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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수업을 꺼내든 남편

도서관에 가면 생기는 일

by 김혜진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아들과 자주 들리는 도서관이 있습니다. 커다란 벚꽃나무가 2층 창문으로 보이는 동사무소 위층에 마련된 자그마한 공간이지요. 예스러운 분위기에 나무 위에 지어진 아지트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오늘 하루 휴가를 낸 아이 아빠도 아이 하교에 맞춰 온 가족이 아지트로 출동했습니다. 동시에 수업을 마친 어린이들이 하나 둘 모여듭니다. 각자 나름의 찾는 책을 잽싸게 찾더니 책상에 앉자마자 재빠르게 몰입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저 기특하기만 합니다.


이곳 도서관은 처음 와 본다는 남편도 어느새 멀찍이 앉아 책 한 권을 펼쳐 읽고 있네요. 어떤 책을 골랐는지 무척이나 궁금하지만, 집중 상태이기에 부러 무관심하게 두기로 했습니다.


3~40분이나 지났을까요. 아들이 그만 가자며 보챕니다. 그러자며 일어서려는데 들고 있던 책을 내미는 남편입니다. 빌려갈 수 있을까 묻네요. 익숙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작가의 얼굴이 큼직 막하게 인쇄된 마흔 수업, 그가 들고 온 책은 다름 아닌 '김미경의 마흔 수업'입니다. 두어 달 전에 읽었던, 읽으며 고개가 절로 끄덕끄덕 해 졌던 바로 그 책이네요.


"당연하지. 내 카드로 대출해 줄게."


각자 한 권씩 빌린 책을 아들의 보조가방에 넣고 집으로 돌아가며 보도블록 위를 걷는데 이런 생각이 불쑥 들었습니다. 떠오른 생각과 동시에 웃음이 새어 나왔고, 그 모습을 본 아들이 놓칠세라 한마디 건넵니다.


"엄마, 왜 웃어? 행복 만들었어? 나도 줘, 나도 하나 줘."


행복은 어떻게 생겨나는 거냐는 여덟 살 아이의 물음에 웃으면 비눗방울처럼 뿅뿅 만들어진다고 답한 적이 있는데요. 그 대답이 갑자기 생각났나 봅니다.


어찌 되었거나.

예쁜 말을 하는 아들보다도, 오늘은 책을 읽으려는 남편이 아주 조금 더 사랑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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