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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육아휴직, 우울한 남편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2)

힘들게 뭐가있어? 처음이라 힘들어

by 마마멜

아빠 육아휴직, 우울한 남편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2)

힘들게 뭐가있어? 처음이라 힘들어



남편, 나랑 같이 쉬는데 뭐가 힘들어?


남편의 우울했던 두 번째 이유는 육아휴직으로 인한 환경의 변화에서 비롯됐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시작하면서 ‘보조자’에서 ‘주양육자’로 역할이 바뀌고, 새로운 책임과 임무가 부여됐다. 정확히는 평소 내가 혼자 하던 역할을 나눠 갖게 된 것이다.


화요일과 목요일, 주 2회 남편이 육아를 전담하고 나머지 요일은 나와 함께 했기 때문에, 사실 내 입장에서는 무거울 것이 없다고 느꼈다. 이런 내 생각이 남편의 자신감을 조금씩 잃게 만드는 데 영향을 줬을 거라고는 곤 생각도 못했었다.


남편은 회사를 나가지 않게 되면서 생긴 ‘비어 있는 시간’들을 어떻게 써야 할지 다소 헤매는 듯 보였고, 아이에게 집중하는 시간은 물론 자기를 성장시키는 시간으로도 잘 써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고백했다.

육아 숙련도가 떨어지니 계획한 대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해 더 당황해했다.



남편의 시행착오



우리는 사전에 양육과 집안일 분담을 마쳤고, 각자의 계획도 서로 공유했기에 남편도 어느정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아는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세계였다. 남편은 나름의 계획과 파이팅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매일같지 좌절과 혼란을 겪었다.


남편은 처음엔 집안일을 하면서 아이를 돌볼수 있다고 생각했다.

낮잠 시간에 블로그를 쓰거나 운동을 하는 등 개인 시간을 쓰고 아이가 깨면 아이 밥을 준비하는 일도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의 아기는 음식을 접시에 덜고 전자렌지에 옮기는 단 5분 조차 기다려주지 않았다. 단 몇 분이라도 아빠의 관심이 멀어지는 순간, 아이는 짜증과 칭얼거림으로 반응했다.


아이의 칭얼거림에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로 늘어져 하소연 하는 남편에게 말했다.


아이 재우고 같이 자든가,
반찬은 미리 준비하든가.
개인 시간은 좀 더 익숙해지면 쓰는게 어때?


하지만 남편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여전히 자기방식을 고수하려 했다.

에너지 분배는 고려하지 못했다.


육아휴직을 쓰기 전, 매일같이 나에게 아기와의 하루 일과를 속속들이 들었음에도, 육아를 직접 전담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을 남편은 직접 경험하고 있었다.

남편은 직접 부딪치며 깨달아보겠다고 했다.

그런 자세는 존중했지만... 한편으론 한숨과 짜증이 늘어나는 남편 옆에서 눈치를 봐야하는 나는 곤욕이었다.



주양육자가 두 명이 됐을 때



주양육자가 둘이 되니 우선순위가 다른 것부터가 문제였다.

당장 나가야 되서 마음이 바쁜 나와 달리,

집에 들어왔을 때 깔끔해야 기분이 좋다며 갑자기 청소를 시작하는 남편.

간단한 도시락을 싸 가려던 나와 달리, 요리에 진심은 남편은 과하게 멋진 도시락을 만들어냈다.


정리와 청소에도 우리가 이렇게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줄은 24시간 붙어 있기 전엔 몰랐다.

우리는 둘다 아이에게 '한가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 치우고 다음 것을 꺼내자'고 가르쳤지만 남편은 한술 더 떠 아이를 졸졸 따라다니며 치웠다.

(원래 이정도는 아니었다... 육아휴직이 정리괴물을 만들었나.)


치우는건 좋다.

멋진 도시락도 감사하다.


그런데 하루의 에너지라는게, 한쪽에 계속해서 쓰이면 다른 한쪽에 골고루 나눠지지 못 하는 법이다.

남편의 그 열심이 반복될수록, 남편의 표정은 그늘지고, 한숨은 깊어졌다.


그때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지금 그걸 할 때가 아니야"라고 얘기했지만 남편은 지나친 간섭으로 느꼈다.

그러면서 남편도 혼란스러운지

"내가 왜이렇게 힘들어하지?" 라는 말을 반복했고 작은 실수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너는 익숙하겠지만,
나는 적응하는 중이야.'



한번은 남편과 다툼 중 지나가듯 읊조린 말이 내 머리를 세게 쳤다.


아, 남편은 모든게 처음이지.


나를 거들어주던 보조양육자가

갑자기 하루종일 아이를 돌보게 된 것도,

회사를 가지 않는 평일, 그래서 갑자기 쏟아진 시간이 설렘보다 불안과 걱정으로 다가온 것도,

그리고 처음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살아보는 일도.


나는 그걸 인지하지 못했다.

도와주거나 지지해주지 못하고, 조급하게 다그치기만 했다.

왜 내 말을 듣지 않느냐고 답답해 하기만 했다.



그리고 요즘...


이 때의 상황을 남편과 그래프로 그려봤다.


나 혼자에서 남편과 둘이 부담하게 되었기에 물리적인 육아부담은 줄어들었지만,

남편과 나의 '육아 면역력'(우리는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숙달 속도가 달랐기에, 남편의 현재 경험치로서는 여전히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남편은 이런 얘길 했다.


"내가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네가 얘기해주는 하루의 에피소드들은 그저 이야기로만 들렸을거야.

지금은 내가 모르고 지나갔을지도 모를 에피소드들의 사이사이를 경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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