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슬기로운 유튜브 생활
(내게 유튜브 영상이란?)
“레슨은 6개월 정도 받았고 탁구 유튜브 영상은 하루 평균 6시간 이상 본다.”
30대 초반 남자회원이 “레슨 받은 지 얼마나 됐어요?”라고 묻는 내게 건넨 말이다. 휴식 테이블에 앉아 있는 회원 역시 유튜브 영상을 보며 라켓을 들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영상 속 모션을 따라 한다. 이렇듯 탁구장에서 유튜브 시청은 일상적인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어느 고수는 "유튜브 덕분에 내가 탁구를 배울 때보다 배울 수 있는 여건이 좋아졌다. 솔직히 지금의 탁구 환경이 부럽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과연 그럴까?
남자 회원들의 경우 레슨보다 유튜브 영상을 통해 기술을 배우려는 성향이 강하다. 한 남자회원에게 왜 그런지 물어보니 “원래 남자라는 족속이 그래. 다른 사람한테 배우는 걸 좋아하지 않아”라며 남성 특유의 성향을 이유로 든다. 남자 회원 전체로 일반화시키긴 힘들지만 그런 이유도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문제는 레슨을 받으면서 유튜브에서 본 영상을 근거로 코치의 레슨법에 이견을 제기하는 경우 발생한다.
젊은 남자회원이 관장님께 레슨을 받고 있다. 관장님이 포핸드 드라이브를 할 때 고칠 점을 지적했는데 “제가 하는 스윙은 유튜브에 나오는 여러 코치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방법이에요.” 라며 자신의 스윙법을 고집한다. 유튜브에서 배운 대로 하고 싶은데 교정하라고 하니 받아들이기 힘든가 보다. 관장님의 얼굴색이 변하는가 싶더니 분위기는 냉랭하다 못해 싸해진다. 그 또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는 생각에 아차 싶었는지 “관장님 방법도 시도해 볼게요.”라며 한 발 물러선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 뭐 하러 레슨을 받나? 유튜브로 배우지.
관장님은 자신의 레슨법에 이의를 제기하는 회원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자괴감이 들지 않았을까? 마치 공교육의 선생님처럼 말이다. 사교육 시장 즉 인터넷 강의 시장에는 스타강사가 넘쳐난다. 스타강사에게 인터넷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공교육 선생님들의 강의는 시시하게 느껴질 수 있다. 탁구도 마찬가지. 탁구 유투버들도 스타강사들과 비슷하다. 그러니 관장님의 레슨법에 만족하지 못할 수밖에. 관장님은 회원들이 추종하는 유투버 코치들과 경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탁구를 배우는 환경은 나아졌으나 영상 속 코치와 현실 속 코치 사이의 충돌은 오늘도 진행 중이다. 그래서 유튜브 영상을 아예 보지 말라는 코치도 있다. “유튜브가 그 사람 탁구를 다 버려 놓는다.” 라면서. 그럼 슬기로운 유튜브 생활은 뭘까?
탁구를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나 처음으로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이명재 코치의 포핸드 영상이었다. 기억에 남는 건 포핸드를 칠 때 손에 힘을 뺐다가 공이 맞을 때 힘을 주라는 것이었다. 공도 맞추기 힘들었던 시기에 그의 말은 그저 이론일 뿐 현실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주문이었다. 초보인 내게는 오히려 되던 것도 되지 않는 혼란만 일으켜 유튜브를 냉큼 끊었다.
지금에서야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안다. 그러나 안다고 해서 이 말을 실천하고 있는가 하면 그건 또 다른 문제다. 1년쯤 지나 포핸드 드라이브를 배우면서 다시 선수 출신 코치의 포핸드 드라이브 영상을 보았다. 관장님과 유튜브 코치의 레슨법이 달라 관장님께 물었더니 “선수 출신 코치들은 생활체육인에게 맞는 드라이브가 아니라 자신들이 선수 시절 배운 드라이브를 가르친다. 솔직히 생체인은 그런 방법으로 탁구 치기 힘들다.”라고 답한다. 생체인에게 맞는 포핸드 드라이브가 따로 있다고? 또다시 혼란스러워졌다. 감당할 수 없어 다시 유튜브를 끊었다.
시간이 흘러 3년 차에 접어들면서 유튜브 영상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다른 관점으로 유튜브를 본다. 이전에는 무지해서 뭘 봐야 할지 몰랐다면 이제는 내가 안 되는 기술, 예를 들면 백 푸시가 안된다고 하면 그 기술에 관한 영상을 찾아본다. 방법을 따라 하려는 게 아니다. 백 푸시에 대해 전반적인 걸 알고 싶어서다. 백 푸시 하나만도 여러 가지 접근법이 있다는 걸 유튜브를 통해 알았다. 그립 잡는 법, 러버의 경도, 타점, 한 번에 습득하기 어려운 기술이므로 단계적으로 힘을 키워 나가는 법 등등. 레슨 때마다 관장님은 완성형을 요구하고 그게 맘대로 되지 않으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영상을 보며 답을 찾았다. 사람마다 손목 힘이 다른데 내 경우 손목 힘이 약해서 백 푸시를 할 만한 힘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금 받고 있는 레슨과 연습이 손목 힘을 키우는 과정이라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점점 나아질 거라는 희망도 생겼다.
사실 나도 백 푸시 영상을 보고 탁구 로봇을 이용해 그 방법을 그대로 따라한 적이 있다. 그러나 꾸준히 하기 힘들었다. 본 걸 꾸준히 하지 않고 일회성으로 끝나버리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에는 수많은 기술 영상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보는 것과 내가 연습하는 것은 다르다. 본다고 내 것이 되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지. 이것도 살짝, 저것도 살짝, 발만 담갔다간 오히려 선택과 집중을 막아 이도저도 아닌 세월만 흐를 것 같았다.
4년이 지난 지금 나는 몸으로 알고 있다. 기술 하나를 온전히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은 지름길을 찾아 기웃거리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몸으로 한 땀 한 땀 익히는 반복 연습에 있다는 것을. 수많은 동영상 채널은 그러한 본질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때로는 10분짜리 영상으로, 때로는 길게 풀어서 1시간짜리 영상으로.
그래서 유튜브 시청을 완전히 끊었냐고? 그럴 리가. 탁구인이 유튜브를 끊으면 쓰나? 대신 지금은 기술을 배우기보다 탁구 전반에 대해 알고 싶어서 본다. 집안일을 할 때면 생체 최강 윤홍균의 ‘티밸런스 탁구’을 틀어놓고 듣는다. 30대 유투버라 젊은이들의 탁구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다.
불타는 금요일에는 맥주 한 캔을 딴 후 밤 11시에 하는 ‘임창국의 핑퐁타임’ 라이브 방송을 본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즐겨보던 드라마 시청도 뒷전이다. 핑퐁타임 중 가장 좋아하는 카테고리는 “탁구 썰 방송‘이다. 탁구장에 있는 동안 무슨 연습을 주로 해야 하는지, 파트너와 어떻게 연습해야 더 효율적인지, 기술 한 가지를 얻으려면 얼마나 집중적으로 연습해야 하는지, 나이가 있는 생체인들은 탁구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등등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들에 대한 썰들이 2시간 가까이 펼쳐진다. 격하게 공감한다. 나는 원래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어느 단계쯤에 있는지 궁금한 사람이다. 이 영상을 통해 지금 내 탁구가 어디쯤에 있는지, 어느 단계쯤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내게 필요한 건 기술도 기술이지만 탁구 전반에 대한 지식이다. 탁구라는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탁구 사이클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탁구 메커니즘은 무엇인지. 이런 것들 속에서 나는 무얼 하고 있는지. 무얼 해야 하는지. 이런 이야기들이 듣고 싶었다. 본인들은 '썰'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그 '썰'이 어떤 기술적인 영상보다 더 마음에 와닿았다. 40-50대 생활체육인이 주 시청층이라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서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슬기로운 유튜브 생활이 뭔지 잘 모르겠다. 그저 시간이 흐르면서 유튜브 영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고 선택하는 유투버도 수시로 바뀌고 있다. 인생은 평생 선택이라는데 그저 수많은 영상들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요즘도 유튜브 영상을 끼고 사냐고? 아니 잠시 끊었다. 수없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가르쳐주는 영상들에 지쳤다. 보는 건 많으나 몸이 따라가지 못한다. 정보 과잉. 아는 건 많은데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니 죄책감만 쌓인다. 너무 많이 봤다. 보는 탁구는 잠시 안녕. 당분간은 몸으로 탁구 치는 것에 집중하려 한다. 링에 올라가야 할 선수는 유투버들이 아니라 결국 나다. 그럼에도 오늘 밤 다시 유튜브 버튼을 누를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