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삶, 그것은 육아맘 육아대디의 것
육아휴직을 시작하고 초기에 남편은 많이 힘들어했다.
아침부터 인상을 쓰고 새벽에 아이를 재우느라 한숨도 못잤다는 얘기를 늘어놓는 걸 시작으로 종일 표정이 어두웠다.
아이를 씻기거나 옷을 갈아입힐 때면 '어후 쫌!' '으아! 제발!' 같은 기합도 한숨도 아닌 포효를 습관처럼 뱉었다.
내가 상상했던 남편과 내가 부드럽게 아이를 깨우고 화목한 아침 식사를 하는 그런 그림은 없었다.
육아의 고단함 때문이라기엔 과도하게 예민하고 뾰족했다.
아침마다 냉랭한 분위기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의견이 대립되거나 둘 중 하나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면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됐다.
왜 남편은 육아휴직을 시작하자 마자 무너진걸까?
남편의 갑작스러운 상태 변화가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앞서 혼자 육아휴직 하며 1년을 보낼 때는 괜찮았는데, 둘이 같이하는 지금이 왜 더 힘들다는 건지.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기 전에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 폭탄 맞은 집을 치우고 새벽수유까지 하면서 신체적으로도 힘들었고 시간에 쫓기듯 지냈다.
그런데 그때는 오히려 남편이 이렇게 힘들어하지 않았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하고, 퇴근 후 집에 와서는 난 손도 까딱하지 말라며 나를 쉬게 해주었던 남편이었다.
힘든 내색도 없이 주말엔 양육과 집안일까지 도맡아 하면서도 본인은 '생각보다 할만한데' 라며 에너지가 넘쳤다.
그랬던 사람이, 육아휴직을 시작하자 마자, 그 달콤함을 맛보기도 전에 힘들어 하기 시작했다.
그때 어린이집은 적응기라 오전만 보내던 시기였다.
월수는 내가, 화목은 남편이 육아를 전담하고 금요일은 가족 나들이를 가는 걸로 계획했었다.
내 입장에선 전혀 힘들지 않은 가사분담이었다.
남편의 한숨과 짜증 섞인 태도를 보고 있노라면, 화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어두운 표정을 봐야하니 남편이 출근하던 아침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졌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남편의 우울함의 첫 번째 원인을 알게된 계기는 의외로 평범한 하루였다.
이날은 남편이 아이 낮잠을 재우던 날이였다.
자지 않으려고 앞구르기 뒷구르기를 반복하던 아이를 결국 울려가며 억지로 재운 뒤, 남편이 나와서 말했다.
"아이를 빨리 재우고 운동가려고 했는데
아이가 안 자니까 마음이 조급해지고 짜증이 밀려왔어.
아이한테까지 화가 났는데,
생각해 보니 이게 문제였던 것 같아."
이날 남편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육아 라이프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이유가
'내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어서' 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건 내가 앞서 1년간 육아휴직을 하면서도 어렴풋이 느꼈지만 정리해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내 시간, 내 삶, 내 것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예측불가능한 일들로 이뤄지는 삶.
그 경험 속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은 '무기력'이었다.
나도 처음 육아를 시작했을 때, 비슷한 이유로 힘들었던 기억이 났다.
아이 낮잠을 재우고 드립커피를 내려놓고, 플레이리스트를 겨우 고른 순간 아이가 울 때.
약속 시간에 맞춰 나가기 직전,
아기 기저귀가 묵직해졌을 때,
저녁 줌바 수업을 예약해뒀는데
남편 퇴근이 늦을까 전전긍긍하며 기다려야 할 때.
모든 게 내 의지로 되지 않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내가 터득한 노하우는 '내가 계획한 것처럼 착각하게끔 상황을 만들어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아침에 10분이라도 더 간절히 자고싶었지만, 일찍 일어나 스트레칭이라도 한번 하고 아기가 깨기를 기다리면 오히려 괜찮았다.
"잘 잤니? 나는 네가 깰줄 알고 있었단다?" 이런 느낌으로.
같은 시간에 깼더라도 내가 '의도해서 된 일' 처럼 느껴지면 괜찮았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자,
남편도 변화를 받아들여 보겠다고 했다.
남편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육아휴직 시기에 블로그, 운동, 독서 등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듯 했다.
하지만 육아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고, 계획했던 것들도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으니
마음은 바빠지고 자신감도 떨어지고 점점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속사정을 대화를 통해 좀 더 구체화하고 나니 해결책도 찾을 수 있었고 남편은 빠르게 기분을 회복해 갔다.
이제는 원대한 계획보다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해 가고 있는 듯 했다.
남편의 우울함과 무기력함에는,
사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