이브 공격을 하는데 미스가 없다. 거기다 공을 이리저리 코스로 빠르게 빼 관장님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만든다. 그야말로 관장님이 그에게 끌려 다닌다. 관장님은 이제 헉헉거리다 못해 기진맥진한 표정이다. 52세의 관장님과 40세의 그. 시간이 지날수록 관장님의 체력은 바닥이 나고 아직도 팔팔하게 기운 넘쳐 보이는 그의 승리로 게임은 끝이 난다. 관장님이 회원들에게 “정말 잘 친다. 아마추어가 그처럼 자세 낮추기 힘들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빵점이다.” 라며 칭찬을 하자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그는 “관장님 나이에 이 정도 버티시는 거면 정말 잘하시는 거다. 저도 많이 힘들었어요.”라고 말한다.
이런 와중에 그의 적수가 나타났다. 관장님 아들인 선수출신 최코치가 군대 가기 전 구장에서 레슨을 시작한 것이다. 최코치와 그와의 첫 경기. 그와의 게임에서 매번 지던 관장님이 둘의 경기를 뚫어져라 지켜본다. 최 코치가 선수 출신이라 그에게 핸디를 3개 잡아준다. 역시 선수는 선수다. 완벽에 가까운 그의 수비도 최 코치의 공격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다. 수비가 안 되니 공격으로 득점을 내려 하지만 몸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 싶더니 미스를 하기 시작한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림인데?
관장님과는 아무렇지도 않게 게임을 하던 그가 연신 타월에 땀을 닦는다. 탁구복 역시 흥건히 젖어 있다. 최 코치는 함께 탁구를 치고 있나 싶을 정도의 말끔한 얼굴로 탁구대에 서 있다. 19세의 최코치와 나이 40의 그. 경기 내내 아무렇지 않은 최코치와 달리 수차례 수건으로 땀을 훔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관장님과 그와의 예전 경기 모습이 겹쳐 보인다. 그 역시 관장님처럼 점점 지쳐가고 최코치의 승리로 게임은 끝이 난다. 녹초가 된 그는 관장님에게 “버티려고 엄청 노력했어요.”라는 말을 건넨다. 관장님이 그와의 경기에서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듯 그도 온 힘을 다해 버텼다는 말이리라. '관장님은 제 마음 알지요?' 마치 동의를 구하듯이. 그런데 우리의 최코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친구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으며 유유히 탁구장을 빠져나간다.
언제나 승자일 수는 없는 법
그래서 인생이 공평한 것 일수도
관계와 관계가 맞물리는
열두 살차이가 나는 관장님과 그
스물한 살 차이가 나는 그와 최코치
버티려는 자와 뚫으려는 자
젊음과 나이 듦
많은 생각들이 교차한다.
오늘도 탁구장의 누군가는 버티려 하고 있고 또 누군가는 버티려는 자를 뚫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