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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소라수경 Jul 23. 2024

어머니, 나의 어머니

우리 엄마는 26세에 결혼을 하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너 번 만나고 결혼을 결심하시고 4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고 한다. 결혼하자마자 나를 낳으셨으니 그 시절에 늦은 결혼이었다. 

내가 74년생이니 73년, 대한민국이 한참 발돋움하던 시기, 가장 바쁜 시기에 두 분은 결혼을 하셨다. 아버지는 그 당시 대우실업에 근무하고 계셨고 김우중 회장이 사장이던 시절이다. 회사의 성장과 함께 아버지도 성장하셨고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쯤 대우실업은 대우그룹이 되었고 아버지는 과장이 되셨고 대우그룹은 서울역 앞으로 건물을 지어 입성했다. 빛나는 시절이었다. 대한민국의 성장의 현장에서 원 없이 일하셨다고 회상하셨다. 


엄마는 의정부여고 행정실에서 일하시는 교육 공무원이셨는데 임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표를 내고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섰다. 나의 어린 시절을 중략하고 집은 흥하는 듯했지만 아버지 건강의 악화되고 산업화 과정에서 섬유시장이 하락장이 되면서 아버지의 일도 축소되었고 한동안 아버지와 엄마는 경제적인 문제로 고생을 하셨다. 


그간 가족도 공황과도 같은 시절을 거쳤다. 엄마는 집안에 불어오는 풍파가운데서도 아버지의 버팀목이 되어 주셨고 그 덕분에 우리는 경제적으로는 어렵고 힘들었어도 정서적으로 흔들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무리 힘들어도 겨울에는 온천으로 여름이면 소박한 여행이라도 바닷가와 계곡으로 데리고 다니셨으니 언제나 가족이 함께였다. 


엄마는 내가 나이 마흔에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고 하셨을 때, "수경아, 네가 언제까지 공부하겠다고 할지 모르지만 하고 싶다고 하면 내가 살림을 다 해 줄 테니 아이들 걱정하지 말고 집 걱정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고 하셨고 엄마의 지지 덕분에 아버지도 "내가 같이 아이들 돌볼 테니 너 하고 싶은 거 해라!" 하셔서 고민 한 번도 없이 늦게까지 공부하면서 대학원 졸업까지 마칠 수 있었다.  


얼마 전 지인이 "수경 씨, 이제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드실 연세인데 이제는 살림을 직접 하는 방법을 생각해 봐요."라고 조언해 주셨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 얼굴과 몸이 많이 약해지셨다. 지금도 새벽같이 일어나 가족의 식사를 직접 챙기시고 새벽밥 드시는 아버지를 위해 찌개를 보글보글 끓여 내놓으셨다. 그 덕분에 우리 가족은 엄마의 맛있는 밥을 지금까지 먹고 있다. 어느 날 엄마와 마주 앉아 "엄마, 이제는 제가 집안 살림을 할 때가 됐다고 엄마 건강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아..."라고 하니"응? 니 밥을 내가? ㅎㅎㅎㅎ" 웃으시더니 "몰라서 하는 말인데, 아직 내 손을 밥을 지어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아니? 큰 녀석 성원이, 귀여운 지원이 먹을 밥을 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아나? 그걸 모르지... 아직 나에게 힘이 있는 거야...! 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하신다. 

엄마 손으로 짓는 밥의 의미를 엄마는 그렇게 규정하고 계셨다. 


얼마 전에 둘째 녀석이 "엄마, 할머니 돌아가시면 할머니가 해 주신 음식이 가장 먹고 싶을 것 같아요..." 하는 것이다. 엄마는 우리 삶 속에 새겨지고 계셨다. 그 얘기를 나눠서인지 그다음 날 아침 할머니 얼굴을 보자마자 185가 다 된 녀석이 할머니를 와락 끌어안으며 "안녕히 주무셨어요!" 하니 엄마도 나랑 나눈 대화가 기억나서인지 "우리 귀요미 밥 챙겨줘야지."하고 기분 좋은 걸음으로 주방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시면서 밥을 차리셨다. 우리 가족은 엄마가 끓이신 보글보글 찌개를 맛나게 먹었다. 우리 엄마의 보글 찌개...


그러고 보니 나는 우리 엄마를 안아드린 적이 없다. 유난히 스킨십이 없는 나는 엄마와도 아버지랑도 손을 잡거나 허그조차도 해 본 일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이제 팔순을 바라보시는 연세에 살 날 보다 천국 소망으로 사시는 나의 어머니, 나의 아버지... 늦었다. 내가 해야하는 일들을 아버지와 어머니가 손수 돕고 계시는 지금, 어떻게 바통을 받아 효를 해야할까... 마음이 짠하고 눈물이 고인다. 

"내 손으로 밥을 지어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아니?!"라고 하신 나의 엄마의 그 깊은 사랑의 대화가 내 가슴에 새겨진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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