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2023평창 아시아탁구선수권국가대표선발전 관람후기
(가고 또 갑니다)
눈이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방황한다.
에이!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여기는 2023년 평창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선발전이 열리고 있는 당진 고대 실내체육관이다. 두나무 프로리그처럼 하나의 탁구대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닌 무려 다섯 대의 탁구대에서 TV에서나 봐 왔던 탁구 선수들이 경기를 하고 있다. 이게 무슨 별천지란 말인가? 바로 내 눈앞, 2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신유빈이 보이고 장우진이 보이고 이상수. 안재현. 조대성, 전지희, 양하은, 김나영 등이 보인다. 탁구 선수 총출동이다. 내가 전생에 나라라도 구한 걸까? 눈이 호강에 겨워 사치를 누리고 있다.
국가대표선발전 둘째 날 탁구장 동료와 고대 실내체육관을 찾았다. 백야 김좌진장군 배 전국 오픈대회가 열렸던 홍주 문화체육 센터와 유사한 공간이지만 선수들은 생활체육인에서 탑랭커 프로선수들로 바뀌었다. 같은 공간, 다른 느낌. 탁구대 5대에서는 국가대표 선발을 위한 혈전이 벌어지고 있다. 선발되거나 떨어지거나. 한 경기 한 경기 선수들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그들이 이러한 절실함을 가지고 시합을 하는 동안 난 그저 탁구가 마냥 좋은 생활체육인으로서 관중석에 앉아 그들을 바라본다.
메인 탁구대에서 전지희 선수와 신유빈 선수의 경기가 시작된다. 여자선수들의 경기는 처음 보는데 그게 바로 삐약이 신유빈과 여자탁구 랭킹 1위인 전지희의 경기라니! 이왕 왔으니 ‘뭐라도 하나 배워 가야지’라는 강박에 두 눈을 부릅뜬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뭘 봐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동료와 내가 처음 내뱉은 말은 “와, 진짜 빠르다. 왜 이렇게 빨라?”였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저런 랠리 속도가 가능한가? 혀를 내둘렀다.
“하나라도 배워가야 할 거 아냐? 다른 거 보지 말고 스텝만 봐.”입을 다물지 못하고 연신 “와”라는 감탄사를 내뱉는 내게 동료가 다그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의 눈동자는 이미 그들의 코스를 가르는 랠리에 맞춰 박자를 탄다. 고개가 좌우로 움직이며 공을 따라다니느라 진자운동을 한다. 그의 말대로 그녀들의 스텝을 보려 했으나 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 공을 보느라 스텝만 보긴 어렵다. 나를 압박하던 남자회원에게 “주로 뭘 보고 있느냐?” 물으니 그 역시 “그러게 뭘 봐야 하는지 모르겠네. 보느라 정신이 없네” 머쓱해한다. 둘 다 그저 피식 웃어버렸다.
이렇게 집중하지 못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메인 탁구대뿐이 아니라 다른 탁구대에서 펼쳐지는 경기도 봐야 했다. 양하은과 신효빈, 김나영과 김서윤, 서효원과 이시온의 경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니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욕심인 줄 알지만 다 보고 싶었다. 눈은 4대의 탁구대를 쫓아다니느라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그런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뭔가를 얻어가려는 것 자체가 뭔가를 배워가려는 것 자체가 우스운 발상 아닐까? 탁구를 시작한 나이, 하루에 훈련하는 시간과 양, 접근법 등 뭐 하나 생활체육인과 비슷한 조건이 하나도 없는데 마치 비슷한 조건이라도 되는 양 배울 점을 찾는다. 태생부터가 다른데. 뿌리부터가 다른데. 우물가에서 숭늉 찾기? 그의 말대로 스텝을 보면 어쩔 것인가? 선수만큼 스텝 연습을 할 수 있나?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할 수 있나? 난 프로가 아니라 생활체육인인데.
경기 관람 후 탁구장을 찾았다. 관장님이 대뜸 “뭘 배워왔느냐?” 물으신다. 신유빈이 게임 할 때 다리를 많이 벌리고 랠리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나는 그녀처럼 다리를 쫙 벌리고(?) 랠리를 한다. 그런데 관장님 왈 “이미 다리 넓이는 신유빈이다. 신유빈 포핸드 드라이브 못 봤어? 하늘 씨는 드라이브 칠 때 팔이 너무 넘어가잖아. 그걸 고쳐야 한다니까 그러네.” 다른 건 못 쫓아가도 다리 넓이는 쫓아갈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망했다. 나와 함께 간 동료는 “선수들 백 드라이브가 엄청 빨랐다. 거의 백으로 승부를 보더라.”며 그걸 흉내 내느라 연신 미스를 한다. 미스를 해도 너무 하는 바람에 함께 게임을 하던 회원이 “형님은 국가대표선발전을 잘 못 보고 오셨네요. 그게 그렇게 한 번에 됩니까? ”라며 급소를 찌른다. 맞다. 부작용이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질라. 그럼에도 그와 난 작은 시도를 해 본다. 똑같아지진 않더라도 내 탁구에 새로운 바람 정도는 불어넣어 줄 수는 있으니까. 새로운 기운 정도는 불어넣어 줄 수 있으니까.
다음 달 5월이면 구력 5년의 탁구인이 된다. 5년을 한 달 앞두고 마음이 착잡했다. 목표한 바도 못 이루었고 어느 기술 하나 제대로 구사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5년이면 뭔가 결과가 나와야 하는 거 아냐?’ 스스로를 닦달하다보니 탁구 치는 게 재미없었다. 마침 국가대표선발전이 인근 지역에서 열렸다. 6일 중 4일을 가고 또 갔다. 차로 20분이 걸리는 거리를 운전하면서 ‘나는 왜 가고 또 가는 걸까?’ 생각했다. 관중석에 앉아서도 ‘나는 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걸까?’ 생각했다. 답은 간단했다. 그냥 재미있었다. 즐거웠다. 내 평생 언제 또 이런 선수들의 경기를 지척에서 이렇게 가까이 볼 수 있겠는가?
요즘 탁구가 재미없었던 것도 사실은 탁구에 너무 많은 의미를 찾으려 해서가 아닐까? 5년이라는 시간의 의미를 꼭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강박이 오히려 탁구를 재미없게 만들었다. 하루하루 충실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면 될 것을,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면 될 것을.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책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사실 의미를 따져 묻기 시작하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세상은 완고하고 인간은 제각기 어리석다. 의미를 따지지 말고 자기만족이든 뭐든 마음이 가는 대로 자유롭게 움직여야 하는데.” 모든 것에 기어이 의미를 찾고야 말겠다는 ‘의미병’이 문제였다. 국가대표 선발전을 보면서도 뭐라도 배워가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마지막 국가 대표선발전이 있던 날, 비로소 순수한(?) 탁구 팬으로 거듭났다.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았다. 그저 팬으로서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했다. 선수들이 랠리 하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봤다. 때로는 마음을 졸이기도 하고 때로는 박수를 치면서. 그 순간을 마음껏 즐겼다. 서효원 선수와 양하은 선수의 국가대표 선발전 마지막 경기를 다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마냥 좋았다. 원하는 만큼 실컷 팬질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탁구팬으로서 호사스러운 사치를 누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알았다. 짐을 싸 터벅터벅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선수들을 보며 그들은 국가대표선발전이 끝나도 그들의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갈 것이라는 것을. 그러니 나도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 나가면 된다는 것을. 에이 또 뭘 알았단다. 요놈의 ‘의미병’. 단번에 고쳐지진 않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