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탁구는 보는 것보다 치는 게 더 재미있다?

by 하늘

'여기 다 모여 있었네'

대회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수많은 사람들이 탁구대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경기를 하고 있다. 결연한 표정의 탁구인들이 때로는 '파이팅'을 때로는 “아”라는 탄식 섞인 한숨을 교차하고 있다.


2층으로 올라가 대회장을 둘러보니 장관이 따로 없다. 7대의 탁구대가 일렬로 네 줄, 총 28대의 탁구대가 깔려 있고 각각의 탁구대에서는 승패를 가리느라 여념이 없다. 다들 어디 숨어 있다가 나왔지? 탁구 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거기다 탁구 잘 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이곳은 올해 처음으로 열리는 전국 오픈 탁구대회인 제7회 김좌진배 대회장이다.

탁구 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탁구는 보는 것보다 치는 게 더 재미있다.”라는. 마치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탁구인들이 이곳에 다 모여 있는 듯하다. 지난주 다녀온 프로리그의 썰렁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 생활체육인 탁구 인구는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1년 기준 약 185,567명이다. 우리나라만큼 생체 탁구대회가 이렇게 자주 열리는 나라도 없다고 한다. 영월 동강 배, 안동 하회탈 배, 포항 과메기 배, 김해 금관가야 배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대회가 전국 각지에서 일 년 내내 열린다. 그중 하나가 이번 대회다.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기에 전체적인 대회장 분위기라든지 대회가 어찌 진행되는지 선수들이 어떤 식으로 게임하는지 찬찬히 볼 수 있었다. 선수가 아닌 관중으로 한 발짝 떨어져 볼 수 있었다. 우선 부수별로 플레이가 어떻게 다른 지부터 보았다. 특히 여자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며 앞으로 어떤 탁구 스타일을 추구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역시 눈에 들어오는 플레이는 드라이브를 구사하는 여성 탁구인이었다. 그중 8부 여성 선수와 6부 남성 선수 간의 게임이 인상적이었는데 드라이브 전형의 여성 선수는 화쪽에서는 물론 돌아서도 자연스럽게 포핸드 드라이브를 구사해 내가 추구하는 탁구스타일과 유사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저렇게 자연스럽게 드라이브를 구사하기까지 얼마나 연습했을까? 그녀의 노력이 그녀의 스윙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실 이러한 경기관람은 덤이고 대회장을 찾은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어리버리한 운전실력임에도 한달음에 홍성까지 달려온 이유는 생활체육 탁구인 중 아마추어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윤홍균 선수가 이 대회에 출전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매주 화요일 밤 그가 진행하는 티밸런스 탁구 유튜브 방송인 ‘생활체육탁구 상담소’를 즐겨 본다. 탁구용품사의 사장님이기도 한 그는 라켓의 재질, 러버, 경도 등에 대한 설명과 탁구 전반에 대한 지식, 젊은 탁구인들의 동향 등을 알려줘 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생활체육탁구 상담소'라는 이름에 걸맞게 탁구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민을 털어놓는 구독자에게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해 준다. 최근엔 실력 증진을 위해 단점을 보완하는 것과 장점을 강화시키는 비율을 어떻게 가지고 가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이 인상적이었다.

이렇듯 유튜브 영상으로만 보던 그가 이번 대회에 참가한단다. 마침 지난주 프로리그 선수들 경기도 보았으니 아마추어 최강자의 경기를 한 번쯤은 보고 싶었다. 콘서트에서 가수를 기다리듯 그의 등장을 기다렸다. 얼마나 잘 치길래 어떻게 치길래 아마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그리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개인전에는 참가하지 않고 오후에 열리는 단체전에만 참가한다.

3시 30분이 지났는데도 그를 호명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귀는 바짝 열어두고 경기장 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닌다. 아! 많이 보던 얼굴이 보인다. 유튜버 알럽핑퐁이 카메라를 설치하고 카메라 뒤에서 멘트를 하고 있다. 탁뀨TV의 딱뀨도 보이고 씅튜브도 보인다. 씅튜브는 지난번 대회에서 직관했으니 탁뀨의 경기를 보기 위해 자리를 옮긴다. 영상에서 보았던 그의 전매특허 서비스인 와이지 서비스를 넣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고릴라캠핑배에서 우승한 김도엽 선수도 보인다. 마스크를 쓰고 있을 때는 나이가 좀 있는 줄 알았는데 앳땐 모습이다. 게임 영상에서 자주 보았던 구정운과 송예영 선수의 얼굴도 보인다. 발에 치이는 사람들이 유튜브 영상 속 친숙한 얼굴들이다. 하마터면 아는 체할 뻔했다. 영상 속 사람들의 경기를 실제 보고 있으려니 신기했다. 나 혼자 신났다. 그렇다고 뜬금없이 다가가 "구독자예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런 숫기 있는 인간도 아니고 그런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다. 스타를 만난 듯 한껏 들떠 흥분해 있는 나와 달리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은 이들이 안중에도 없다. 유명하거나 말거나 유투버이거나 말거나. 그들은 오늘의 주인공이 유투버들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드디어 윤홍균의 이름이 불렸다. 24번 탁구대에서 게임을 한단다. 실물 영접? 영상과 똑같은 모습의 그가 라켓 케이스를 들고 터벅터벅 걸어온다. 드디어 그의 경기를 직관하다니!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동영상을 찍는 동시에 눈은 하나라도 놓칠세라 게임에 고정시킨다. 다른 선수와 뭐가 다른지 꼭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뚫어지게 쳐다보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드라이브 걸 때 속도가 빠르다는 것, 코스가 날카롭다는 것, 상대의 서비스를 짧게 잘 놓는다는 것 등 일반적인 것들만 보였다. 딱 내가 아는 만큼만 보였다. 더 잘 쳐야 더 잘 보일 텐데. 어찌 되었든 그의 경기를 직접 본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그거면 됐다. "구독자인데 사인 한 번만 해 주세요."라고 말해볼까 몇 초 고민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쑥스러웠다. 숫기 없는 팬 같으니라고! 일종의 덕질이긴 한데 소심한 덕질이 아닐 수 없다.

아쉬운 마음은 그의 두 번째 경기를 지켜보는 것으로 달래기로 했다. 그런데 나만 덕질을 하고 있을 뿐(아무도 덕질인지 모름) 상대편 선수들은 물론 양옆 테이블 선수들 역시 그가 윤홍균이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는다. 그들에게는 그들이 주인공인 게임만이 유일한 관심사다. 라켓을 들고 서 있는 모든 선수가 주인공이다. 모두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탁구. 인생에서 우리는 주인공 역할을 얼마나 하고 살까? 주인공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세상에서 탁구 대회장은 그런 우리를 주인공 자리에 앉혀 놓고 마음껏 뽐내게 한다. 자신의 이름이 커다랗게 새겨진 등번호를 하나씩 달고 각자의 무대에서 저마다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다. 그래서 조연일 수밖에 없는 프로리그 관중석을 마다하고 직접 라켓을 들고 대회장을 누비나 보다. "탁구는 보는 것보다 치는 게 더 재미있다."는 말은 진실인 걸로. 오늘부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걸로.

탕! 탕! 탕!

keyword
작가의 이전글67.2023 두나무 한국프로탁구리그 참관기(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