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테시아 May 01. 2023

건강한 노동의 향기
     -베트남 키치 미술

굿모닝 인도차이나


아이돌 그룹 아이브의 '키치'라는 제목의 노래가 인기를 끌고 있으면서

'키치'라는 단어가 최근 들어 자주 언급되고 있다.

나에게도 '키치'란 단어가 의미 있기는 마찬가지라 책에 썼던 내용을 발췌해 봤다.


처음 베트남 땅을 밟은 곳이 하노이였다. 

강압적인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의 강렬하고 차가운 눈빛이 지금도 생생하다. 

또 다른 인도차이나를 만나 당황하고 있던 시간, 나를 피식 웃게 한 작은 화방이 있었다. 

    

그 작은 화방은 사뭇 런던의 내셔널갤러리가 하노이 항박의 작은 화방으로 

고스란히 옮겨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고흐의 해바라기들이 습한 인도차이나 열기 속에 춤을 추고 있었고, 

르누아르의 ‘두 자매’들이 하노이 골목을 걷고 있었다.  

   

출입국관리소가 준 첫인상 때문인지 베트남 세상은 아름답지 않았다. 

아니 무엇 하나 맘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거기에 런던의 내셔널갤러리가 항박 골목에 고스란히 모셔져 있었으니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맘껏 비웃어 주려고 화랑에 들어가자 두어 명의 화가들이 명색이 화가랍시고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물론 유명한 화가의 사진을 보고 그대로 베끼고 있었다. 어이 상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그림 붓을 쥐고 있으면서도 자존심이 없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20세기 유일하게 미국을 이긴 명예로운 나라의 사람들이 

작은 화방에 쪼그려 앉아 제국주의 산물을 그대로 따라 그리고 있다니. 

상상했던 베트남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겉으로는 진지하게 그림들을 살펴봤지만, 속으로는 마음껏 비웃어줬다. 

출입국관리소에서 당한 불쾌감을 마음껏 복수라도 하듯(뒷끝이 좀 심한 편임).

     

그러면서 남으로 남으로 남하해 사이공(호치민)까지 내려왔다. 

거쳐 온 도시마다 유럽의 유명 미술관이 골목마다 하나씩 있었다. 

사이공 여행자 거리에 이르자 그 수가 더 많아졌다. 

물론 지금이야 비싸진 가겟세를 부담하지 못해 화방들이 외곽으로 밀려갔지만, 

7년 전만 해도 여행자 거리 뒤편에는 화랑들이 거리를 좀 더 낭만적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움베르토 에코 책을 읽다가 ‘키치’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읽게 됐다. 

쉽게 말해 에코는 키치에 대해 미학적 체험이라는 외투를 걸친 채 예술이라도 되는 양 

속임수를 치면서 이질적인 체험을 슬쩍 끼워 넣은 행위라고 정의했다. 

    

맞는 말이었다. 집에 돌아와 베트남 사진 폴더를 열었다. 

여행하면서 찍었던 키치 미술의 현장을 다시 확인하고 싶은 생각에. 

에코의 말을 통해 확인 사살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했다.


그리고 공부했던 키치. 키치를 보는 시각이 학자마다 다양하다는 것도 그때 즈음 알게 됐다.      

키치에 대한 정보가 입력된 채 다시 찾아간 베트남. 

그 사이 북부 베트남은 좀 더 유연한 모습을 띠었다. 

웃음기 찾아보기 힘든 얼굴들이 이제는 남쪽 사람들처럼 여유로운 웃음을 가끔 보여주고 있었다.

 자본의 힘이란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고 다시 지나치기 시작한 키치 화랑. 

그 화랑 안에는 여전히 화가들이 집중하며 키치 미술이나 베트남을 상징하는 그림들을 그리고 있었다. 

여전히 클림트, 고흐, 르누아르가 있었다. 

그런데 에코의 말이 떠올랐다. 

“예술이라도 되는 양 속임수를 치면서 이질적인 체험을 슬쩍 끼워 넣는 행위.” 

    

과연 그의 말처럼 키치가 단순히 정리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구멍가게만 한 화랑에서 작은 의자에 쪼그려 앉아 정직한 노동을 하는 화가들을 보면서. 

그리고 나서부터 애정을 갖고 그림을 보기 시작했다. 

출입국관리소에서 당한 불쾌한 감정을 지운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애정을 갖고 보면 세상은 달리 보이는 법. 

베트남의 르누아르는 더욱 밝은 원색을 입고 있었고, 고흐는 좀 덜 아프게 해바라기를 그렸다. 

클림트는 좀 더 회화적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그들은 비단 하노이뿐만 아니라 훼, 호이안을 거치면서 사이공까지 다른 향기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단순히 속임수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정직한 노동의 산물로 그려 놓은 베트남의 키치 미술. 

내가 좀 더 넓게 세상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줬다.          --- <굿모닝 인도차이나 중에서>


작가의 이전글 중세 3대 기사단 알아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