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씨, 상대가 드라이브 걸 때도 쇼트할 때 그렇게 대기만 하면 어떻게 해?
쇼트를 대지 말고 쭉 밀라고.”
“밀면 나가서 미스하는데요.”
“그래도 그렇게 연습해야 실력이 늘지.”
관장님 말대로 미는 쇼트를 했더니 역시나 공이 나가 버린다. 미스가 반복된다.
연습 상대인 상위부수가 공을 주으러 가는데 표정이 좋지 않다. 눈치가 보인다.
냉큼 원래의 습관대로 대는 방식으로 원상복귀. 이번엔 관장님의 표정이 좋지 않다.
아! 관장님을 따르자니 상위부수의 눈치가 보이고 상위부수와의 연습을 계속하자니 관장님의 눈치가 보이고.
이러한 연습은 마음 편한 같은 부수랑 해야 하나?
이 놈의 백 푸시. 요놈이 요즘 골칫덩어리다. 같은 부수인 연습 파트너와의 연습시간. 그와 교대로 쇼트 랠리를 하다가 백 푸시로 상대의 수비를 뚫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백 푸시로 상대의 진영 5번 뚫기가 목표다. 백 푸시가 미숙한 난 낑낑거리며 있는 힘껏 그의 수비를 뚫어 보려 하지만 쉽게 뚫리지 않는다. 끙끙거리는 소리만 높아진다. 소리로만 뚫렸다면 이미 뚫렸겠지?
백 푸시인지 뭔지 모를 모호한 스윙으로 3개의 미션을 마친 후 “이제 하세요. 5개를 했다간 오늘 중으로 연습 못 끝낼 것 같아요.”라며 파트너에게 순서를 넘겼다. 파트너는 백 푸시의 달인답게 3개를 가뿐히 성공시켰다. 이러다간 5개가 금세 뚫릴 것 같았다. 그래서 그에게 “이제 공을 대주지 않고 제가 백 푸시 연습하던 대로 줄게요. 잘하시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한 번 뚫어 보세요.”라고 제안했다. 그 역시 너무나 쉽게 뚫리는 나의 수비에 연습이 충분하지 않았는지 “알았다.”며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때로는 빠른 쇼트로 때로는 백 푸시로 그에게 백 푸시할 틈을 주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처음에 그는 공격적인 쇼트에 당황해 미스를 하더니 그것도 잠시 쇼트 랠리 중 나도 모르게 공을 댈라치면 여지없이 백 푸시를 성공시켰다. 나머지 2개도 미션 클리어.
이때부터였나 보다. 대는 쇼트가 아니라 치는 쇼트가 습관이 된 것이. 한 번은 처음부터 그의 연습 순서에 치는 쇼트를 하자 그가 말했다. “아니 아까도 본인 연습, 지금도 본인 연습하는 거예요?” 아이쿠! 꼬여도 단단히 꼬였네. 뒤죽박죽이 되버렸다. 대 줘야 할 때 친다고? 치는 것에 과몰입했군. 하여튼 중간이 없다니까.
드디어 과몰입의 부작용이 정점을 찍은 날이 왔다. 한 상위부수와 연습을 하고 있다. 연습하는 영상을 찍기 위해 거치대에 핸드폰을 올린 후 촬영을 한다. 포핸드와 백핸드로 가볍게 서로 몸을 푼 후 그의 포핸드 드라이브를 대줄 차례. 그러나 나는 원래 포핸드 드라이브를 대지 않고 치는 습관이 있다. 대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미스가 속출해 치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이날도 여느날과 다름없이 포핸드 드라이브를 대지 않고 친다. 그도 나의 이러한 습관을 알고 있었지만 연타가 되지 않고 자꾸 랠리가 끊어지자 “계속 칠 거예요? 댈 생각은 없어요?”라고 물어본다. 그때 눈치챘어야 했다. 쳐도 너무 쳐 댄다는 것을. 뭐에 씌었던 걸까? 그의 신호는 무시한 채 “원래 이렇게 쳤는데요.”라는 말을 함으로써 기름을 끼얹고 말았다. 상대의 안색이 변했는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번엔 내 차례. 쇼트를 하고 돌아서 상대의 백 쪽으로 스매싱, 쇼트를 하고 돌아서 상대의 화쪽으로 스매싱 연습을 한다. 이번엔 그의 연습 차례. 그가 쇼트를 하고 돌아서 나의 백 쪽으로 포핸드 드라이브를 건다. 잘 댄다 싶었는데 미스가 나기 시작한다.
갑자기 그가 휴식시간을 제안한다. 분위기가 싸하다. 그리곤 한마디 한다. “무슨 말을 해도 본인 마음대로 할 거죠? 그러니까 아무 말도 안 하겠어요.” 싸늘한 정적이 흐른다. 그때서야 알았다. 나 혼자 연습했다는 걸. 그는 충분히 연습 하지 못했다는 걸. 연습파트너가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까도 본인 연습, 지금도 본인 연습하는 거예요?”
아이쿠! 끝장을 봤군! 그렇게도 극혐하던 교감이 되지 않는 운동을 했군. 내 연습만 하는 이기적인 인간이 되었군! 아차 싶었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 있었다. 가만히 그의 눈치를 봤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 연습만 했네요. 저는 댄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요. 지난번 연습이랑 똑같이 한다고 했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잘못은 했다 생각했는데 무엇이 달라졌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답은 동영상에 있었다. 잘못은 시인했지만 뭘 잘못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그가 동영상을 보며 설명해 주었다. “첫째, 상대가 포핸드 드라이브 걸 때는 잘 대진 못하더라도 상대를 위해 치지 않고 대려고 노력해야죠. 쳐도 너무 치잖아요. 지난번에는 이렇게까진 치지 않았다고요. 둘째, 상대가 돌아서 포핸드를 걸 때 쇼트를 좀 보세요. 저게 대는 겁니까? 치는 거지. 쇼트를 대야 상대가 연습할 거 아닙니까?” 결론은 대야 할 때 대지 못하고 쳐댄다는 것. 포핸드까지는 예전 습관이니까 그렇다손 치더라도 쇼트까지 쳐대니 제대로 된 연습을 할 수 없어 이 사단이 났음에 틀림없다. 습관의 힘이 이리도 무섭다. 파트너와 백 푸시 연습을 한다고 공격적인 쇼트연습을 했던 게 몸에 각인되어 있다가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나왔나 보다. 댈 때 댈 줄 모르고 냅다 쳐버리는.
아! 이래서 탁구가 어렵다. 한 방향으로만 냅다 달리다 보면 부작용이 속출한다. 백 푸시에 몰입했더니 대는 걸 잃어버렸다. 관장님은 레슨 시간 내내 “언제 백 푸시 할 거냐?”라고 푸시하고 레슨 밖 현실에서는 백 푸시에 몰입한 나머지 대야 하는 공도 쳐 버리린다. 아! 혼란스럽다. 언제쯤 대야 할 때 대고 쳐야 할 때 칠 수 있을런지? 지금은 칠 때와 댈 때를 알아가는 과정 어디쯤인가? 그럼에도 이번엔 치는 쪽으로 너무 기울어져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내가 간과하고 있는 게 있었다. 바로 나와 탁구를 치고 있는 상대였다. 내 욕심만 챙기느라 바빴다. 상대와의 교감은 무시한 채. 상대에 대한 배려는 하지 않은 채. 이런 방식으로 탁구를 쳐서 잘 치게 된들 무슨 의미가 있다고? 탁구를 배워도 한참 잘못 배웠다. 죽비 같은 하루였다. 정신이 번쩍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