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야 상상이야

함박눈을 바라봅니다

by 김혜진



비 내리듯 눈이 내립니다. 하얀 비 마냥 내리는 속도가 한여름 소나기 수준이네요. 대관령 안개 길처럼 멀리 볼 수도 없네요.



"엄마, 이게 꿈이야 상상이야. 우와 눈이다. 진짜 많이 내린다."



거실 통창 앞에 선 아들. 너무 좋은 나머지 눈까지 비벼가며, 꿈인지 생시인지를 말로써 표현하고 싶었나 봅니다. 손바닥으로 머리를 감싸고, 폴짝폴짝 뛰기도 하면서 기분 좋음을 날 것 그대로 나타냅니다. 내리는 함박눈처럼 함박웃음 지으며, 쌓여가는 눈을 바라보네요.



눈썰매 가지고 나가서 놀까? 신나 해 하는 아들에게 새벽 운동을 이미 마치고 돌아온 아이 아빠가 아이의 의견을 묻네요. 좋아 좋아! 열 번이고 백 번이고 해도 충분치 않을 대답을 소리 높여 두 번에 마쳐보는 아들입니다.






눈 하니, 떠오르는 추억이 하나 나타납니다.



중학교 3학년 겨울. 눈이 오늘처럼 펑펑 내리던 날, 설악산으로 졸업여행을 가게 되었어요. 설악산 뷰가 한눈에 보이는 숙소였죠.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넋을 잃고 바라본 기억이 있답니다.



하얗다 못해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색 그리고 거대하리만치 높다란 산. 보자마자, 번뜩 '그리고 싶다. 눈이 다 녹기 전에 그려두고 싶다.'라고요. 그림의 기역도 모르던 나였건만, 그림으로 그려 남겨두고 싶을 정도로 황홀했던가 봐요.



그때의 그 느낌이 너무나도 강해서였을까요? 그 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선, 미술부에 들어갔고 디자인이라는 전공까지 하게 되었지 말입니다.



여전히 창밖엔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집집마다 지붕 위는 새하애 졌고, 나무 위엔 눈꽃이 활짝입니다. 굵고 탐스러운 것이 함박눈이라는데, 엄마의 기억 속 눈도 지금과 똑 닮은 함박눈임에 틀림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들의 눈에 비친 눈은 어떤 눈일지. 어떤 감성을 고이 간직하게 될지, 소복이 쌓여가는 눈을 통해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의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음이 신기하네요.



이제 슬슬 채비하고, 아이와 눈 놀이하러 다 같이 밖으로 나가봐야겠습니다.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기꺼이 신나게 즐겨야 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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