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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사 Jan 01. 2024

마개 빠진 년의 '청남대'

_ 충북 청주에는 청남대가 두 곳이 있습니다.

:


1. 청남대


'대학교' 아닙니다.

신규대학이 많다 보니, '청남대'라고 얘기하면 대학이라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아 먼저 알려드립니다. 



청남대-나무위키
남쪽의 청와대, 청남대(靑南臺)
역대 대통령들의 휴양지이자 별장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2003년 참여정부 출범 후 개방되기 전까지는 민간인 및 외부인 출입통제구역으로 지정되어서 그동안에는 청와대 공인의 내빈 및 외빈이 아닌 일반인 및 외부인은 출입이 엄금되어 있는 곳이었다.


청남대의 겨울_ 청남대 포토갤러리


청주 가볼 만한 곳, 충북 가볼 만한 곳으로 검색하면 상위권에 랭크되는 청남대. 한 나라를 대표하는 분은 어떻게 휴식을 취할지, 어떤 곳에서 잠을 잘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궁금하지는 않았지만, '개방'한다 하니 보고는 싶었다. 있는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것 같은 '별장', 그것도 대통령의 별장라니 한 번쯤은 보고 싶었다.


'청남대'라는 대학 아닌 대학이름 같은 이름을 듣게 된 건 중학교 때인 거 같다. 여름인지 겨울인지 모를 계절에 길을 막아서는 경찰이 있는 곳에 서있다 보면, 선글라스를 끼고 오토바이를 탄 경찰과, 한 번에 보기 어려웠던 엄청난 숫자의 경찰차, 검은색인데도 번쩍번쩍 광이 나는 차들이 일렬로 지나가곤 했다.


"대통령 온대!"


세일러 카라의 교복을 입은 우리들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짧은 모가지를 길게 쭉 빼고 대통령이 앉아 있을 것만 같은 검은 차량을 매의 눈으로 쏘아. 카로운 매의 눈깔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기나긴 차량 행렬의 뒤꽁무니만 부지런히 쫓아갈 뿐, 언제나 대통령 보기는 '실패'했다. 대통령이 이곳 청주까지 왜 왔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아쉽기는 했던 검은 차량 속 대통령 찾아내기.


"대통령 왜 왔대?"


우리는 몰랐다. 기나긴 행렬 끝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귀 밑 3센티 단발머리 중학생 소녀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어른들은 없었다. '청남대'에 왔다는 것을 들은 거 같기지만, 청남대가 뭔지도 몰랐고, 알았다 해도 그게 끝이었다. 이후 몇 번 이런 일을 겪으며, 청남대가 대학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게 되었음에도, 대통령이 왜 왔는지는 전혀 모를 일이었다.


청남대, 남쪽의 청와대, 대통령의 휴양지이자 별장.  '대통령'이라는 특별함에, '사적' 공간에 대한 은밀함, '별장'이라는 부의 유혹을 보탰지만, 막상 방문해  청남대는 오로지 하던 일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기 적당한 곳었다. 책과 명상. 자연이 푸는 노라마. 이제는 더 이상 대통령은 오지 않지만, 힐링하기 좋은 장소임에는 틀림없 남쪽의 청와대.




2. 청남대


'남쪽의 청와대' 아닙니다.

'청남대'라고 얘기하면 대통령의 별장이라고 아시는 분들이 많아 먼저 알려드립니다. 


청주에는 남대가 두 곳이 있다. 한 곳은 앞서 설명한 대통령의 별장이고, 한 곳은 지도에는 있지만 검색으로는 찾을 수 없는 곳다. 힐링하기 좋은 장소이고 가까이 있지만 자주 방문하지는 않는 대통령의 청남대와는 달리, 은밀하고, 비밀 가득하며, 지독히 치명적인 또 하나의 "청남대"는 가까이 있기도 하지만 자주 방문하는 곳으로 앞으로도 준히 방문할 예정이다.  


번쩍번쩍 빛나는 검정 세단에 몸을 뉘인 대통령처럼, 윤기가 좔좔좔 흐르는 찐한 핑크색 베드에 몸을 뉘이면, 물기를 잔뜩 머금은 입자들이 포근히 나를 감다. 촉촉하고 따뜻한 온기를 이불 삼아 스르륵 눈을 감으면 세상 그곳이 나의 별장이요, 그때부터 나만의 천국이 쳐진다.


엎어 졌다 바로 했다, 다리를 벌렸다 오므렸다, 엉덩이를 들었다 내렸다, 날 이끄는 낯선 이의 손길을 따라 몸을 이리저리 굴리다 보면, 뭉쳤던 근육은 야들야들 해지고, 거칠었던 몸뚱아리는 보들보들거린다.


2023년 12월 25일 _ 크리스마스의 청남대_ 사진으로 처음 찍어봄


지도에는 있지만, 검색으로는 찾을 수 없는 청주의 또 다른 '청남대'는 목욕탕. 식 명칭은 '청남대사우나'. 하필 이름이 청남대라서 이렇게 또 풀밭이 되어버렸다.


자주 방문하지만 월급을 '카드라는 선불'로 땡겨쓰기에 현금은 한결같이 씨가 말라 기껏해야 세신은 한 달에 한 번밖에 못한다. 세신사님께 처음 몸을 맡겼을 때는 기본세신비가 1만 5천 원이었고, 목욕비도 5천 원이었으니, 단돈 2만 원으로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이렇게 행복할 수 있나 싶어 내가 이래서 돈을 벌지 흐뭇해하다가, 내가 이래서 돈을 벌어야지 굳은 다짐도 하게 된다.


전문세신사님의 손길이 애초부터 편안했던 것은 아니다. 엎어 졌다 바로 했다, 다리를 벌렸다 오므렸다, 엉덩이를 들었다 내렸다.


홀딱 벗은 몸뚱아리를 남자친구도 아닌 세신사님께 맡기는 게 부끄럽고 불편해서 그런가 싶겠지만, 전혀 아니다. 홀딱 벗어 제낀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목욕탕에서 벗어 제끼는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니까. 다만, 세신 할 때마다 내 귀에 도청장치가 생겨 불편해진다.


"마개 빠진 년!"


"마개 빠진 년!"은 우리 엄마가 당신 입으로 내뱉는 가장 심한 욕으로, 달린 머리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정신머리 놓고 다닌다는 의미인데, 의미 해석 없이도 일상으로 내뱉었던 이 욕을 최작가는 처음 들어본다 하여 풀어내 보았다. 


어릴 적 엄마는 토요일 새벽마다 나와 동생을 데리고 목욕탕에 다녔다. 목욕탕까지는 걸어서 20분도 넘는 거리였는데, 꼭 새벽 4시 반에 우리를 깨웠고 동생과 나는 징징거리면서도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목욕탕엘 다녀와야 주말 아침에 했던 만화영화를 볼 수 있었고, 엄마는 아무도 몸을 담그지 않은 새벽 첫 탕 속에 몸을 담그시는 걸 좋아하셨기 때문에 새벽 목욕은 엄마에게도 우리에게도 당연한 일과처럼 느껴졌다.


당연한 일과는 우리 집이 이사를 하면서 끝이 났다. 그렇다고 하여 새벽목욕이 끝난 것은 아니었는데, 당연한 일과에서 명절 밑 행사 정도로 바뀌게 된 것이다. 명절 밑 행사로 목욕탕에 갔을 즈음은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동생은 중학생이었다. 등짝은 여전히 엄마 몫이었지만, 이제는 제 몸뚱아리 때 밀 정도는 되었기에 각자 노란 때타월로 팔, 다리, 배, 엉덩이, 목, 가슴을 밀어재꼈다.


아주 가끔씩, 어쩌면 더 자주, 젊은 여자들이 세신사님의 베드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엄마와 나는 그때마다 거침없이, 그렇지만 들에겐 들리지 않게 욕을 했다.


"마개 빠진 년!"


두 손 두 발 멀쩡하고, 기운이 남아도는 젊은 여자가 그 잠깐 힘든 게 싫어서, 굳이 돈을 써가며 때를 미는지. 나도 엄마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 집이 넉넉지 않아서, 절약이 일상이 된 엄마 입장에서는 자기 몸뚱아리 미는데, 힘을 쓰지 않고 돈을 쓰는 여자라서 "마개 빠진 년!"이었다면, 나는 본인의 노력 없이 돈으로 때우는 그녀들이 꼴 보기 싫어서 "마개 빠진 년!"에 맞장구를 쳤다.  


"마개 빠진 거 아니니?"라고 "년"자를 뺀 이 말을 엄마 여동생 즉 우리 이모가 제일 많이 듣고, 그다음은 내 동생인데, 나에게는 특별히 이 말을 직접 내뱉진 않았지만, 나는 세신 할 때마다 엄마한테 대답한다.


"엄마. 마개 빠진 년이 바로 나야."


두 손 두 발 멀쩡하고, 혼자서 몸뚱아리를 밀 기운도 있지만 세신사님께 몸을 내맡기는 게, 그리도 행복할 수 없다. 이제는 목욕비 8천 원, 미니마사지 4만 5천 원. 5만 3천 원을 가져야 누릴 수 있는 행복이지만 "마개 빠지 년!"이라고 욕을 들어먹어도, 핑크빛 베드에 납작 엎드려 내 몸을 맡기는 순간부터 딸기맛 요플레로 전신을 도배하는 그 순간까지는 나에겐 천국이다.


청남대사우나는 사진에서 보이다시피 외형은 매우 낡았다. 그나마 작년 여름 내부 보수공사로 실내 시설은 보이는 것보다는 좋아졌는데, 처음 갔을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걸 느끼지 못할 만큼 미비한 보수였다. 목욕탕이라는 제 기능에 충실한 목욕탕일 뿐이지만 대통령의 별장보다 더 귀한 나의 힐링센터가 바로 '청남대사우나'다.


목욕비 8,000원, 미니 마사지 45,000원+ tip 2,000원, 피부과 평균 회당 15만 원, 속눈썹 45,000원. 한 달 평균 25만 원. 나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전문가들은 즐비한데, 입출금만 하는 경리의 급여는 야박하지 그지없다. 쓰는 만큼 벌고, 버는 만큼 쓸라고 했는데, 이달도 마이너스.



이래서 엄마가 "마개 빠진 년!"이라고 한 건가? 이여사 예리하십니다.



2023년 12월 25일 _ 해피크리스마스에 방문한 청남대는 청남대사우나였습니다. 대통령의 별장이자 남쪽의 청와대는 이미 몇 년 전 방문하였답니다. 


_ 꼬박 한주가 흘러, 오늘은 2024년 01월 01일입니다. 

오늘도 전 청남대를 다녀왔지만 "마개 빠진 년!"은 아니었습니다. 

욕부터 들어먹고 새해를 맞이하기는 싫어, 슬렁슬렁 때를 밀다 전신 스크럽으로 마무리했네요. 

올 한 해도 평온한 날들이길. 

평온한 날들 속에 즐거움도 가득하길. 

그 즐거움이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2024년도 건필하세요 :)




# 청남대

# 청남대사우나

# 청주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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