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장미소녀 캔디

웃어라 캔디야 울면은 바보다

by 김혜진



JYP 박진영의 존경하는 가수 목록에는 마이클 잭슨도 있지만 김광석도 있다.




어느 쌀쌀한 저녁, 올드 한 주점에서 막걸리 한 잔이 하고 싶어 들어왔다. 남자친구는 막걸리보다는 맥주 한 잔을 마시겠다 한다. 개인 취향에 있어 적극 공감하는 편이기에 무리 없이 주전자 동동주 하나. 그리고 생맥주를 주문했다.




김광석의 노래가 흐른다. 예스러운 노래지만, 우리나라 가요 역사상 손꼽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얼마 만에 들어보는 김광석인가, 싶다. 하얗지도 그렇다고 노랗지도 않은 빛깔의 걸쭉한 탁사발 동동주 한잔 마시며 '노래 좋다. 그치?' 지그시 미소 지으며 말을 걸었다.




살얼음까지 내비치는 생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으며, 작고 작은 대답을 한다. 들릴락 말락 수준의 '응.'이라는 단 한 음절의 대답이다. 맥주에 벌써 취했나? 싶어서 다시 물어본다.






"김광석 노래 뭐 좋아해? 나 고등학교 때 있지. 라디오 DJ 되고 싶어서 연습한다고 카세트에 김광석 노래 직접 부르고 막.. 녹음하고 그랬다. 근데 무슨 노래 좋아해?"


"어? 어... 글쎄."


"지금 들어도 좋다. 이 노래도 좋지 않아? 와 진짜 10년 만에 들어본다."


"...... 어."


"잠깐. 잠깐잠깐. 어? 혹시.... 김광석..."


"어....?"


"혹시, 몰라?!!! 모르는 거야, 이 가수?"


"어. 잘..."


"대박. 진짜야? 모른다고? 김광석을? 왜?"


"..... 들어본 것도 같고."






오마이... 오 마이갓 상황이다. 그랬다. 이 남자는 김광석을 몰랐다. 모른다. 서른 즈음에, 사랑했지만, 거리에서, 이등병의 편지.... 다 모른단다. 이 남자 교폰가? 정말 한국 사람 맞아, 싶은 순간이었다. 그러다 문득, 현실 깨달음이 왔다.




아. 일곱 살! 우리 사이의 일곱 개라는 숫자를 처음으로 인지해 본다.




가만 보자. 내가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으며, 푸른 하늘과 김광석 노래를 즐겨 듣던 17살 고등학교 때 이 남자는 10살이었겠고, 초등학교 3학년이 듣는 노래치곤 김광석은 확실히 아니었겠군.




주점에 와 있는 것이 맞는 건가부터, 동동주가 담긴 내 탁사발도 민망해진다. 백열등 불빛 아래 놓인 생맥주는 재즈가 어울려 보이기까지 한다. 김광석 모르는구나..... 선명해지는 나이차에 허우적거리는 사이, 노래가 바뀌어 이등병의 편지가 흐른다.




"아! 이건 알아. 들어본 적 있다. 김광석 노래구나." 내 앞 맥주잔 남자의 발칙한 아는 척에 풋. 웃음이 난다.




"그래. 알지? 거봐, 알잖아! 알 줄 알았어!" 들어봤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이 여부 가릴 새 없이 반갑다 친구야! 건배 건배, 마셔마셔, 소리 높여 본다.




동동주가 이리 달았던가, 백설탕 맛이 난다. 엉겁결에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 저 남자의 맥주 맛도 매우 궁금해진다. 달까? 쓸까? 씁쓸할까? 그러나 결코 묻지는 않으련다, 싶다.




주점에선 계속해 옛 노래만 흐른다. 원래 이곳의 콘셉트인가 보다. 어찌 되었건 웃고 떠들며 다른 화젯거리로 주제가 넘어갔다. 언제나처럼의 테니스 대화가 시작되었다. 테니스 라켓을 새로 사야 할 것 같다는 얘기와 요즘 발리가 잘 안 되는데 둘이서만 연습하러 가자는 얘기 등등. 역시 운동 얘기가 제일 즐겁다. 그러다, 갑자기 이 질문을 안 하고 선 못 배기겠다 싶어 진다.









"근데. 캔디는? 캔디 알아?"


"어? 아니."


"캔디 몰라? 캔디를 모른다고? 그 있잖아. 만화,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모르겠는데."


"헐. 캔디를? 에이, 캔디는 알아야지."


"드래곤볼은 알아."






관두자. 여기까지만 하자. 그럴 수도 있지. 내가 캔디를 보던 때가 열 살 즈음이고, 그렇다면 이 남자는 십에서 일곱을 빼면... 셋. 세 살인 내 남자친구, 캔디를 알 턱이 없다. 테리우스 같은 내 남자가 여자친구인 캔디를 모르는 것이 말도 안 된다 싶지만 말이다.




어느덧 가게에서 나오니 늦은 밤이다. 공기가 시원하다 못해 상쾌하다. 집까지 데려다준다며 걸어가는 길목에 내 입에선 흥얼흥얼 콧노래가 새어 나온다. 이내 가사를 넣어 한 소절 불러본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 들을

푸른 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

내 이름은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캔디


나 혼자 있으면 어쩐지 쓸쓸해지지만

그럴 땐 얘기를 나누자 거울 속의 나라로


웃어라 웃어라 웃어라 캔디야

울면은 바보다 캔디 캔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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