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교향곡 5번 다단조, 작품번호 67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다섯 번째 교향곡은 '운명'이라는 부제로도 유명하다. 베토벤의 작품 중에서도 형식미, 구성력 면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작곡가의 창작 활동의 정점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출처:위키피디아)
운명을 믿어보자, 생각한 적이 있다. 베토벤만큼의 드라마틱한 구성은 못 하더라도 '내 운명 내가 한번 믿고 가보자' 하며 자신을 토닥여줬다. 서른 중반의 이야기다.
회사 신입 면접관으로 너무 많은 참가를 해서인지, 간혹 들어오는 소개팅에 나갈 때면 자리에 앉자마자 10분 대화로 나와 맞을지 아닐지가 열 배속으로 빠르게 가름이 되었다. 서른 중반이 되자 소개를 통한 만남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만두었다. 나와는 맞지 않겠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런 뒤 결정을 한 가지 하게 되었다. 운명, 운명을 신뢰하자. 삼십 대의 나는 그 운명이라는 것을 정중하게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서른 하고도 다섯 해가 넘었는데 갑작스레 운명 운운하다니. 운명을 믿으며, 내 님은 나타날 것이라, 내 앞에 꼭 나타날 것이라 믿다니. 이 무슨 소꿉장난 같은 운명이냐, 싶었으나 그래도 믿어보기로 했다. 딱히 해야 할 것도 없었다. 믿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이라 무언가 액션을 취할 것이 없었다.
다만 이것 한 가지는 쉬지 않았다.
연애는 당장 오늘부터라도 할 수 있다. 그러니 입는 옷은 물론 헤어스타일에 신경 쓰고 생동감 있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자.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연애 세포 살려두기'였다. 느슨해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연애라는 게 노력으로 되겠느냐마는 그런데도 연애 가능성은 언제 어디서든 다가올 수 있다, 하며 낭랑 18세 마냥 매 순간을 설레하며 지내려 했다.
출장 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옆자리에 누가 앉을까 신경 쓰기도 하고 (대체로 아주머니 승률이 높았다), 전철에서 말도 안 되는 이상형을 만나면 어떻게 대처할까도 생각해 보고 (시범 삼아 혼자 연습까지 한 적 있다), 회사 동료 중 누군가가 '당신을 맘에 두고 있었소. 좋아하오.'라며 접근해 오면 그 순간 뭐라 대답하며 거절할까도 은근히 상상해보곤 했다.
운명을 믿어보았다. 말할 때 어휘 선택이 좋은, 인성 착한 그리고 운동을 즐기는 남자에 관심이 많았던 때였기에 그러한 남자가 내 앞에 짜 짠하고 나타나 주길 바랐다. 운명처럼 만나길 원했다. 그렇지만 무척이나 아쉽게도 운명이라는 그 녀석. 그거 쉽게 오는 건 아닌가 보다.
또 일 년이 지나가고 있다. 가을 찬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날리게 하더니 하얗디 하얀 함박눈도 눈앞에 흩뿌려지고 있다. 일 년 중 제일 좋아하는 크리스마스도 곧 다가온다. 운명의 남자를 성탄절 이전에는 만나리라 정했건만, 나에게로 오는 길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여전히 도착하지 않고 있다.
서른여섯의 나.
여전히 나는 운명을 믿고 있다
다 제 짝이 있다 했다. 나에게도 내 짝 내 운명은 있을 것이 분명하다. 다만 조금 늦어지고 있을 뿐이다. 다가오고 있음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내 몸의 모든 세포도 적극적인 협력하고 있다. 하루하루를 헛된 시간이 되지 않도록 진지하게 대하려 한다.
언젠가 만나게 될 나의 운명. 내 남자를 생각해 본다. 분명 멋진 남자일 것이다. 그 사람과 어울리는 여자가 되고 싶다. 하는, 생각을 서른 중반에 실제로 해보았다. 그러자 축 처져있고 싶지는 않았다. 입장 바꿔 맥없이 맹숭맹숭한 상태의 여자에게서는 아무런 매력도 없고, 운명의 상대라 해도 스치듯 지나쳐버리고 말 것 같았다.
노력하며 적극적으로 움직이자, 싶었고 에너지 가득한 시간을 보내지 싶었다. 무덤덤한 표정도 바꾸려 했고 차가워만 보이던 이미지도 변화를 주고 싶어졌다. 상대에게 한마디 말이라도 더 하려 했고 칭찬할 거리를 찾고자 했다.
일에 집중하면 화난 표정이 되곤 하기에 회사 책상 앞에 자그마한 거울도 갖다 놓고 가끔 쳐다보며 억지웃음을 지어보기도 했다. 예전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일들을 하나씩 더해갔다.
운명을 믿고 기다리되,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은 해 두자 한 것이다. 운명의 그 사람과 마주했을 때 최대한 빠르게 서로 알아볼 수 있도록 하자, 싶었다. 나의 운명은 내가 만들자 했다. 그렇다. 바로 이게 나의 운명론이다.
운명을 믿어오던 나. 서른 하고도 여섯이 지나 일곱이 되니 믿어 의심치 않던 운명과 마주하게 되었다. 한눈에 바로 너였구나! 하고 알아본 것은 아니었으나, '아. 당신이군요' 하고 운명임을 느끼기까지는 그다지 오래지 않아 알아차렸다.
서른일곱의 나이에 말로 수십 번은 되뇌었던 운명의 주인공을 만난 것이다. 마주하고 보니 당신이군요, 느낌도 다가왔다. 밀고 당기기니 하는 건 전혀 필요치 않았다. 그저 직진이었다. 내 남자를 만나게 되면 나를 이토록 기다리게 하다니 하면서 한 대 때려주리라, 하고도 생각했건만 웬걸. 싹 다 잊었다.
삼십 대가 되니 결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렸고, 서른에 하나둘 숫자가 올라가니 결혼이라는 것에 회의가 느껴진 적도 있었다. 자아를 고민하는 사춘기를 겪듯 서른이 넘자 다시 한번 더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고, 인생에 대해서도 수많은 고민을 했었지 싶다.
생각과 고민이 깊어질수록 몸에는 힘이 많이 들어갔다. 그 힘을 빼려고 취미 부자가 되어 보기도 하고, 회사 건물 뒤로 이사까지 하며 일에 올인도 했다. 무엇이든 배우고자 하면서 힘 빼기 연습을 계속했다.
결혼이라는 것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어느덧 생각의 흐름이 점차 편안해졌고 그런 뒤 어느 날엔가 줄곧 믿어온 운명과 마주쳤다. 그리고 금세 알아챘다.
몸에 힘을 빼고
제일 나다워졌던 그때,
비로소 나와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운명을 만났다.
몸에 가득 들어찬 힘을 한번 빼보자. 나에게 한발 다가서 나를 살며시 안아줘 보자. 그런 뒤 뒤로 물러서고 찬찬히 바라보자. 사랑스러운 나에게 고맙다 하고, 어깨를 만져보자.
토닥토닥 토닥토닥. 세 번의 토닥거림을 해주자. 잘하고 있고 잘해 낼 거라 말을 건네보자. 그게 내 운명을 만날 일이든 지금의 힘듦이든, 앞으로의 일들이든 지금 이 순간 몸에 가득 들어찬 힘을 쑥 한번 빼보자.
꼭 하고자 하는 중요한 일이 있거든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 빼자. 뺄 것은 빼줘야만 그 빈자리에 당신에게서 가장 절실한 그 무언가가 그곳에 자리 잡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운명과 같은 만남·일들이 생겨날지 누가 알겠는가.
베토벤의 암흑에서 광명으로 - 그 유명한 교향곡 5번도 어쩌면 이렇게 탄생했으리라, 가만히 미뤄 짐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