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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소라수경 Jul 03. 2024

사건

잔잔한 물에 돌이 던져지다. 

[아래 글은 '청글넷' 공저 2기 프로젝트로 제작된 <나도 청소년이 좋아>에 개제 된 

본인의 글을 재인용 및 편집한 것입니다.]



 “신수경! 너 앞으로 나와!” 저벅저벅 걸어와서 손을 크게 휘둘렀다. “쿵!” 내 몸과 나의 심장이 분리된 듯 멀리 나가떨어져 버렸다. 선생님은 나를 향해 뭐라고 소리쳤는데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모두 사라졌다. “웅성웅성, 웅성웅성” 아이들 소리가 들리고, 눈물인지 콧물인지 모를 것이 나의 얼굴을 뒤덮었다. 한참을 그렇게 교탁에 엎어져서 울었던 것 같다. 등 뒤로 나와 엄마를 나무라는 담임교사의 말이 들렸다. fade-out.     



선생님이 사랑한 “촌지”     


  나에게는 평생 못 잊을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가 집요하게 ‘촌지’를 요구한 사건이다. 당시 아버지가 제법 큰 회사에 다니셨기에 담임교사는 ‘생활조사서’를 보고, 부모님이 충분히 촌지를 줄 수 있는 상황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굣길이면 나의 등 뒤에서 “수경아, 엄마 좀 학교에 오시라고 해.”라고 하시며 수차례 엄마의 학교 방문을 요구하셨다. 그럼에도 엄마가 학교에 나오지 않자, 같은 반 친구 엄마를 통해서 엄마의 학교 방문을 종용하기까지 했으니, ‘촌지에 대해서는 진심이었지’ 싶다.  

나는 아직도 나를 바라보던 담임 선생님의 얼굴표정과 목소리를 선연하게 기억한다. 

문득 하이에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알림장을 꼼꼼하게 보지 않아 준비물 ‘도형 모양 자’를 챙기지 못하고 학교에 간 날이 있었다. 선생님은 매우 화난 목소리로 나를 불러내 학생들이 다 보는 앞에서 손을 크게 휘두르셨다. 나이가 지긋하고 작은 키에 몸은 두꺼운 원통같이 뚱뚱한 체격의 여자 선생님이 초등학교 3학년의 어린 여학생을 쳐 교탁에서 앞문까지 날아갔으니 그 세기가 어땠을지 짐작이 갈까? 그 모멸과 내가 느꼈던 수치심의 정도가 얼마나 깊었는지 어린

시절이었음에도 너무나 또렷하게 기억난다. 먹이를 탐하던 하이에나에게 당한 것이다.     

저벅저벅 걸어와 풀 스윙(full swing)하던 담임의 육중한 팔뚝이 바로 내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그다음 날 나는 등교하겠다고 집을 나서서는 동네 뒷산으로 올라가 버렸다. 뒷짐 지듯 책가방 양쪽 끈에 손을 끼워 넣고 팔자걸음으로 투덕투덕 걸으며 뒷산으로 올라간 기억은 있는데 어디서 뭘 하다가 내려왔는지는 모르겠다. 학교에 가는 것이 부모님께 혼나는 것보다 싫었다. 담임교사의 심통 맞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요즘과 같이 스마트폰이 상용화되어 있었더라면 등교를 거부한 나의 일탈 행위는 금세 들통이 났을 것이지만 뒷동산에 꽃과 나무, 바람과 구름, 나와 놀던 새들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담임교사는 자신이 한 행위 때문인지 집으로 전화조차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내 마음에는 지워지지 않는 멍이 생긴 것 같다.  


나는 학교에서의 기억을 자꾸 잃어 갔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학교 교사, 친구들, 사건이 없던 것처럼 지워졌다. 

그렇다면 잃은 것이 아닐까? 

그런데 혹자는, 잊는 것이라고 한다. 의도적으로 자꾸 지워버리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의식하지 못한 채 잃든, 의식적으로 지우든

나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erase' 되고 있었다. 


무자비한 선생님이 던진 돌이 잔잔한, 동화 같은 나의 일상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래도 나는 오늘 이렇게 멋지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동화를 회복하며 상처받은 그날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나와 같이 흔들리는 물살에 갇힌 친구들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손 내밀어 주리라... 

더 이상 분노하지 않게 되었다. 그 담임교사를 용서하고 싶어졌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나에게 있던 일들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가면서

어쩌면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는 그녀를 완전히 용서하게 되기를 바라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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