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리사 Dec 14. 2023

'합리적 의심'의 소유자_ CSI 201호

_ 관리부 김과장 : 협소한 주차장이 부른 대참사 :

:


"주차장 CCTV  확인할 수 있을까요?"


201호는 그렇게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주차장에 CCTV가 있나요?"


나는 201호에게 되물었다.

_


상가주택 관리를 하고는 있지만, 건물별로 설치되는 시설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단 한 번을 방문하지 않았으니. 나에게 상가주택은 계약서 스캔, 세무신고 대상, 입금내역확인의 대상으로 건축물의 주소는 지도만으로 확인하고, 건축주는 계약서와 허가필증으로만 확인한다.

나의 편를 위해, 연락처 저장은 상가주택 주소, 호수, 이름 순으로 저장하기 때문에, 카톡이 오면 어디 주소지의 누구인지 바로 알 수는 있으나, 시설 관련해서는 부장님께 여쭈어야만 답을 보낼 수 있다.

201호는 거주지 주차장에 CCTV가 있고, 이를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부장님께 여쭙기 전에 무슨 내용을 확인하고 싶은 건지 일단 물었다. 개인정보가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으니, 확인해야 했다.


"차에 침을 뱉었어요."


왐마. 뭔 일이래.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나는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인지 여쭈어도 되냐고, CCTV 확인 전에 내용파악부터 하겠다고, 괜히 세입자 간에 분란을 일으키면 안 될 듯하다고.


201호는 얼마 전 주차문제로 같은 주소지 세입자와 실랑이를 벌였고, 그날 이후 자기 차에 누군가 침을 뱉었고, 그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으니, 실랑이를 벌인 세입자가 범인일 거라 했다.

합리적 의심_ 특정화된 감이나 불특정 한 의심이 아닌 구체적이고 명확한 사실에 기반한 의심_ csi 매니아다운 단어 선택이었어. 좋아. 잘했어.


'닦으면 그만 아닌가?' 머릿속으로 생각한 걸 들었을까?


"그냥 침이 아니에요. 가래침!!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제가 그냥 세차했거든요. 토악질이 나서. 근데 이번엔 못 참겠어요. 세차비라도 받아야겠어요."


그냥 침이 아니란다. 가래침이란다. 왐마. 상상만으로도 토할 것 같다. 나도 생긴 것과는 달리 비위가 약하다. 우웩. 성토하듯 내뱉는 201호의 말들을 들어준다. 누군가가 공감해 주면 가라앉기도 하니까. 그러시냐고. 얼마나 속상하셨냐고. 최대한 빨리 부장님께 확인 후 다시 연락 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대략 내용을 파악한 후 부장님께 CCTV가 있는지, 확인이 가능한지 여쭈었고, 201호 말대로 CCTV는 있었고, 확인도 가능했다. 부장님께 201호 연락처를 전송했고, 201호에게는 부장님과 직접 연락한 후 함께 확인하라고 톡을 보냈다.  

_


우리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상가주택의 경우 대부분 1층은 상가, 2, 3, 4층은 주택인데, 주택 세대수에 비해 주차 공간이 좁아, 한집에서 2대를 주차하는 경우, 또는 1층 상가 손님이 과하게 주차하는 경우 시비가 자주 발생하고, 항의 전화도 자주 온다.

아니나 다를까 201호 역시, 같은 세입자와 주차 문제로 시비가 붙었는데, 201호는 시비가 붙은 세입자를 의심하고 있었고, 합리적 의심을 뒷받침할 증거자료 확보를 위해  CCTV 확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CCTV 확인 결과, 시비가 붙었던 세입자가 보이긴 하지만, 그분이 침을 뱉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세차비로 12만 원이 들었다고 하는데, 차를 아끼지 않는 나로서는 주유소 통돌이 세차를 하기 때문에 5만 원 이상 결제 시 세차비는 4,000원이라서 201호의 말에 공감되지 않았다. 납득도 되지 않았다. 뭐 이리 비싸.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차종이 뭘까요?"


"벤츠요."


평범한 근로자인 나에게 벤츠는 '그저 얻어 타는 차'

간결했다. 벤츠라잖아. 201호 전세보증금에 맞먹는 벤츠. '그럴 수 있겠네' 벤츠라는 차종도 한몫했겠지만, 그래서 더욱 아끼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아끼는 물건에 침을 뱉는 사람을 그 누가 용서할 수 있을까?

201호는 자신의 벤츠에 침, 그것도 진득한 가래침을 뱉은 것에 열받아했고, CCTV 확인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더 약 올라했다. 201호는 분개했고, 이 집에서 나가고 싶다고도 했다.


"많이 속상하시겠네요."

_


통화를 끝내고 계약서를 꺼낸다.  계약기간이 어떻게 됐더라?

계약기간 : 2021.12.28~2023.12.27/ 남/ 투룸/ 1억 3천만/ 관리비 월 10만/ 관리비 50만 선납.


'한참 남았네. 못 나가겠다'. 톡 프로필스캔해 본다. 201호는 카스킨, PPF, 선팅, 블박, 유리막코팅을 하는 사업체를 운영하나보다. 주 고객이 수입차 소유자인지 가건물로 된 회사의 유리문에는 수입 차량의 마크가 칸칸이 부착되어 있다. 33개의 프로필 사진은 다 본인 사진인데, 프로필 배경은 언제나 본인 회사 정면 사진.


'차를 사랑하네'. 프로필 기웃거리며 어떤 사람일지 가늠해 보는 재미로 사는 나이지만, 더 가늠할 것도 없었다. 차를 사랑하고, 본인을 사랑하는 201호.


결국 201호는 임대차 기간을 반만 채우고 나갔다. 201호처럼, 임대차 기간 만료 전 세입자가 나가는 경우가 더러 있다. 소음이나, 타 지역 발령 등의 이유로 거주하기 어려울 경우, 임대차 기간 만료 전이라도 임대인과 협의하여 나갈 수 있다.

이경우, 기존의 임차인이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최초 계약서에 임대차 기간이 명시되어 있으면, 임차인의 통지가 있어도 그 기간에 대한 효력은 유효하기 때문이다. 특히, 전세의 경우 금액이 크기 때문에 미리 세입자를 구하지 않으면, 임대인의 자금이 꼬일 수 있다.


세입자들은 자신들의 보증금이 임대인의 통장에 고스란히 들어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상가주택 지분의 50% 이상은 은행 거다. 어쩌면 70%? 우리 회사 역시 상가주택 토지매입비용, 건축비용 등 은행의 힘을 많이 받는다. 이 말은 즉, 상가주택 매매가의 30% 정도의 현금만 보유하고 있으면, 상가주택 임대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건물주'. 아.. 이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가.


여튼, 임대차 기간 만료 전 세입자가 나가는 경우, 기존 세입자가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고, 새로운 세입자가 보증금을 납부하면, 기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준다. 201호처럼 임대차 기간이 일 년 넘게 남은 경우는 특히나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나가기 어렵다. 그냥 살던지,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던지. 이 두 가지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_


201호가 거주하던 곳의 상가주택은 아직은 회사소유라서 여전히 내 관리 범위 안에 있다. 201호가 나간 이후, 오늘까지 세입자의 민원은 발생하지 않았다. 1층 상가에 세입자가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01호의 '일방적인 주장'이었든, '합리적 의심'이었든, '차에 예민한 사람'이었든 벤츠에 가래침은 인상 깊었다. 나의 두 번째 풀밭이 될 수밖에 없었던 벤츠의 가래침. 201호.



'부디 사업 번창하시고, 주차 걱정 없는 곳으로 이사 가셨길 바랍니다.'



2023.11.29_ 쓰기 시작_ 비가 내리는 수요일_ 이번 글은 너무 길다_ 결국, 쪼개기.


+


   23.12.14 목_ 발행취소 후 재발행.  


'벤츠에 침이라니' 201호라는 첫 제목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제목 바탕화면으로 벤츠 차량 마크 사진을 넣었고, 거기에 '벤츠에 침이라니'라는 제목으로 '이건 벤츠에 침 뱉은 이야기야'라고 도장을 콱 찍었다.

제목에 핵심내용, 궁금할 법한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아내야 하는 게 맞지만, "벤츠에 침"은 제목만으로 내용이 다 드러나는, 글의 핵심중의 핵심을 제목에 박아 넣은 것이다. 핵심내용은 들어가 있으나, 궁금증은 유발할 수 없는 제목. 내내 신경 쓰였다. 현재 최작가_ 나의 후배이자, 나의 어깨 뽕, 최은경 작가_는 브런치에 '제목레시피'라는 글을 연재 중이다.


[제목 레시피] 한 문장으로 다 알려주지 마요

04화 읽지도 않고 외면당하는 글 (brunch.co.kr)


   딱 이 꼴이었다. 한 문장으로 다 알려준 꼴.  


결국, 발행취소 후 재발행. >> 이 부분은 혼자 알아냈다. 잘했어. 칭찬해. 23년 12월 01일 브런치 작가가 된 나에게는 글쓰기보다 어려운 것이, 브런치 활용이다. 발행된 글을 수정하는 법, 카테고리를 나누는 법, 처음 글 쓴 시간을 남겨 두는 것, 글자크기, 글간격, 사진 등 보기 좋게 편집하는 것. 브런치에 익숙지 않은 나에게는 많은 것이 어렵고 신경 쓰인다.


카테고리를 나누는 것은, 최작가에게 배워왔다. + 매거진 만들기. 매거진을 만들었더니 작품이 되었다. '관리부 김과장', '백세시대 백세까지 살까 봐', '저장과 발행사이', '그토록 하얀달' 네 개의 매거진을 만들었고, 발행 전 어느 매거진에 넣어둘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기존에 발행했던 글을 수정해서 카테고리에 넣을 수도 있었다. 아잉.. 브런치 좋고만..


아직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아 어렵고 신경 쓰이겠지만, 자주 사용하고 거기에 시간이 더해지면 편리하고 편안해지겠다 싶었다. 브런치 감옥에 갇힌 노예면 어때? 이렇게 좋은걸.



2023.12.14 오후 12:02 _ 날도 흐리고, 점심시간이지만 아직은 배고프지 않은 목요일.



# 건설업 관리부

# 상가주택관리자

# 최작가는 최은경

# 브런치 매거진






매거진의 이전글 딱 이만큼의 '주택임대차보호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