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푸르스름한 빛
우리 집에도 찾아온 독감
예사롭지 않습니다.
밤잠 자던 아이의 숨소리가 어제와 다름을 감지하자마자, 아이의 손을 만져보는데 뜨겁습니다. 팔과 이마도 짚어보니 뜨거운 정도를 넘어섰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챘고요. 체온계를 가져와 온도를 재니 어두운 방 안에서 선명하게 빛을 내는 빨간색이 보입니다. 최소 38도가 넘어섰다는 얘기지요.
자세히 들여다보니 40을 넘어선 숫자입니다. 재빨리 일어나 구급상자를 열어 해열제를 먹였고, 5분-10분-20분-30분 시간마다 체온을 체크하는데 여전히 39도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좀 더 떨어져야 하는데 39도와 38도 사이만 오갈 뿐입니다. 그나마 38도를 보이기에 해열제에 쓰인 설명서 지침대로 어느 정도의 시간텀을 둔 뒤, 다시 한번 해열제를 먹였네요. 그리고 또다시, 분 단위의 체온체크를 하며 아이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네요.
한 시간 후면 날이 밝을 듯합니다. 아이의 열이 떨어지려는지 발과 손이 차갑습니다. 추워하는 아이 옆에서 하품과 함께 기지개를 잠시 켜어봅니다. 동트자마자 움직여야 할 동선을 생각하며 거실로 나왔습니다.
엊그제부터 콧물이 도통 멈추지 않는다는 신랑은 출근준비에 한참입니다. 아이의 상태를 알리자마자 아들방으로 가서 동태를 살펴본 아이아빠는 밤새 고생했겠다 위로의 말을 건네며, 깨우지 그랬어합니다. 그리곤, 근데 어제 괜찮지 않았어? 묻네요. 그러게요. 듣고 보니 분명 어제 잠들기 전까지 잘 놀았고, 열도 없었고 콧물도 기침도 전혀 없어서 아무런 증상을 눈치채지 못했는데 말이에요.
어린아이들 치아가 아프면 갑작스레 고열이 나곤 한다던데, 어금니가 새로 나려고 열이 난 건가? 그냥 요즘 유행하는 감기 증상인가? 큰 쓰임새는 없지만, 혼자만의 소견을 잠시 유추해 봅니다.
기운 없는 아이와 병원에 도착했고, 진찰 검사 결과 설마 했던 독감이 나오고 말았네요. 독감은 신생아 3개월 차에 한 번 걸린 적이 있었고 일곱이 된 지금에 이르러 두 번째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처방받은 타미플루를 먹이고 한숨 재운 후, 잠시잠깐 아들 옆에서 잠을 청해봅니다. 잠이 드려는 순간 번뜩, '독감이라는 건, 감염이 빠른데 내가 아프면 안 되는데!' 싶어 져 아들방에서 일단 분리하고 마스크를 쓰기로 했습니다. 열도 없고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증상이 느껴지지 않아요. 다행이지 말입니다.
새벽 푸르스름한 빛을 본 게 몇 시간 전 같은데, 아직도 새벽인 건지 싶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일찍이 퇴근한 신랑은 하루종일 콧물이 멈추지 않는다 합니다. 비염이 심하네, 하며 스쳐지나기를 몇 시간. 잠깐 눕겠다던 신랑도 침대에 꼼짝없이 붙어 버렸습니다. 열도 제법 납니다. 이건 뭐 '말해 뭐 해 감기'임을 단숨에 알아챘습니다. 다음날 병원에 간 아이아빠 독감이 맞다 합니다.
두 번째 독감환자 발생과 동시에 엄마는 더욱 분주해집니다. 그러면서 머리도 살짝 지끈합니다.
방마다 누워있는 아픈 환자들 챙기며 간호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네요. 모두가 잠든 저녁 9시, 더할 나위 없이 조용한 거실에 혼자 앉아 있습니다. 뉴욕재즈 채널에 맞춰 음악을 들으며 홀로 책도 읽다가, 둥굴레차 한잔 마시며 영화도 한편 골라봅니다.
다음날 아침. 제발 열만 내리면 좋으련만, 하던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기운 차린 아들은 어린이집 안 가도 된다며, 거기에 아빠도 집에 있다며 무척 신이 나 있습니다. '아빠같이 놀자!' 크게 외치지만 아무런 대답 없이 꼼짝없는 신랑은 '독감은 독감이다' 한마디 겨우 하고, 침대에 여전히 붙잡혀 있습니다.
가족 중 두 명이나 독감판정이라, 저 또한 검사를 했고 결국엔 독감판정을 받았는데요. 면역력이 강해진 건지 몸이 튼튼해진 건지, 분명 독감에 걸렸음에도 머리만 살짝 지끈거릴 뿐 여타증상은 없지 말이에요. 다행이긴 다행인데, 다만. 그 사이 독감 해제된 아들의 오늘하루 종일반 짝꿍으로 '엄마' 당첨이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아들보다 먼저 말했습니다, '우리 같이 놀까?' 하고요. 놀까,라는 말을 듣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지며 웃는 아들이 대답합니다, 좋아!
그런데 말입니다. 아들보다 심한 독감에 걸린 아이아빠를 보면서, 혹시 우리 집 독감의 첫 시작이 침대와 혼연일체 되어 누워있는 저 사람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