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장소
주변을 둘러봤다. 결혼한 지인들을 상대로 첫 만남의 루트를 물었다. 우리네들 생김새마냥 성격마냥 만남 사연도 모두 제각각이다.
대학에서 만났다가 결혼까지 했음 - 2 커플
아는 언니/형님 소개로 만났다 - 5 커플
동호회에서 만났다 - 3 커플
학원에서 만났다 - 1 커플
소개팅 어플에서 만났다 - 1 커플
회사에서 만났다 - 3 커플
표본 30명 15 커플 중 압도적으로 많은 수가 지인 소개다. 그리고 그 소개로 만났던 경우의 대다수는 삼십 대가 아닌 이십 대 나이였다. 이 부분은 빠르게 인정하고 넘어가련다. 누군가의 소개로 만난다는 것은 일단 신용도 부분에서 믿고 가는 성향이 크다. 그렇기에 소개로 인한 커플 성공률도 높을 수밖에 없다.
서른이 넘었다. 소개팅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줄다 못해 아애 말도 못 꺼내겠다. 서른 중반이 된 어느 날 가만 생각해 봤다. 남자 한 명 만나기도 이렇게나 어려운데 과연 괜찮은 남자를 만날 가능성이 있기는 하려나. 내 님은 도대체 이런 날 두고 어디서 뭐 하나. 하며 연예를 떠나 결혼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언아더 세상이지 싶었다. 그래서 다 관두고 산 좋아하는 싱글 친구들과 모여하고 싶은 것, 놀러 갈 곳 정하느라 꽤나 바빴다.
(그래도 남는 건 추억이라고, 덕분에 눈꽃 덮인 태백산을 보았고 인생 최초로 한라산 정상에까지 올라갔다 왔다)
소개로 만난 경우를 제외하니, 커플될 확률이 높은 만남의 장소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그리고 학원과 동호회다.
당연히 사람이 모여야 만남도 있다. 이 뻔한 사실 누가 모르랴. 사내연애는 잠시 뒤로하고, 학원과 동호회는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특히나 각자의 배우고자 하는 목표, 좋아하는 것을 취미 생활로서 즐기고자 하는 뚜렷한 목적이 있어 온 사람들이다. 즐김에 있어 또 배움에 있어 나와 같이 상대방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모여든 그런 곳이다.
마치 OX퀴즈 마냥 나와 똑 닮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공동집합소인 것이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 미국에 홀연히 떠났던 적이 있다. 일 년만 살다 오자, 하고 갔던 곳에서 유난히 심심한 날에는 삼십분이고 한시간이고 그냥 뛰었다. 조깅을 했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중국 유학생과도 함께 뛰곤 했는데, 운동이 소재가 되다 보니 어느새 운동을 즐기는 친구들이 주변에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테니스 모임을 알게 되었고, 역동적으로 보였던 테니스에 폴인러브하듯 한눈에 매료되었다. 너무나도 멋진 운동이었다.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 하는 마음에, 핑크색 윌슨라켓과 테니스화를 장만하였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 오후 다섯시는 어느새 운동하는 날이 되어 있었다. 운동 후 마시는 무리들과의 시원한 맥주도 한몫하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테니스가 참 좋았다.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알게 된 나에 관한 사실 하나는 운동을 즐기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훗날 이 경험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꾼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짧았던 미국생활을 끝내고 서울에 오자마자 알아본 건 테니스모임 - 동호회였다. 지역 내 갈만한 곳을 몇 군데 찾아보았고 그중 한 곳엔 주말 오전마다 참석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그저 테니스가방을 메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신나고 즐거웠다. 그러다 번뜩, 운동하는 남자와 만나면 어떠려나하고 막연하게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게 테니스든 무엇이든 운동하는 남자에 대한 환상이 그때 생겨났지 싶다.
삼십 대를 돌이켜보면 실행에 의해 생겨나는 경험으로서, 내가 원하는 이성 타입이 어떠한지 하나둘 발견해냈지 싶다. 운동이라는 것을 직접 하고 나서야 아. 운동하는 남자가 궁금하다, 관심이 간다 하고 알아챘던 것처럼. 그리고 함께 운동을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굉장히 뚜렷하게 보일 때가 있다. 나와 맞겠다 아니겠다까지 파악이 되곤 한다. 말하자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빠르게 알아채는 경험치가 생기는 것이다.
남자를 만나고픈데 어디서 만나야 할 줄 도대체가 모르겠다, 싶다면 동호회 성격을 띤 모임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중요한 건, 그 모임은 반드시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 그리고 배우고자 하는 목적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 호기심으로 출발해도 좋다. 그곳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남자 그리고 나를 좋아해 주는 남자 두타입 모두를 해결할 수 있는 장소이다. 혹여나 찾고자 하는 이성을 못 만난다 하더라도 최소 무언가를 배우는 시간이 될 것이며, 갑작스레 우연한 기회의 여지도 생기곤 한다.
책을 읽는 남자가 좋다 하면 서점에 가서 책을 먼저 고르자. 책을 읽고 또 읽으며 그다음으론 책모임에 참석해 보자. 책도 좋아지고 책을 좋아하는 남자도 여럿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내가 정말로 책 읽는 남자를 좋아하는지 그저 보여지는 겉모습만 생각한 건 아니었는지도 알게 된다.
산을 좋아한다면, 등산 모임에 접근해 보자. 등산에 즐거움을 느끼다 보면 산을 좋아하는 남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나와 맞을지 어떠할지도 어림짐작 견적이 나올 것이다. (내 아는 이 한 명은 산을 좋아한다. 꾸준히 참가하다보니 어느샌가 등산모임에서 소울메이트인 지금의 반려자를 만났다.)
자기계발에 관심이 있다 하면, 관심분야의 모임을 찾아보자. 부동산이든 재테크든 혼자만 파고들지 말자. 모임을 찾고 나가보자. 나와 같은 관심분야를 갖고 있는 이성도 만나보자. 나와 맞을지도 생각해 보자. 만나볼 만한지도 유심히 생각해 보자. (친구 한 명은 자기계발 모임에서 비즈니스 상대를 만났다. 지금의 배우자이기도 하다)
운동이 필요하다 생각이 드는 시점이면 더할나위 없다. 테니스, 골프, 헬스, 수영 또는 조깅이든 자전거든 뭐든 좋다. 낯설어 하는 타입이여도 함께 운동한다는 것은 생각외로 즐거움이 배가 될 수 있다. 사람들과 어울려 실력을 키워가며 배우고, 어울려 시간을 보내면서 적성에 맞는 운동인지도 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 본다. 그리고 좀 더 시간이 되거든, 운동하는 남자에게 관심이 가는지도 알아보는거다.
내가 어떤 타입의 이성을 좋아하는지 경험을 통해 알아낸다면, 원하는 이성을 만날 확률은 물론 건강한 만남을 오래도록 이어나갈 확률도 확실히 높아진다.
서른 하고도 훌쩍 넘는 마흔에 근접할 즈음에서야 알았다. 내가 설레어하는 남자가 어떤 사람이고 편안함을 느끼는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또 나와 줄곧 함께 할 사람이 어떤 사람이다라는 것도 결국엔 알아냈다. 서른 후반이 되어서야 그토록 찾아 헤맨 내 남자를 초록빛 코트 위에서 발견한 것이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심지어 부모님도 인정한다. '너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었나 보다' 라고. 그것도 대여섯 번은 구한 것 아니냐고 말이다.
(뭐.. 그런 것도 같습니다, 하고 웃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