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여름이다.
환상의 섬 제주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맞닥뜨린 전광판 속 문구가 낯선 섬에 도착했다는 걸 실감 나게 했다.
처음에는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혼자 지내야 한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유로웠다.
그곳에서 나는 그저 그들과 똑같은 스무 살이었다. 오로지 나였다. 누구의 딸도 누구의 누나도 아니었다.
나 하나만 책임지면 충분했다. 아르바이트와 학교생활을 병행해도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가벼웠다. 부산에 두고 온 가족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그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제주도는 나에게 환상처럼 아름다웠다. 날씨가 쾌청한 날은 바다의 색깔이 온통 에메랄드빛이었다.
이른 봄에 피는 노란 유채꽃과 하얀 눈의 대비되는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은 제주대학교는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학교 캠퍼스로 손꼽힐 것이다. 중앙도서관 정문을 나오면 멀리 푸르른 바다가 보였고, 뒤편에는 한라산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봄이면 온통 분홍색으로 만발한 벚꽃나무가 캠퍼스를 물들였다. 여름이면 넓은 잔디밭의 초록빛으로 싱그러웠다. 가을에는 노란 은행나무길 사이로 웨딩촬영을 하는 예비부부들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겨울에는 하얀 눈이 내린 캠퍼스 사이로 한라산에서 먹이를 찾으러 내려온 노루들이 뛰어다녔다.
그중에서도 나만의 최고의 풍경은 기숙사 옥상에서 보던 야경이었다. 오징어잡이 철이 되면 바닷가에 떠 있는 오징어 배의 환한 조명과 공항 활주로의 유도조명이 어우러진 제주도 밤바다의 야경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내가 황홀한 야경에 취해있을 때조차 오징어잡이 배에서 먹고살기 위한 어부들의 철저한 사투가 벌어졌을 것이다. 삶은 이렇게도 이율배반적이기에 나 또한 아름다운 제주도에서 나만의 사투를 벌였다. 그래서 제주도는 나에게 잔인하게 아름다운 곳이었다.
대학교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후 엄마에게 부탁을 했다. 국립대라 어느 정도의 학점만 나오면 나라에서 학비를 면제해 주기에, 일 년에 두 번 내는 기숙사비만 도와달라고, 그것 말고는 엄마가 신경 쓸 게 없다고. 용돈은 내가 벌어서 쓰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착실히 그 약속을 지켜내었다. 그러니 스무 살의 낭만 따위는 없었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제주도의 풍경 속에서도 나는 늘 돈 걱정을 했다. 소개팅이니, 미팅이니 이 모든 것은 나에겐 사치였다. 매번 어떻게 공짜로 사주는 밥을 얻어먹을 수 있겠는가. 그래봤자 나와 동갑이거나 스물두세 살 그들에게. 누군가의 무조건적인 호의는 금세 동이 나고 대가 없는 공짜는 없다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시절이 제일 행복했다. 어둡기만 했던 20대에 유일하게 반짝거리는 순간들이 그곳에 있었다.
대학교 수시합격을 확인한 후부터 비디오대여점에서 주말도 없이 일을 했다. 그 돈을 모아 대학교에 입학했다. 수시로 아르바이트 구인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골프장 단기알바, 선거출구조사알바, 식당 서빙, 호프집 알바, 주말 뷔페 알바, 주차장 알바 등 뭐든지 구해서 쉬지 않고 일했다. 일하지 못하면 불안했다. 기숙사, 도서관, 강의실 이 세 곳만 다녔다. 학교 밖을 나가면 뭐든지 다 돈이 필요했다. 지독하게 아끼는 달에는 오만 원으로 살기에 성공하기도 했다. 아침, 저녁은 기숙사식당에서 먹고, 점심은 저렴한 학식으로 먹었다. 수업이 없는 평일이나, 주말에도 아르바이트가 없으면, 기숙사 밖으로 외출하지 않았다.
방학이라고 쉬지 않았다.
남포동에 위치한 대형팬시점에서 알바를 하면서 다음 학기에 쓸 용돈을 모았다. 그래도 늘 용돈은 부족했다. 학기 중에도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았다. 늘 피곤했다. 강의시간에 졸지 않기 위해 자판기 커피를 대여섯 잔씩 마셨다. 그런데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온통 싱그러운 초록빛이다. 흑백만 가득했던 나의 20대에 초록으로 역동하는 신록을 주었다.
그래서 아직도 가끔 방학이 끝나고 설레는 마음으로 3월을 시작하는 대학생이 된 꿈을 꾼다. 꿈속에서 나는 분주하게 캠퍼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새로 배정받은 기숙사 방에 짐을 풀기도 한다. 수업을 듣기 위해 열심히 강의실을 찾는 모습도 나온다. 대학교를 졸업한 지 이십 년이 넘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꿈속에서 다시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언젠가 상담선생님에게 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 꿈속에서 하늘 씨의 기분은 어때요?
- 행복해요. 즐거워요. 씩씩하게 가방을 메고 강의실을 찾으러 다녀요.
- 현재가 행복하지 않으니, 과거에 행복했던 곳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선생님에게 한참 업무스트레스를 얘기를 한 후에 꿈 이야기를 한 터였다.
나의 무의식이 나를 행복한 곳으로 데리고 갔던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눈물이 왈칵 나왔다.
- 아르바이트하면서 학교 다니기 힘들지 않았어요?
- 견딜 만했어요. 기숙사에서 계속 생활하려면 학점도 어느 정도 나와야 해서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 4점대로 졸업했어요.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했어요. 그래도 행복했어요.
그 사이사이 20대의 낭만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사랑과 우정사이의 노랫말 가사처럼 짝사랑도 해보았고,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 나오는 에펠탑에 같이 가보고 싶었던 친구와의 한여름 밤 캠퍼스의 낭만도 있었다. 그 낭만 앞에서도 나는 용기 내지 못했지만. 가난한 나의 현실을 고백하기 싫었던 초라한 자존심에 비겁함을 선택했다.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공무원이 되었고, 아이를 낳았다. 내가 바라던 안정적인 삶이라는 꿈을 이루게 되었다. 20대의 기억은 점점 흐릿해져 가고, 일상을 살아가는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시간이 흘러, 생각지도 못한 기회로 떠난 여행으로 프랑스 파리에 가보게 되었다. 에펠탑에 올라서서 파리의 전경을 바라보면서 느낌 감정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었다. 그 시절 에펠탑에 같이 가고 싶었던 친구가 기억나서 슬펐는지 아니면 그 시절 비겁하고 초라했던 내가 생각나서 슬펐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그 친구도 아름다운 초록빛으로 기억되고 있다. 비겁하고 초라했을지라도 행복했었다.
청춘은 찰나이기에 더 아름답다. 그런 의미에서 여름이라는 계절은 청춘과 참 많이 닮아있다.
여름도 찰나이기에 더 싱그럽다.
어느새 계절이 바뀌고 있다. 길고 긴 폭염이 서서히 끝나간다. 그 시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가난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도 서서히 끝나가는 기분이다.
상담 선생님은 이제 삼주에 한 번만 와도 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만큼 내가 나이 지고 있다는 의미였지만, 나는 괜스레 서운하면서 허탈했다. 그토록 바라던 바인데도 그 시절을 떠나보기가 아쉬운 마음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나는 다른 계절을 준비하기 위해 길을 나설 때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시절 찬란하게 빛나던 나의 20대를 고이고이 예쁘게 기억하고 싶다. 정말 열심히 살아내었다고, 정말 고생 많았다고 그렇게 20대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