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사랑해, 정말로 사랑해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생겼다는 것.
그것은 신이 인간에게 사랑을 역행할 자유조차 허용했을지라도,
마지막으로 사랑을 돌이킬 수 있게 만든 자유의 마지노선이 아니었을까.
※(모든 글이 그러하겠지만) 이 글의 내용은 개인적인 견해임을 사전에 말씀드립니다.※
90년 대생들은 다음 가설을 공감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90년 대생들이 겪은 시대는 약간은 강압적이고, 약간은 순종적이지만, 반대로 가치저항적이고 내 쪼대로 살기 시작한 시대가 아닐까."라는 명제. 이건 어떤 논문이나 전문가가 다룬 분석은 아니지만, 96년생인 내가 30년을 규율 안에서 살아오다가 내 쪼대로 살기까지 겪어온 감각이다. 그래서 통계적이지는 않지만 상당히 경험적인 가설이다.
그저 내 생각이라 틀릴 수도 있지만, 90년 대생들은 성장하면서 일률화된 삶과 쪼대로 사는 삶(자기 주체적인 삶) 두 인생 사이에서 다양한 내적 갈등을 겪어왔다. 지금은 매체가 다양해지고, 콘텐츠 제작 주체가 다양해지면서 "너의 인생을 살아! 쪼대로 살아도 돼!"라는 인생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메시지가 많아졌지만, 그 당시(어린 시절)만 해도 사회가 우리들에게 제시한 메시지는 단순하고 명료했다. 헛길 짚으면 이단아로 취급되는 느낌이랄까. 인생이라는 지도는 무한대의 방향과 위치를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는 몇 가지 패키지여행상품뿐이었다. 인생에 고민이 많은 90년 대생들은 이 단순한 메시지가 너무 가혹했을 수도 있다.(내겐 너무 가혹했다.)
어린 시절부터 강요받는 삶을 살다가, 20대가 되고서부터인지 언제부턴가 고삐가 풀려버린 90년대생이 이제 엄마, 아빠가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는 더 이상 전통적인 부모님의 뻔한 가치관, 뻔한 일상을 원하지 않는다. 부모라는 존재의 전통적인 통념을 거부하기도 하는 것 같다. 나도 뻔한 아빠가 되는 삶을 지독하게 피하고 싶었다. 아침 8시에 나가서, 저녁 늦게까지 일하다가 주말에 겨우 하루 쉴까 말까 한 그런 인생은 행복했을까?
나는 내 인생을 내 관점에서 더 즐기고 싶었다. 적어도 빨라야 지금으로부터 5년 뒤에 결혼을 하고 싶었다.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아서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냥 내 인생에서 결혼이 그다지 매력적인 계산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남들이 하니까 해야 해서 하는 결혼/출산은 예전 시대에서는 필수전공이었을 수 있지만, 요즘 시대에서는 내 쪼대로 생략할 수 있는 선택교양이었다. 내가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이고, 감당하고 싶지 않으면 감당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부모님의 인생이 그렇게 매력적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쩌다 내가 결혼을 했고, 부모가 되었다. 내 쪼대로만 살던 내가, 자그마한 생명을 품에 안고 커다란 무게감을 등에 지게 되었다. 그 어디에서도 아기 양육에 관한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다.(다행히 좋은 선배어른을 통해 부부교육과 부모의 가치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책과 유튜브를 겨우 찾아서 출산에 필요한 것들, 아기 키우는 데에 필요한 것들을 알아서 찾아봤을 뿐, 아기를 출산했는데 아직도 실무가 무섭고 육아를 잘 모른다. 그런데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이제 와서 내 쪼대로 살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나는 앞으로 우리 아빠처럼 뻔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내의 쪼대로, 아기의 쪼대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지금 내 쪼대로만 살지 않고 있는데, 더 가득한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죽기까지 내 커리어와 내 자유와 내 행복을 충족시킬 방법을 고민하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가족을 위해 다 포기하고 희생하며 살아가도 충분히 가치있고, 행복하겠다는 마음이 든다. 어쩌면 내 선택과 내 행복보다도 아내의 행복이, 아기의 행복이 더 중요해진 것일 수 있다. 아직 말로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제야 스핑크스가 인생에 제시한 진짜 퀴즈를 마주한 것만 같은 기분이다.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으면 인생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는데, 내게 이 새로운 패러다임은 인생 전반적인 고뇌에 대한 해답이 되고 있다.
이 아기는 우리 부부만 믿고 있다. 어느 별에서 왔는지 알 수 없으나, 지금은 우리와 함께 지구여행을 하러 온 것이 분명하다. 아기가 태어나고서야 진짜 사랑을 배운다는데, 조금씩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배우고 있다. 아기가 분유를 귀엽게 빨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인생에서 아기를 위해서라면 온 힘을 다해 내어 줄 수 있겠다는 말이 무엇인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이제는 너를 위해서 내 쪼대로 사는 방식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가 너를 정말 사랑한다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나의 방법이기 권리포기/내려놓음이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이 생각난다. 시대가 달라서 생명을 이어가는 일은 더 어렵고 괴로웠을 것이다. 지금처럼 보르르 분유포트도 없고, 젖병소독기도 없다. 역류방지쿠션이나 수유쿠션도 없다. 손목이 부러져라, 가슴이 뜯어지랴 아기에게 모유를 먹였을 것이고, Chat GPT도 없어서 새벽에 물어볼 곳이 없어 수없이 당황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6일제 근무와 IMF를 겪으면서 "사랑해, 사랑해, 정말로 사랑해"를 속삭이던 우리 부모님은 신이 우리에게 선물해준 단 하나의 영웅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된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사랑해, 사랑해, 정말로 사랑해"를 속삭이면서 당신들의 마음에 공감을 하게된다. 우리 부모님의 인생은 뻔했지만 세상 부족함없이 행복했을 것이다. 확신한다. 그 사랑의 언어 덕분에 내가 결혼을 했고, 아기가 생겼다. 우리 부모님의 인생은 요즘 시대에서 보았을 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으나, 인류의 시대 관점에서는 가장 매력적이고 지혜로운 삶이었다.
돌이켜보면 이 시대는 언제부턴가 내 계산이 나에게 한 치의 오차와 손해도 없어야만 좋은 선택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희생은 없고, 자기만족만 있다. 나사 하나가 빠진 것처럼 우리는 인생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과거에도, 오늘날도 우리는 인류라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데, 점점 나 자신으로만 수렴하는 인생을 주장하고 있다. 절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는 인류의 가치를 어떻게 지켜가야 할까. 어떻게 계승해야 할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