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자는 여자와 싫어하는 남자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한 지 삼 더하기 삼, 어느덧 여섯 달째다. 티키타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로 핑퐁 핑퐁 반응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심심할 겨를 없이 주제가 끊이지도 않고 얘기를 한다.
먹고 싶은 메뉴도 빠르게 결정된다. 보고 싶은 영화도 바로 선택된다. 남자는 묻고, 여자는 대답하는 편이다. 그렇게 우린, 하고 싶은 모든 것들에 있어서 바로 말하고 잠시 생각한 뒤, 신속한 결정을 내리는 편이다.
의견이 다름에 있어서, 서로의 우김이 없다.
'싫어, 난 이게 좋아.' 라거나,
'뭐야. 나한테 왜 묻지도 않는 건데?'라든지,
'장난해? 왜 맘대로 혼자 다 정하는 건데.'라는 말은 오고 가지 않는다.
서로 달리 살아온 게 삼십여 년인데, 언제나 같은 의견만 있을 수는 없는 법. 그럼에도 의견차에 대한 다툼이 전혀 없다. 그렇다. 우리는 다투지를 않는다. 사소한 언쟁도 없다. 싸움이 없기에 용서를 구하거나 사과를 하거나, 화해를 해 본 적도 없다.
퇴근 후 평일이었던 어느 저녁이다. 배가 너무 고파 뭐든 먹자, 하며 한 식당엘 들어왔다. 테이블마다 대학생인지 회사원인지 구분이 어려운 커플들이 많다. 바로 건너편 커플의 언성 높인 말다툼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잠시 후 무슨 이유인지 둘 다 말이 없다. 결국 여자는 훌쩍거리기 시작하고, 맞은편 남자는 콧바람 크게 내쉬며 술잔만 기울인다.
연인 간의 다툼을 눈앞에서 목격하는데 순간적으로, 부럽다. 부러웠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접근법인가 싶지만 사실이다. 커플들의 싸움 그리고 서로 간의 사과와 이해. 그런 뒤 이뤄질 상대에 대한 챙김과 배려. 서로를 더욱 알아가고 더 많은 사랑과 애정이 생기겠지, 싶었다.
나도 싸워보고 싶어졌다. 다퉈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 맞은편 남자에게 조금은 진지하게, 물었다.
"우리 한번 싸워볼래? 그런 말 있잖아. 비 온 뒤 더 단단한 땅이 된다고... 맞나? 여하튼, 우리도 몇 번은 다퉈봐야 하지 않나? 그래야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아닌가."
의아해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내 앞사람 - 남자 애인이 입을 떼며 하는 말은, "싫어. 난 안 할래." 간단하기 그지없는 대답이다. 싸운다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건 아닌 듯하다며, 싸우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한다. 서로 좋아서 만나면서 다투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이 다르면 다르구나 생각하고, 묻고 이야기하면 되는 거라 한다.
다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인데도 어딘가 의아함이 느껴져 다시 물었다.
"싸워본 적 있어? 살면서 말이야, 다퉈본 적 있었어?"
고개를 오른쪽으로 갸우뚱한다. 일초 이초 삼초.... 다시 정중앙으로 도착한 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 아니란다. 없단다. 누군가와 다퉈본 적도 싸워본 적도 한 번 없었다 한다. 기억에 없다고 말이다.
우와. 정말로? 믿을 수 없지만 이상하리만치 믿어진다. 그리고, 앞으로의 우리 사이가 예견되기 시작한다. 다툼은 없겠군. 싸움도 없겠군. 비 온 뒤 단단해진다는 그 땅은 우리에겐 해당되지 않는군, 하고 빠른 결론이 도출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우린 나의 예견 그대로 티격태격 다툼이라곤 성립되지 않는 관계가 되었다. 처음 만나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여전할 것 만 같다. 좋은 것임에도 어딘가 아닌 것도 같은 그러면서 납득도 되는 상황이다.
연인이기에 당연히 안 싸우지. 결혼해 봐라, 그렇게 되나. 하는 일침을 가하는 이들도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 남자. 이 사람을 만난 뒤 나의 생각은 무의식 중에 그를 따라가고 있다. 좋은 생각과 행동은 상대를 따라 하고 싶어 지게끔 만든다.
언성 높이는 일이 없는 우리는, 그래서 서로가 이토록 편안한가 보다. 걱정도 없고 고민도 없다. 그저 즐거울 일들만 생각하고 재미있을 계획만 세운다. 혼자일 때의 편안함이 발전되어 함께할 때의 행복감을 맛보게 되었다 할까.
천방지축 뭐든 해보려 드는 나에게, 역마살이 끼었다 싶을 정도로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던 나에게 찾아온 보물 같은 이 남자. 이 사람을 내가 닮아가기 시작한다.
천천히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에 앞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집중하며 귀 기울여 듣게 되었다.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런 거구나, 하며 마음을 알아보려 하는 공감 능력이 길러지고 있다.
그저 한 남자를 만났고,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뿐인데 내가 달라진다. 변해간다. 닮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런 내가 좋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