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유한성
우리 집에 '만수(萬壽)'라는 이름을 가진 모란앵무가 있었다. 만수는 성별이 여자인 앵무였지만 만수를 살라는 의미로 이름하여 주었다.
만수는 놀랍게도 아름다웠다. 분양이 가능한 시점에 5만 원을 주고 데리고 왔다. 모란앵무는 몸길이가 짧은_ 대략 14센티미터 될까 말까 한 작은 몸채를 가지고 있다. 동생이 데리고 온 아이라 동생의 주변에서 아주 작은 시기를 지내고 제법 큰 장을 사 주어 그곳에서 주로 생활했다.
나는 본래 조류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 만지지도 못했고, 그저 보는 즐거움으로 시간이 나는 대로 만수의 집 앞에서 귀여운 녀석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이 아이가 암놈이라 그런가 상상임신을 하는 것 같았다. 수놈이 없었는 데도 빈 알을 낳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어찌 생각만으로 빈 알을 낳게 만드셨을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짝을 만들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교차했다. 우리가 만수의 짝을 만들어 주지 못한 것은 만수 혼자만이라도 그 지저귐이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한 마리 더 데려다 키우면 지저귐은 소음이 될 것이고 그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만수는 아침에 일어나면 목욕탕에서 목욕을 했다. 참으로 깔끔한 동물이다. 그리고 꼬리를 공작새처럼 세우고 자신을 뽐내는 것이다. 종이를 주면 엉덩이에 잔뜩 찢어서 꽂으며 몸치장을 했다. 어찌 보면 사람보다 낫다 싶기도 했다. 모이 먹고 물 먹고 모이 먹고 물 먹고... 야금야금 식사도 잘했다. 그네도 잘 타고 잠자는 시간 외에 참으로 잘 놀았다.
나는 만수와 놀아줄 수 없었으므로 만수와 놀아줄 수 있는 가족이 귀가하면 잠시 집 밖으로 나오게 하여 이 손등 저 손등에 앉아 놀기도 잘했다.
이 녀석을 바라보는 재미가 솔솔 했다. 나에게 날아오지만 않으면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내가 만수를 겁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인지, 집 밖으로 나오면 내 머리를 콕 찍고 날아가는 것이다. 어느 날은 내가 똥 세례를 받을 뻔한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나와 가족이 함께 놀면서 만수를 풀어주면 비명 소리가 창궐을 했다.
"아하하~ 아하하!" 가족들은 나를 보고 웃었지만 "나는 캭! 이놈 저리 가!" 하며 방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그러다가도 집 안에 들어가 혼자 노는 녀석을 보면 '짠~'한 마음이 들어 한참을 그 앞에 앉아 있곤 했다. 만수도 그런 내가 신기한 것인지 혹은 그래도 정이 들어 그랬는지 마주 보고 앉아있는 날도 있었다.
가만히 만수의 털 색을 보고 있자니 "아! 아름답다...." 나도 모르게 입으로 내뿜게 되었다.
하나님 창조의 섭리가 정말이지 놀라웠다. 어찌 이런 아름다운 색이 그라데이션 될 수 있을까? 조물주가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생명도 유한하여 태어난 지 6년 뒤 잠자듯 우리를 떠났다. 가정에서 키우면 10년도 넘게 산다는데 살짝 미안한 감도 있었다. 각종 영양제며 놀잇감을 제공하던 동생도 크나 큰 충격을 받았지만 하얀 손수건에 곱게 담아 화단에 묻어주었다.
우리는 6년을 살다 간 만수를 함께 바라보며, 6년 동안 즐거움을 주고 떠난 만수를 잠시 추모했다. 그러나 미물이건 사람이건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창조의 이기이기에 미련 없이 고이 담아 보냈다.
사는 동안, 함께 하는 동안 큰 즐거움을 준 생명체를 떠나보내는 이별의 아픔을 느껴야 했지만 그 아픔보다 즐거움을 남겨 준 것에 만족한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생명체를 떠나보낼 용기가 있을 때 그 대상이 무엇이건 새로 들이기로 했다. 오늘은 유한 생명체, 아름다웠던 만수가 떠올라 짧게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