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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나린 May 02. 2023

너 오늘 기사 쓰기 싫구나?

< 엿이 되거나 버려지거나 >

국가산업단지의 한 사업장에서 발생한 화학물질 폭발사고. 사고 피해 규모나 원인을 추정하는 기사도 하루이틀이면 잠잠해진다. 소방당국이나 경찰에서 받아 쓸 내용도 이때 즈음엔 시들해진다. 후속 기사를 챙기려면 더 많은 품이 든다. 머리를 굴리고 수십통의 전화를 걸어야 하기도 한다. 파고들수록 용어도 어려워진다.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이 수년째 국가기관으로부터 가장 안전하고 우수하단 평가를 받아왔단 사실을 알았을 땐,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형식적인 행정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10시 데스크에 기사 방향과 취재 계획이 담긴 발제 보고를 하고, 몇시간째 전화를 돌리고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취재 과정이 이어졌다.

휴대전화를 붙잡고 기자실을 들락날락하는 나에게 다른 신문사 선배기자가 다가왔다.

"도대체 뭘 취재하길래 그렇게 바쁘냐"

내 수첩 위로 휘갈겨진 글씨를 힐끗거린 그가 피식 웃었다.

"너 오늘 기사 쓰기 싫구나?"


나는 딱 두어시간 뒤에 그의 말이 적중했음을 알았다. 취재를 모두 마치고 최종 보고된 내 메모는 편집회의를 거쳐 공중분해됐다. 데스크는 말이 없었고, 그날 나는 단신 기사 몇개만 쓰고 노트북을 덮어야 했다.






또다른 대규모 석유화학업체에서 원유 누출사고가 발생했을 때였다. 최고경영자가 고개를 숙이겠다며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웬만한 신문사와 방송사 관계자들이 다 자리를 채웠다.

홍보 담당자가 몇몇 기자들과 숙덕거렸다. '이런 질문 정도 어떠실까요', '요정도 선에서 해주시죠' 같은 주어와 목적어를 알 수 없는 말들이 오갔다.

기자생활 3년도 채 되지 않은 저연차인 내가 알아들을 수도, 끼어들기도 어려운 말들이었다.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자리에서 고개를 숙인 최고경영자는 예상 가능한 질문에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고, 떠날 시간마저 정해진 사람처럼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가 입장하고, 고개를 숙이고, 퇴장하는 모든 과정에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그것이 목적인 듯.

질문을 하지 못한 기자들이 회사 관계자들을 에워싸고 존재감을 호소했다. 나 여기 있고, 질문할 게 있다. 회사 관계자들은 쏟아지는 질문에 '오늘 회견 내용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능청스럽게 웃어 보였다.


"119 신고를 늦게 하셨던데, 정확한 신고 시간이 언제인가요? 왜 늦어졌나요?"

사고 당시 사업장에는 소방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다. 매뉴얼에 따라 신고만 제때 이뤄졌어도 현장 대응이 곧바로 이어질 수 있었다. 신고는 1시간이 넘게 늦어졌고, 훈련팀이 철수한 뒤에 다시 출동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기자회견 전부터 오늘 내가 쓸 기사의 핵심이라고 점찍어둔 내용이었다.

다른 기자들의 질문을 기다리다 못한 내 입에서 결국 그 질문이 터져 나왔다.

회사 관계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네가 누구지?' 하는 표정.

재빨리 명함을 건네고, 다시 같은 질문을 했다. '너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구나' 그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가 온화하면서도 웃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기자님, 이건 오프 더 레코드인데요."

취재 과정에서 이건 기사화하지 말아 달라고 한다는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 이 용어를 기자회견장에서 들을 거란 생각은 못했다. 다른 기자들까지 잔뜩 있는 곳에서 그의 일방적인 요구는 이해하기 힘들었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어차피 사실관계는 확인했고, 기사를 쓰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럼 말씀 못 드리죠"라며 웃던 그는 지나가는 말로 신고가 늦어진 사실을 은근슬쩍 실토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다음날 신문 지면에는 '늑장신고' 기사가 실렸다. 기사를 본 사업장은 신문사에 거칠게 항의했다. 관행적으로 해오던 협찬을 끊었고, 광고는 최소한으로 줄였다. 그들은 이런저런 핑계 속에 꼬맹이 기자의 눈치코치 없는 곤조를 꼬집었고, 신문사 데스크는 내게 그런 상황을 가감 없이 전달했다.

회사가 입은 경영상 피해를 네가 어떻게 책임지겠냐는 듯이.






그해 도시의 밤은 거칠었다. 공단은 터지고, 건물은 불에 타고, 도심 길거리에선 흉기가 등장했다. 각자의 이유로 생명이 사라졌다. 도시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 수장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날들이었다.

막중한 책임감은 그를 한밤중에 관용차로 이끌었지만, 도시의 거리가 익숙하지 않은 의경을 배려할 정도로 참을성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의 경솔한 분노에 자신의 본분을 다한 경찰관이 자리에서 쫓겨났다. 불과 얼마 전 119에 전화를 걸어 추태를 부렸다는 어느 광역단체장이 떠올랐다.


이 사건을 취재 중이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경찰 홍보 담당자들이 회사로 쫓아왔다. 취재 당사자인 내게 눈길 한번 건네고는 데스크를 향해 직행했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데스크가 그들을 편집국 한가운데 테이블로 안내했다. 분리된 응접실도 아닌, 가림막 하나 없는 곳에서 주고받는 그들의 대화가 그대로 내 귀에 꽂혔다.

"저희가 사정이 난처합니다. 한번 살펴봐주세요."

"우리 기자가 좀 열정적이지."

그들이 주고받는 말들이 사무적인 관계에서의 대화인지 의심스러웠다. 오랜만에 만난 이들의 친목도모의 현장 같단 착각마저 들었다.

책상 몇개를 사이에 두고 퍼지는 웃음소리가 나를 짓눌렀다. 저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그 기사를 쓰던 중이었다. 내가 지금 뭘 쓰고 있는 건가. 문장을 마무리짓지 못한 채 타이핑이 겉돌았다.

얼굴이 훤해진 그들이 사무실을 떠난 뒤 데스크 내게 다가와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들었지?"


나는 그날 기사 대신 사직서를 썼다.

부모님 집에 얹혀살고 월급의 절반을 택시비로 쓰면서 텅텅 비어버리는 통장에도 버티던 자존심이 짓밟혔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부서 데스크에게 사직서를 내밀고 짐을 챙겨 나왔다.

그때가 기회였는지도 모르겠다. 하루라도 더 젊었을 때 이 직업을 그만두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기회.

집에 꼬박 이틀을 박혀 있었다. 코에 바람이라도 쐬러 갈 생각은 못했다.

백수 놀이 이틀째가 되던 날 저녁 부서 데스크는 내 사직서를 수리하는 대신 집 앞으로 찾아와 소주 한잔을 권했다.

"미안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런 일 없도록 내가 더 노력하마."

서러움이 눈물로 흘렀다. 그도 그런 모습을 꿈꿨던 젊은 기자였고, 여전히 갈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묻은 진심이, 그보다 더 큰 현실과의 괴리가 서글펐다. 그의 노력이 얼마나 부질없고 하찮게 부서질지 알았다.


다음날 나는 다시 일터로 나갔다. 내 감정에 공감해 준 존재가 있단 사실에 위로를 받은 것인지, 애증의 직업에 돌아올 구실 같은 게 필요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때 내가 쓰지 않은 기사는 머지않아 광고로 되돌아왔다. '그런 일'은 반복됐다. 그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던 그는 회사 사정이라는 현실을 호소하며 세상물정에 무관심한 젊은 기자를 달래야 했다.

그의 설득이 인센티브라는 명목으로 월급통장에 찍혔을 때는 모욕감과 수치심에 허덕였다.

'다들 그렇게 찌들어 살아간다.'

온 세상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 또한 별 수 없이 찌들어갈 거라 확신하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혁명가가 되진 못했다. 포기가 빨라진 스스로를 발견했을 땐, 이 바닥의 생리에 굴복했다는 패배감보다 씁쓸한 허무함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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