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 포핸드 드라이브를 거느라 연신 끙끙거린다. 백 쪽에 서 있다가 돌아서 드라이브를 거느라 숨이 턱까지 차 오른다. 그래도 다시 한번 숨을 고르고 힘을 내본다. 밀린 숙제 중이다.
올해 마지막 주, 마지막 레슨이다. 12월에 들어서야 올해 목표가 떠올랐다. 야심 차게도(?) 내 계획은 쇼트와 스매싱, 백 드라이브, 포핸드 드라이브의 화 쪽 백 쪽 코스 가르기였다. 쇼트와 스매싱, 백 드라이브는 미약하나마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지만 문제는 포핸드 드라이브의 코스 가르기였다. 드라이브의 속도, 회전량, 정확성 어느 하나 만족스럽지 않다. 물론 한 번에 다 되기 어렵다는 걸 안다. 원하는 기준치가 있었는데 거기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거다.
12월 한 달은 밀린 숙제하는 학생처럼 백 쪽에서 돌아서 화쪽, 백 쪽으로 포핸드 드라이브 거는 걸 집중적으로 레슨 받고 있다. 목표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자 용을 쓴다. 미리 열심히 좀 하지 그랬어? 물어본다면 글쎄 할 말이 없다.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각각의 목표들에 점수를 매겨보니 기대이하다. 제 점수는요? 쇼트는 60점, 스매싱은 80점, 백드라이브는 70점, 포핸드 드라이브는 50점. 스매싱은 선전했고 포핸드 드라이브는 퇴보했다.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뭘 열심히 한 거지? 열심히 하는 걸 열심히 했나? 허무하다고 관장님께 투덜거렸더니 “무슨 탁구가 그렇게 쉽게 느는 거냐?” 며 타박을 한다. 그래. 탁구가 그렇게 쉽게 느는 게 아니라잖아. “그래도 스매싱이 세졌잖아. 옛날을 생각해 봐. 10배는 빨라졌을 걸. 하여튼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니까."라며 2 연타를 날린다. 그래. 스매싱은 지난해보다 세졌잖아.
내년 5월이면 5년 차 탁구인이 된다. “한 사람의 탁구 스타일은 거의 5년 안에 결정된다.”라는 '핑퐁타임' 조현우 코치의 말이 계속 귀에 맴돈다. '그때쯤이면 뭔가 되어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때쯤이면 뭔가 나만의 색깔이 있어야 되는 거 아냐?' 조바심이 난다. 이제까지는 '이런 방식으로 탁구를 치다 보면 차차 실력이 늘겠지'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5월이라는 마감을 정하고 나니 초초하다. 그래서 더더욱 12월 한 달을 밀린 숙제한다는 핑계를 대고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 5월이 두려워 다른 사람들은 한 해를 정리하는 12월에 피치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5월까지 포핸드 드라이브를 강화하는 아니 끝장을 보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다가 한편으로는 “이렇게 빨리 결정을 내려하는 빨리 쇼브를 보려 하는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한다.
징그럽게 안 느는 게 탁구라는데
20년 탁구를 친 예전 코치도 탁구가 뭔지 이제야 조금 알겠다는데.
뭘 그리 결과를 빨리 내고 싶어 하는지.
조급하게 마음먹지 말자고 ‘워워’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래도 목표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니 다시 계획 세우는 모드로 돌입. 사람 참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내년 목표는 더 원대(?)해졌다. 코스 가르기에 더해 백 드라이브와 포핸드 드라이브의 파워 기르기를 추가했다. 추가한다고 추가가 될 진 모르겠지만. 목표는 국가대표급이다. 이러다 선수될라. 계획 세우기 선수.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가 아니라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그 끝은 미약하리라? 그럼에도 미약하게 끝날지라도 시작은 창대하게 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