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시험관 그리고

생애 첫 가을운동회

by 김혜진






시험관 시도가 두 번째로 이어지던 어느 날 좋던 오전입니다.






당시 머릿속엔 누군가의 말처럼 탄력 좋은 탱탱볼 하나가 뇌 속에 들어있었는데요. 뇌 안에 자리 잡고 있던 이 얌체공은 쉼 없이 튀고 튕기고를 반복하면서 무수히 많은 생각을 만들어 내곤 했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공원이던 어디던 길 따라 걷다 보면 그 수많은 생각의 잔상들이 점차 사그라듦을 느꼈지요.



신혼집 가까이에 울창한 올림픽공원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커다란 나무들이 많아 쉬엄쉬엄 산책을 하기에도 안성맞춤인 공원이죠. 길 따라 걸었습니다. 걷고 걷고 또 걸었어요. 한걸음 두 걸음 그저 길 따라 걸었습니다.



걷다 보니 드넓은 잔디 위에서 어린아이들과 엄마 아빠들이 어우러져 힘차게 달리기를 하고 있더군요. 유치원 운동회인가 싶은 분위기였죠. 천진난만한 웃음소리와 함성소리가 멀직히 지나던 제 귀에 선명하게 날아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가만 생각해 봅니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려나.. 오긴 오려나.



상황이 상황이라서였을까요. 초록빛 잔디 위에 뛰노는 아이들 그리고 바짝 그 옆에서 흐뭇하게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이 참 부러웠습니다. 한참을 서서 바라봤지요. 산책하며 내내 잔잔했던 머릿속 신경세포 중 하나가 툭툭 건드리며 말합니다. 내 안의 내가 나에게 속삭이듯 말을 합니다. 들려온 말은 정확히 네 글자.



오. 고. 말. 고.



어느덧 세 번째 시험관 시술을 마쳤습니다. 2주간의 기다림이 있었고 마침내 오늘, 병원 전화를 기다립니다. 알려주는 피검사 수치에 따라서 배아이식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지요. 전화를 받았고 안내해 주는 이야기를 하나라도 놓칠세라 860억 개의 신경세포들이 초집중하는 순간입니다. 검사 결과 수치가 낮지 않다 합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함은 국룰이기에 다음말도 잠자코 기다려봅니다. "이식 성공", "축하"라는 말까지 듣고서야 감사합니다, 대답하며 전화를 끊었네요.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안도의 숨을 후우- 쉬어봅니다. 네, 임신을 했습니다.



마흔이 넘은 고위험군 임산부의 아이는 무척이나 건강하게 태어났고, 현재 어린이집 큰 형님 반에 다니고 있답니다. 열 아홉명의 반 아이들 중 제일 잘 먹고 가장 키가 큰 아이가 되어있지요. 그리고, 어느새 두툼해진 아들의 손을 잡고 초록빛 풀내음이 가득한 공원에서 열리는 가을운동회를 다녀왔습니다.



몇 해 전 올림픽공원에서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을 그저 한없이 바라보며 발길이 떨어지지 않던 그 장소에 시간이 흐르고 흘러 오늘은 제가 서 있네요.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은 정말로 존재하더군요. 구름 한 점 없는 맑디 맑은 날씨가 참 고맙고, 내 손 꼭 잡고 엄마엄마 부르는 앳된 목소리에 행복하기 그지없던 생애 최고의 첫 가을 운동회였지 말입니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인생을 두 번 사는 것이다." - 마르티얼(Martial Salo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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