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이렇게까지 탁구를 쳐야겠니?
(계속 달리거나 소진되어 나가떨어지거나)
"남편이 진짜 효과를 봤다니까 그러네.
몸이 아주 소진되었는데 그거 먹고 원래 상태로 돌아왔어. 너도 이제 50이야. 관리 잘해야 해.
40대와 50대는 천지차이야."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투덜거리는 내게 지인이 비책을 내놓았다. "기러기 진액이 진짜 효과 있다니까."
작년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조금만 뛰고 나면 숨이 가쁘게 차 오르고 체력이 바닥났다는 걸 온몸으로 체감한다.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쳐도 지치지 않았던 체력이기에 이런 내가 당황스럽다. 사실 받아들이기 힘들다. 한 번은 롱핌풀 전형 고수님과 한 시간 정도 연습을 한 뒤 휴식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어라? 그런데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핌풀 전형이라 드라이브를 평소보다 많이 걸어 힘들 수 있겠지만 예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점점 땅으로 꺼져가는 가는 기분. 탁구라켓을 다시 잡았다간 영영 라켓을 못 잡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결국 한 시간 탁구를 친 후 집으로 돌아왔다. 한 시간 운동? 4년 9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잠자리에서는 "아이고아이고"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고 다음 날 아침에는 온몸이 두드려 맞은 듯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이렇듯 체력이 바닥을 치고 있다. '한 살 더 먹었다고 이러기냐?' 버럭 화를 내 보지만 소용없다. 체력은 바닥이요. 쉰다고 해서 예전처럼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다. 갑자기 탁구를 그만둔 언니들이 생각났다. 비슷하게 탁구를 시작한 40대 후반에서 50대 10명 중 지금 탁구를 치는 사람들은 3명 정도다. 그녀들 중 요즘 자주 생각나는 사람은 몸이 소진되어 탁구를 쉬고 있는두 명이다.
한 명은 50대 초반의 나이로 낮에는 지인의 가게를 봐주는 알바를 하며 저녁에는 탁구를 병행하다가 체력이 바닥나 탁구를 그만뒀다. "갑자기 일을 하게 되어 피곤했는데 계속 탁구를 친 게 화근이었다. 그때 무리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탁구대에 서면 똑같은 강도로 탁구를 치니 몸이 견뎌내지 못했다."라며 소진된 체력을 회복한다며 몇 년째 탁구를 쉬고 있다.
또 다른 한 명은 50대 중반의 나이로 포핸드 드라이브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연습하면서 몸이 급격히 안 좋아져 탁구를 쉬고 있다. "나이는 점점 먹어 가는데 드라이브 같이 하체를 많이 쓰고 체력이 많이 드는 기술을 연습하려니 죽겠다. 힘들어 침대에 누워 있기 일쑤다. 집안일도 못한다. 건강해지려고 탁구 치는데 이건 아니지 않니?"라며 버티다 버티다 탁구를 관뒀다. "몸부터 챙기련다. 탁구 안 치니까 너무 좋다."라는 말로 자신의 근황을 전한다. 둘 다 체력이 바닥나 나가떨어졌다. 어디 둘 뿐일까? 내게도 두 사람과 같은 전조증상이 스멀스멀 나타나고 있다.
계속 달리거나 소진되어 나가떨어지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는 걸까? 둘 중 하나면 안 되는데. 그러기엔 난 탁구를 너무 사랑하는데. 오래오래 치고 싶은데. 체력이 안 좋아지면서 운동을 하는 만족감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예전 강도만큼 운동을 하지 못하니 괜스레 짜증이 나고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니 레슨 받는 것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레슨을 빡세게 받아야 만족하는 스타일이라 레슨의 강도는 거기에 맞추어져 있다. 레슨의 강도를 알기에 더 멈칫했다. 예전에는 종횡무진 레슨실을 뛰어다니며 흠뻑 땀을 흘려야지만 제대로 된 운동을 했다는 뿌듯함과 충만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랬던 내가 레슨실에서 뛰는 걸 부담스러워하다니!
나이 듦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비난하더니 정작 나 자신이 나이 듦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내노남불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너는 더 이상 젊지 않다.'라고 몸이 외치고 있다. 어떻게든 나는 버티려 하고 몸은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온다. 운동량도 조절하고 탁구 스타일도 나이에 맞게 바꾸어야 한다는 걸 안다. 때가 왔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텨 보려 하는 건 욕심일까? 아직 원하는 만큼 포핸드 드라이브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지도 못하는데 몸은 어쩌자고 이렇게 빨리 신호를 보내는 걸까?
기러기 진액을 권하는 지인의 말을 듣는데 왜 농구 선수 서장훈의 말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운동하는 동안 뱀을 얼마나 먹었는지 모른다." '탁구 선수도 아닌데 기러기 진액까지 먹으면서 탁구를 쳐야겠니?'라는 마음과 '그렇다고 나가떨어질 순 없잖아?'가 격렬하게 부딪힌다. 그러다 답을 찾았다. 아니 나이 50이니까 먹는 거야. 4자에서 5자로 나이가 바뀌었잖아. 나이 50을 기러기 진액과 함께 시작하다니. 아침저녁으로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나도 내가 이런 걸 먹을 줄 몰랐다.
(참고로 기러기는 집에서 키우는 식용 기러기다. 나도 이번에 알았다. 오해 없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