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대에 태어났기에 가능한 현대의학의 덕을 톡톡히 받아볼 참입니다. 진행되는 모든 과정은 담당의사의 지시와 안내에 따를 것이며, 선생님을 신뢰하기로 맘먹었습니다. 의심 없이 따르기로 한 것이지요.
병원을 오가며 묵직한 주사를 맞았고, 집에서도 따끔한 자가 주사를 놓았습니다. 난자채취를 위한 내원 그리고 수정 결과를 안내받기 위한 통원을 거치며 시험관 시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곧 다가올 시술일자에 맞춰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고, 격렬한 운동은 당분간 피하는 것이 좋다는 말씀에 따라 매주 하던 테니스도 수영도, 자전거 라이딩도 모두 올 스탑하였지 말입니다. 집중하여야 할 것은 다른 그 무엇보다도 중요도를 높여야만 합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 집중하여야 할 것에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여 지나고 나니 캘린더 스케줄에 넣어둔 디-데이가 바로 내일이군요. 칫솔, 수건, 스킨 등 소소한 물건들을 챙겨서 가방에 넣었습니다. 하루 혹은 경우에 따라 이삼일간의 입원이 있을 수도 있다 하여 그에 따른 준비물을 빠짐없이 챙겨봅니다. 노란 아디다스 가방에 운동복이 아닌 세면도구만이 가득입니다.
낯선 기분 더 느낄 새도 없이 시술대기실에 도착하였습니다. 1인용 입원침대는 천장 바라보며 가만 누워있기에는 제격입니다. 비좁다는 느낌마저 없습니다. 팔에 두터운 링거 주사기가 들어가고, 머리엔 헤드폰이 끼워집니다. 음악 들으시며 잠시 계세요,라며 간호사선생님이 다녀가셨습니다. 낯은 채도의 조명 속에서 홀로 듣는 명상음악. 긴장감을 낮추려 소리에 집중해 보는데, 내러이션이 있는 음악이었네요.
-- 철석이는 파도 소리를 가만 들어보세요.
-- 마음을 편안히 하십시오.
-- 당신은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 행복한 일은 행복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 맑은 하늘이 보이고 햇살은 따스합니다.
정확한 어휘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한 긍정의 말들이 잔잔히 흘러나왔지 싶습니다. 그리고 뜨거움이 감지되는 눈물도 흐릅니다. 흐르다 못해 목이 메여 오기까지 합니다. 간호사님 들어오실까 싶어 환복 소매 끝으로 서둘러 닦아보지만 눈치 없는 눈물은 그칠 줄을 모릅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난 뒤 한 겨울 동파방지 수돗물을 켜 둔 것처럼 찔끔찔끔 흐르다 멈췄습니다.
차분한 말투와 무표정 속 잔잔한 미소가 인상적인 담당원장님이 눈앞에 보입니다. 차례가 되어 수술실로 옮겨왔지요. 마취 전, 선생님께서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을 내밀며 보여줍니다.
-- 채취된 난자 중 가장 건강한 2개가 수정이 되었고요. 편하게 마음 가지시고 한숨 푹 주무세요. 그럼 시술 시작하도록 할게요.
정말로 잘 잤다, 싶을 정도로 곤히 잤는지 몸이 개운하기까지 합니다. 눈을 뜨니 어느새 시술이 끝나고 입원실 이동입니다. 채 오분도 걸리지 않은 느낌이지만, 끝났다 합니다. 두 명이 사용하는 삼층 입원실. 답답함을 싫어하는 성향임을 잘 알기에 창가 옆 침대로 자리를 잡아두었다는 남편입니다. 몸 어때, 괜찮아? 라며 금방이라도 눈물 맺힐 것만 같은 표정으로 묻네요. 생각보다 너무 간단히 끝난 것 같아,라며 건강함을 과시하듯 유쾌히 웃어 보였습니다. 약간의 대화를 마치니 졸음이 쏟아집니다.
시험관 시술은 이러한 과정들을 똑같이 세 번 반복을 했습니다. 그 사이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한 자궁 내 시술도 한 번 하였고요. 시술 2주 후 걸려오는 임신여부가 확인되는 피검사 수치 결과는 생사를 넘나들 정도의 감정 변화를 경험한 순간들이었습니다. 참 많이도 울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눈가가 쓰려오고 마음도 지쳐갔지요. 친정엄마에게도 형제들에게도 친구에게도 심지어 내 영혼과도 같은 남편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아픈 맘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애써 괜찮은 척 꿋꿋하려 애썼습니다. 그런데 혼자 있을 때면 그 굳은 맘이 너무나도 아파서 훌쩍이고 또 훌쩍이며 눈물을 흘려보냈습니다. 눈물색이 투명인 건 눈물을 닦은 후 아무런 흔적 남기지 말라고, 깨끗이 잊으라고 아무런 색이 없나 봅니다.
병원을 다니기 시작하고, 회사를 퇴사를 한 지 1년여 지나갈 즈음. 세 번째의 시술을 하였고 피수치가 적지 않음을 통보받았습니다. 좋은 시그널을 넘어 손꼽아 기다려온 그날이 온 겁니다. 임신입니다. 임테기에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줄도 보입니다. 임신이 맞습니다. 식탁에 마주 앉은 남편도 웃고 어느새 울보가 된 나도 기뻐 웃습니다. 웃다가 울고, 울다가 또 웃습니다.
믿어지지 않던 임신소식은 한 달쯤 지난 후 가족들에게 알렸고, 쏟아지는 축하를 받았습니다. 배 속에 새로운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이 무척 어색하고 여전히 남일 같기만 합니다. 거리를 지나며 마주치는, 배가 볼록히 솟은 임산부를 보면 미와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Aphrodite) 같아 보이기까지 합니다. 유모차 속 아이들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고 어린이집 어린아이들 유치원생 형님들에게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인사를 건네게 됩니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을 하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전적으로 공감되고 말고입니다.
한 달이 지난 현재, 앞으로의 9개월여 동안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낼지 차근히 계획을 세워보려고 합니다. 음악, 명상, 책, 운동 그리고 먹는 것 까지도 이젠 혼자가 아닙니다.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조금씩 자라날 뱃속 아기를 위한 태교는 이제부터 시작이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