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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포인트 레슨인데 탁구를 잘못 배웠다고 하네요

by 하늘

“여자 코치한테 레슨 받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선수 출신 여자코치가 새로 왔어. 원포인트 레슨 한다니까 한 번 받아 봐.” 이른 아침 다른 구장에 다니는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예약시간은 오후 3시. 오! 드디어 유튜브 영상에서 보기만 했던 원포인트 레슨을 받아보는 건가? 사실 원포인트 레슨 받을 기회는 지난 프로리그 관람 후에도 있었다. 탁구장 동료가 용인에서 탁구장을 하고 있는 유투버 ‘쇼티스트’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받는다고 해 따라간 적이 있다. “커트와 리시브가 불안해 지난 대회 8강에서 떨어졌다. 같은 전형인 펜홀더 코치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받고 싶다.”라는 게 이유였다.

쇼티스트는 탁구 스타일을 봐야 한다며 구장에 있는 회원과 게임을 하게 한 후 궁금한 점과 문제점을 짚어 주었다. “지금까지 손가락과 손목으로만 하는 커트가 습관이 되어 있어요. 그러면 엄청 불안해요. 겨울에 눈 쓸 때 넉가래를 몸에 붙여서 밀고 가잖아요. 넉가래 밀듯이 라켓은 받쳐 놓고 팔뚝으로 커트한다고 생각하고 해 보세요. 손가락과 손목은 고정시키고요. 커트가 좋아져야 리시브가 좋아지고 리시브가 좋아져야 게임도 좋아집니다.” 탁구장 동료는 포인트를 콕콕 짚어 주는 레슨에 “아! 이렇게 하는 거였군요. 길이 보입니다. 이제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얼굴빛마저 환해진 동료는 “하늘 씨도 한 번 받아봐요.” 권했다. 원포인트 레슨을 받는다면 나 역시 같은 전형의 셰이크 코치한테 받고 싶었다. 여자 코치라면 더 좋고. “다 고치라고 할까 봐 겁나서 못 받겠어요.”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드디어 셰이크 전형의 여자코치에게 원포인트 레슨 받을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런데 미리 알고 있었던 걸까? 예언은 적중했다. 다 고쳐야 한단다. 첫 번째는 서비스. 주력으로 넣는 서비스를 보여준 후 “서비스가 단조로워 서비스부터 배우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나쁜 서비스는 아니다. 같은 모션에서 튀는 횡 서비스도 있어야 하니 횡 서비스를 알려 드릴게요.”라며 라켓의 각도부터 시작해 어떻게 횡 서비스를 넣는지 디테일하게 설명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횡 서비스 넣을 때 겨드랑이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왼팔이 막아서 어렵단다. 코치님 말대로 왼팔이 막지 않게끔 해본다. 어라? 그런데 왼팔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옛날 습관과 새로운 방법이 격렬하게 부딪힌다. 한참을 헤매다 “왼팔은 당장 못 바꾸겠어요. 지금 상태에서 횡 서비스 넣는 방법을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말씀드렸다. 코치님은 “한 번에 되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은 어떻게 넣어야 되는지만이라도 알고 가는 게 중요합니다”라고 강조한다.

두 번째는 커트. “커트에 자신이 없어 오히려 백 드라이브가 편합니다.”라며 커트를 보여 드렸다. “그립부터 잘못 잡고 계시네요. 너무 편하게 잡고 계셨어요. 그러니 자꾸 커트를 펐던 겁니다. 어때요? 그렇게 잡으니 훨씬 안정감 있지요? 이 감각을 본인이 알아야 해요”라며 커트 랠리를 한다. 익숙하지 않은 그립에 손목이 아파온다. “처음이라 아픈 거예요. 습관이 되면 익숙해질 겁니다.”


마지막은 백 푸시. “백 푸시를 하고 싶은데 잘 안 됩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우선 쇼트를 해보라고 한다. “쇼트할 때 백스윙 자체가 없네요. 아까 스매싱할 때도 백스윙이 없던데. 회원님의 문제는 포핸드와 백핸드를 할 때 백스윙이 없는 게 문제네요. 백스윙을 해야 백푸시도 가능한데.”


‘아이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군.’ 서비스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커트도 쇼트도 스매싱도. 5월이면 탁구 친 지 5년인데 여태 뭘 배운 거지? 갑자기 현타가 몰아치기 시작한다. 애들 말로 마상(마음의 상처)을 입었다. 이 와중에 원포인트 레슨을 소개해 준 지인이 기름을 들이붓는다. “어째 지난번 봤을 때랑 변한 게 하나도 없네. 레슨 받고 있지 않아?” 이 말을 듣고 있던 코치님 역시 “쇼트 그립도 이상하던데 코치님이 지적 안 해 주셨나 봐요. 이상한데요.”라며 의아해한다. 시원찮은 제자 때문에 괜히 관장님만 이상한 코치로 낙인찍히게 생겼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냉큼 “관장님은 제대로 가르쳤는데 제자인 제가 못하는 거지요.”라는 말로 철벽을 친다. 다시 한번 “다 제 잘못입니다.”라는 말로 쐐기를 박는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다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진 않는다. 주섬주섬 짐을 싸 지인과 카페로 이동했다.

“어땠어?”라는 그녀의 질문에 횡설수설 두서없는 말을 늘어놓는다. “다 바꾸어야 하는군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나요? 솔직히 자신 없네요. 제 탁구 스타일이 쉽게 바뀔 것 같지도 않고요. 지금은 군대에 가 있는 예전 코치는 쇼트할 때 백스윙 하지 말라고 가르쳤거든요. 차라리 공이 튀자마자 앞에서 따닥따닥 치는 게 상대가 공격하지 못하게 박자를 뺏는 방법이라면서요. 이미 그 방식이 제 몸에 굳어져 있어요. 잘 안 되면 방법을 바꾸겠는데 잘 되고 있는데 굳이 바꿔야 할 필요를 못 느끼겠어요. 스매싱 역시 뒷 스윙 없이 앞에서 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어요. 게임 때 앞에서 스매싱을 치니까 빠르고 위력적이더라고요. 코치님이 틀렸다는 게 아니에요. 문제는 제 선택이겠지요. 이미 몸에 배어버린 습관을 다시 처음으로 리셋해서 가느냐? 아니면 지금의 방식에서 바꿀 수 있는 부분만 고쳐서 가느냐? 전 후자 쪽인 것 같아요. 솔직히 기존의 탁구 습관을 다 뜯어고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요. 백 푸시는 쇼트와 달리 코치님의 조언대로 뒷스윙을 해 치도록 해 봐야겠어요.” 말하면서 정리가 된다더니 그나마 혼란스러웠던 생각들이 나름 정돈이 된다.

한참 동안 내 말을 듣던 지인이 갑자기 원망 가득한 푸념을 한다. “예전 코치 때문에 내 탁구가 망했다. 사람들이 포핸드와 백핸드를 잘 친다고 했고 나 역시 포핸드와 백핸드를 잘 친다는 감각이 있었는데 다 고치려고 해서 아무것도 안 됐다.” '다 고치려고 해서'가 문제의 핵심이다. '다'라는 말은 이렇게나 위험하다. 다 고치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 이렇듯 리셋의 부작용은 만만치 않다. 나는 현재의 나를 인정하고 가기로 했다. “탁구에 정답은 없다.”라는 말을 부여잡고 가련다. 정답은 없지만 내게 맞는 방법은 있을 테니까. 그 방법을 찾는 건 온전히 내 몫일 테니까. 결국 네 마음대로 할 건데 원포인트 레슨은 왜 받았냐고? 이런 경험 역시 내게 맞는 탁구 스타일을 찾는 과정이지 않을까?


*쇼트(short): Backhand로 짧게 밀거나 치는 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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