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라이딩을 추천합니다

자전거 타는 남자

by 김혜진




자전거 탈 줄 아는 남자를 만났다. 남자의 자전거는 한강을 건너온다. 편도 6.7킬로미터 왕복하면, 도합 13.4킬로미터를 달려온다. 시원한 강바람에 페달을 밟고 그 강 건너에 사는 일곱 연상의 한 여자를 만나러 오고 있다.



여름엔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그리고 눈이 내리는 겨울에도 언 손 녹이려 입김을 불어가며, 강을 건너고 있는 이 남자는 - 그렇다. 바로 내 남자가 되기로 결심한 나의 연인이다.



한 밤중 전화가 울려 받아보니, 창문을 잠깐 열어보라고 한다. 설마가 현실이 된다더니, 놀이터 앞에 파란 자전거 한 대가 보인다. 반갑기 그지없다. 일단은 반가움을 한껏 표현하고서 뒤이어 말했다.



"아니. 연락도 않고 왔다가 나 없으면 어쩌려고 그랬데."


"그러면 운동한 셈 치면 되지"



그게 뭐 대수라고 하는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런가? 싶은 생각에 달리 덧붙임 말없이, 이 사람 이러다 축구선수 되겠는데. 다리 근육이 엄청난데! 라며 장난스러운 말로 대신했다. 짧지 않은 거리, 그것도 추운 이 밤에 달려온 생각 하니, 고맙기 그지없다.



누구나 타는 게 자전거이려나? 그렇다 해도 퇴근하고선 쉴 법도 한데 몇 마디 말 나누겠다고, 왕복 한 시간을 날씨에 굴하지 않고 타는 것은 대단하다 느껴졌다. 추운 날 이마에 맺힌 땀을 보니 이 남자의 순수한 마음이 올곧이 흡수되어 온다. 이야기 나누는 나도 동화되어 착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만 같다.







겨울이 되기 몇 달 전, 회사 게시판에 자전거 판매 당근 소식이 올라왔다. 빨간색 픽시 자전거를 내놓겠다는 글이었는데 보자마자 광클하여 당첨이 되었고, 판매자의 도움을 얻어 차에도 실었더랬다. 자전거를 뒷좌석에 싣고 남자친구의 집으로 향하는데, 기분이 몽글몽글하다.



이삿짐을 옮기는 것도 아닌데. 동거하러 가는 것도 아닌데. 기분만큼은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만 같다. 빨간 자전거 못지않게 내 얼굴이 자꾸만 뜨거워져 벌겋다. 보는 이 하나 없기에 다행이다 싶은데, 백미러에 쓱 내미는 얼굴 하나 - 앞으로 나의 단짝이 될 빨간 픽시다.



'뭐 너에게 들킨 것쯤이야, 그래도 이건 비밀이다!' 듣고도 묵묵부답인 픽시. 나의 새로운 자전거는 의외로 입이 무거운 것 같다. 맘에 든다. 맘에 쏙 들고말고다.



새로운 자전거도 왔겠다. 둘이 함께 한강을 달려보자, 했다. 두근두근 첫 라이딩이다. 자전거 타기가 이렇게 설렐 일이냐 싶지만, 어른이 다 되고서야 배우고 타기 시작했기에 여전히 서툶 이 남아있다. 무엇이든 처음 시작이 어려운 법임을 알기에 한강라이딩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장담해 본다.



어라. 그런데 이 자전거, 장바구니가 달려있는 기존 자전거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날렵한 디자인에 반해 나의 페달 밟기는 초보 중의 생초보다. 내 맘과는 대조적인 출발과 멈춤에 속상함이 밀려오지만, 여기는 한강이고 나는 달려야 한다. 다시 한번 더 해보자, 한 번 더 또 한 번 더. 그렇게 연인의 도움으로 연습에 연습을 마치고, 드디어 나도 달린다. 온몸에 한강의 바람을 맞이하고 있다.



맞바람이 간지러운지 기분이 살랑살랑해져 좋아서인지, 가이드해 주듯 앞서가는 파란 자전거 뒤를 따라가는 내내 안전하게 보호받는 느낌마저 든다.







제법 익숙해진 라이딩은 이후로도 계속 한강을 찾게 되었다. 쉬는 날이면 치킨과 맥주를 사들고 한강에 오곤 한다. 한강 라면도 먹고, 노을 바라보며 커피도 마신다. 한강이 있는 서울에 살고 있음이 행복이라는 감정이 되어, 마치 커다란 스노볼에 담겨진 느낌이다.



운전면허가 있어도 십 년간 꺼낼 일이 없었는데, 자전거는 라이선스도 따로 없건만 원하면 원하는 대로 어디든 갈 수 있다. 그 옆엔 덤으로 남자친구까지 함께다.



자전거로 어디까지 가봤니?라고 한다면, 가장 먼 곳은 잠실즈음에서 여의도였다. 불꽃놀이하는 장소까지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갔고, 하늘 높이 쏘아 올려지던 불꽃을 보며 환호를 했더랬다. 돌아오는 길도 역시나 자전거를 탔고 그날의 한밤중 한강 라이딩은 우리 데이트의 끝판왕이었지 싶다.



다섯 살 여섯 살 아이들도 다 타는 자전거 하나 못 타서 회사 출퇴근길을 20분이 넘게 걸어 다녔던, 이십 대 유학시절과 일본 직장 생활 때가 기억난다. 그나마 저렴한 월세방을 마련한다고 전철역에서 한참을 떨어진 곳에 집을 구하고, 버스비 절약한다며 언제나 걸어 다녔다. 몇 년을 그렇게, 걷고 걸어서 학교에 갔었다. 졸업 후엔 구두 신은 발뒤꿈치 벗겨져가며 또다시 걷고 걸어 출근을 하고 퇴근을 했다. 자전거를 구해서 연습을 해봤지만 허사였기에, 집 앞에 모셔만 둘뿐 또 걸어야만 했다.



그래서일까. 이제껏 자전거를 떠올리면 가장 힘들었던 그때의 시간들이 문뜩문뜩 떠올랐다. 오버랩되는 현상까지야 어쩔 수 없지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지금. 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지금의 두 발자전거는 더 이상 힘듦과는 거리가 멀게 되었다.



나의 동서남북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연인이 있고, 한강의 바람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나의 픽시도 있다. 지나온 시간들이 인정되고 받아들여지다 못해 너무나도 소중하다.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말. 그 의미가 온전히 이해된다.




자전거는 내게 지난날이고, 현재이고 또 기대에 가득 찬 내일이기도 하다.





갑자기 내 남자가 보고 싶어 진다. 전화를 했고, 시간이 조금 걸려서야 통화가 되었다. 어디냐 물었고, 숨을 몰아쉬며 어딘지 대답한다.



"한강 건너고 있어! 10분 후 즘 도착할 거 같아. 조금 있다 보자! 빨리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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