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대가 아니다. 30대도 아니고 40대다. 40대라고 말하기도 무색한 게 40대 끝트머리에 나이라는 숫자가 걸려있다. 취업을 고민하고 있지는 않지만, 전직을 고민하고 있고, 전직을 고민하게 된 근원은 백세까지 살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20대의 취업 준비처럼 절박한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50대의 노후 준비도 녹록지는 않다.
오롯이 나를 위한 지출은 목욕, 속눈썹, 피부과 한 달 평균 25만 원이지만 이것만 들까? 보험료에 생활비 등등 등등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하고, 수입의 원천을 직업으로 정하고나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다, "무엇을" 해 먹고살아야 할지가 주된 고민이 되어버렸다.
EO 스튜디오_ 최성운 PD의 '사고실험'_ 송길영 편
송길영 >> 산에 간다면 침낭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고, 바다를 간다면 부표를 준비해야죠. 근데 그거 없이 어디라도 간다고 그러면 준비할게 너무 많아져요. 내가 하고 싶은 게 없는데 준비하러 가게 되면 끝도 없이 투자를 해야 되거든요.
최성운 PD >> 그리고 나는 항상 뭔가 미달된 사람처럼..
송길영 >> 느껴지죠!! 계속해서 불안감을 증폭시켜요. 그래서 이런 것도 있어요. '뭐 하세요?' 이러면 자격증 따신다고, 20개예요. 근데 아무것도 안 쓰세요. 그렇다면 자격증을 따는 행위에서 만족을 느끼는 거지, 효용은 좀 접어두고 있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봐야 될 것은, 스승이 전 세계에 계신데, 유튜브에 채널이 5천만 개인데 내가 먼저 어떠한 것을 연구하고 싶은지를 결정해야죠. 그러고 나면 정확히 스승이 보여요. 목적지가 있기 때문에 거기까지 가기 위한 '항로'가 보여요. 그렇지가 않고 조급한 마음에 이것저것 하면 나중에는 망망대해에서 내가 힘이 빠집니다.
인스타그램 쇼츠를 보다, "20개의 자격증"이라는 말에 꽂혀 저장해 두었다가, 찾아보게 된 "사고실험". 송길영이라는 이름도 인터뷰 질문자가 최성운 PD라는 것도 찾아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노후대책이라는 망망대해에서 나의 항로는 어디일까? 뚜렷한 목적지를 정하지 않아 내가 지금 이렇게 헤매고 있는 건가? 목적지가 없어 '항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자격증을 찾게 된 이유는 때마다! 분명! 틀림없이! 존재했다. 라는 말을 계속 되뇌어 본다.
쓰기를 잠시 접어두고, 일하는 틈틈이 취득한 자격증을 내역으로 정리했다. 자격증 취득일을 기준으로, 종목, 발행처, 급수로 정리했고,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취득한 국가기술자격증은 필기시험 합격일도 함께 기재했다. 사단법인 자격증과, 평생교육원을 통해 취득한 자격증, 수료증도 정리해 보니, 증빙할 수 있는 개수만 31개다. 개수만 보면 뜨악할 일이지만, 20대 후반 취득한 워드프로세서 2급과 같은 해 취득했던 사무자동화산업기사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자격증을 30대 후반부터 취득했다.
이렇게 정리해 놓으면서 발견한 것은,
첫째, 역시나 나에겐 자격증을 찾게 된 이유가 때마다, 분명, 틀림없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20대 후반, 30대 후반, 40대 후반. 숫자의 후반마다 나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있었고, 나는 그때마다 자격증을 찾았다.
둘째, 자격증 개수는 많지만 분류된 자격증이 한 종류로 묶였다. 컴퓨터 관련 자격증.
워드프로세서 2급, 사무자동화산업기사, 전산응용토목제도기능사, 정보처리기사, 컴퓨터그래픽스운용기능사, 전자출판기능사, 컴퓨터활용능력 2급. 필기는 합격했지만, 실기를 보지 않아 취득하지 못한 전산응용건축제도기능사, 웹디자인기능사도 "컴퓨터" 관련 자격증이었다.
셋째, 애초에 목적지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지나온 길을 보면 결국 본인이 잘하고, 잘할 수 있는 곳으로 흘러간다.
20대 나의 직업은 편집디자이너였다. 지금 나의 직업은 입출금만 하는 경리이다. 디자이너와 경리.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이 둘의 공통점은 컴퓨터라는 도구를 사용해 일을 한다는 것이다. 편집디자이너일때는 일러스트, 포토샵, 쿽익스프레스라는 프로그램을 주로 다루었고, 지금은 엑셀, 파워포인트를 주로 다룬다. 프로그램은 다르지만 컴퓨터를 이용해 결과물을 내는 것은 동일하고, 나는 프로그램을 잘 다루며, 또한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게 좋다. 컴퓨터 앞에서 쓰기를 하는 이 순간도 말이다.
넷째,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다.
'컴퓨터 관련'이라는 대분류로 묶인 자격증 외에 취득한 국가기술자격증은 직업상담사 2급. 이 자격증은 2021년 취득했는데 필기 1회, 실기 1회로 합격했으며, 동차합격의 놀라움을 선사해 준 자격증이기도 하다. 기사급임에도 불구하고 동차합격 할 수 있었던 것은 2020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능력개발교육원에서 교직훈련과정을 이수한 후 "직업능력개발훈련교사" 자격시험을 치르며 공부했던 과목과 다수 겹쳤기 때문이다. 직업능력개발훈련교사는 고용노동부장관이 발급하는 자격증이다.
다섯째, 꾸준히 자격증을 취득하고 있는 내가 기특하다. 푸하하하.
꾸준히 무언가를 해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잘 안다. 꾸준한 노력 없이 성과를 이루는 것은 없고, 꾸준히 노력한 자를 이길 수도 없다. 꾸준히 노력한자가 전문가라는 얘기가 괜히 나왔을까? 비록 자격증을 따는 행위에서 만족을 느끼고 있을 뿐, 쓸모라는 효용은 접어두고 있지만. 꾸준히 배우고 공부하고 있는 내가 기특하다.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결과물은 절대 없으니.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내가 노후에 일하게 될 직종은 컴퓨터관련직이나 직업상담 쪽이지 않을까? 학원에서 강의를 하거나, 학원생 직업상담을 할 가능성이 높은 편이고, 학교에서 방과 후 교사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전기 관련 자격증을 취득한다면 전기업종에서 입출금만 하는 경리로 일 할 수도 있을 테다. 새로운 분야는 재미있고, 입출금은 내가 전문가니까.
신재생에너지발전기사(태양광) 취득을 시작으로 그 어렵다는 전기기사까지 목표로 했었지만, 43점이라는 실기 점수 때문에 의기소침해졌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숫자가 하나씩 더해질 때마다 노력의 가중치도 비례되어 증가된다. '노화'는 여기에 가속도까지 붙인다. 4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듣는 '노화'. 안경점을 가도 노화, 미용실을 가도 노화, 병원을 가도 노화, 운동을 가도 노화. 노화. 노화.
말 안 해도 내가 제일 잘 알거든요?! 43점이라는 망할 놈의 점수가 충격인 이유는 점수도 점수지만, 작업형 실기시험이었던 전산응용토목제도기능사 빼고는 실기시험을 두 번 치른 역사가 없었다. 필기는 몇 번씩이나 떨어져 본 경험이 있지만 실기는 아니었다. 필기합격이 어려워서 그렇지, 필기만 붙으면 실기는 당연히 한방에 합격할 줄만 알았다. 100% 서술인 실기시험을 다시 준비해야 하다니. 사실 끔찍하다.
20대의 절실함 만큼은 아니겠지만, 노화로 인한 절박함은 생겨났다.기억력 감퇴. 퇴화되는 뇌를 집중력과 시간으로 메꾸어야 한다. 자격증은 취득하겠지만 주름은 더욱 깊어질 예정이다. 내 이러니 피부과를 갈 수밖에. 공부도 때가 있다. 진즉 알았으면 좋으련만.. 여튼 나는 지금보다 더 늙기 전에 따야 한다. 내 피부는 소중하니까.
2005년_ 워드프로세서 2급.
2023년_ 컴퓨터활용능력 2급.
재밌는 것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딴 이 두 개의 자격증은 나의 첫 자격증이자, 최근에 취득한 마지막 자격증이다. 쓰기도 즐겁지만, 정리하는 것도 재밌다. 역시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딸깍 거리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순간이편하고 좋다.
나는 비록 노후준비라는 망망대해에 놓여 지난 항로를 돌아보고 있지만, 나와 다른 시기에, 나와 다른 망망대해에 놓여있거나 길을 떠나려는 분들은 목적지를 정하고, 항로를 따라 움직였으면 좋겠다. 목표를 정하고 그 길을 향해 움직였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에너지부터 다르다. 내뿜는 에너지를 연료 삼아 목표지점에 꼭 다다르길 바란다. 필기를 합격해야 실기를 볼 수 있듯, 목표가 있어도! 항로가 보여도! 움직이지 않으면 소용없다.
움직이시라!!
_ 2024년 01월 09일 화요일_ 대설주의보 안전 문자가 계속 왔지만, 대설은 없고 눈비가 섞여 내리고 있는 청주_ 그나저나 CBT는 언제 정리하지. 내일은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