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그것이 결혼이든 비혼이든 그 무엇이든
사랑할 시간도 주지 않는 우리나라 사회에 대한 지난 글을 보면 갑자기 '모두를 위한 주례사'를 추구한다는 글에 맞지 않게 OECD의 평균을 훨씬 초과하는 격무에 시달리는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결혼을 말리는 것도 같다. 지난 글들에서는 분명 저자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물론 몇 가지 전제조건이 달려있기는 했지만 결혼과 출산, 육아까지 격하게 추천하는 것같이 썼는데 말이다.
그런데 애당초 내가 '모두를 위한 주례사'를 표방하며 글을 쓴 동기는 결혼을 권하기 위함이 아니다. 사랑, 그리고 사랑하는 삶이 모든 글의 핵심 주제다. 글들이 어느덧 마무리를 향해가고 있는 때에 젊은 저자의 나이에 무려 주례사를 표방해 글을 이어간 이유를 다시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이 글들은 무엇보다 저자 부부 본인들과 그 자녀가 행복하게 살기 위한 지침이다. 결혼에서 주례사의 본질적인 목적이 둘의 행복한 결혼을 위한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듯 이 글들이 저자 부부의 행복한 결혼생활과 인생의 지침이 되는 한 편 그 자녀까지도 미래의 삶과 사랑에 도움이 되는 하나의 지침으로 쓰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주례사라는 이름으로 글들이 쓰였다. 그렇게 보면 이 모든 주례사 가장 앞에 선 대상은 저자 본인과 그 와이프다. 다만 결혼으로는 5년 넘게, 그리고 연애까지 합치면 15년 넘게 서로를 성공적으로 아끼고 사랑하며 행복이 지배적인 삶을 사는 입장에서 부족했던 우리 부부가 어떻게 서로를 통해 사랑을 배웠으며 또 그로 말미암아 결혼에서도 사랑과 삶의 본질을 배워갈 수 있었는지 남겨두고자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되는 것은 대게 그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 살아서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한 번쯤, 아니 정말 대부분의 경우 여러 번은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만한 삶을 살아본다. 다만 갖가지 본능적인 유혹과 외적인 시련으로 그 삶을 이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망가진다. 누구나 자신 스스로 자랑스러웠거나 부족했더라도 배운 게 많다고 느꼈던 기억을 정리하고 그 본질이 무엇인지 드러내어 써놓는다면 더 잘 살아갈 수 있고 설령 중간에 잘못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그래서 우리 부부 역시 너무나 부족했지만 서로를 알아가며 그 부족함들을 극복했던 소중한 기억들을 정리해 삶과 사랑의 진정한 의미와 본질을 드러내 보고자 했다. 사실 그런 목적을 떠나 그 모든 기억들은 우리 부부의 아련하고 소중한 추억들이다. 육아를 하다 보니 우리가 만나 사랑한 결실로 아이가 태어난 게 아니라 이 아이를 낳기 위해 우리가 만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우리 부부가 연애할 때 우리 사이에 어떤 아이가 나올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아이를 낳기 위해 결혼한 것 같다는 우리의 기억 왜곡은 사실이 아닌 진실이다. 마치 '우리 엄마가 최고'라는 말은 우리 엄마가 돈, 외모와 같은 객관적 척도로 본다면 전혀 사실이 아니지만 누구도 자기 엄마가 최고라는 고백을 거짓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대화의 주제가 온통 아이와 관련된 것이니 점점 흐려지는 우리의 추억들이 여간 안타까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다 써놓고 최소한 저자와 와이프, 그 자녀까지 3권은 출간할 생각이다. 자녀가 더 생기면 최소 출간 권수는 한 권씩 늘어날 것이다.
두 번째로 결혼과 출산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과 통찰을 공유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다. 내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겪으면서 깨달아온 행복한 결혼은 지금의 통념과 많이 다른 것이었고 또 내가 겪으면서 오늘도 깨닫고 있는 행복한 출산과 육아는 그동안의 통념과 많이 다른 것이었다. 결혼은 사랑만이 현실이라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생각이다. 엄밀히 따지면 이것은 결혼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본질적인 생각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결혼에 있어 사랑은 단순히 성욕을 넘어선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헌신적인 각오와 실천의 연속이기에 당연히 사랑이, 사랑만이 결혼의 현실이라 선언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결혼은 사랑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엄연히 현실'이라는 최근 통념과 정반대의 것이다.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하게 된 생각도 기존의 통념과 정반대의 것이었다. 자녀가 부모에게 은혜를 갚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는 것은 지금도 흔한 통념이다. 그런데 내가 겪은 현실은 부모가 자녀에게 은혜를 갚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있어 아주 순수하고 온전하게 세상의 전부가 되는 경험, 그것을 부모는 깊은 사랑이라 느낀다. 가장 순수한 상태의 인간에게 가장 순수하고 온전한 사랑을 받으니 자녀 덕분에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세상이 더 소중해졌다. 오늘 하루도 잠든 아기를 보면서 '은혜는 하루하루 쌓여만 가는데 너의 이 은혜를 다 갚고 죽는 게 가능할까.' 싶은 하루를 3년 가까이 쌓고 있다. 물론 아이가 슬슬 성장하고 사춘기에 접어들면 받는 은혜는 적어지고 갚을 일만 남겠지만... 아무튼 통념과 정반대 되는 생각을 받아들이며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내 삶 그 어떤 때보다 깊이 생각하면서도 그 생각이 명료했고 그 명료한 생각에 따라 살아갈 수 있었다. 철학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도서관에 박혀있던 대학시절보다, 종교에 심취해 군대에서의 휴가 때마저도 절과 수도원을 찾아다닐 때보다 더 깊은 시야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고 고백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내 보니 인생 가장 고단한 시기 속에서도 행복과 사랑을 노래할 수 있었다. 혼자만 담고 있긴 아까웠다.
세 번째로 세상에 균형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이번 글은 이 세 번째 마음에 더 집중해보고자 한다. 유튜브나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특정한 인플루언서나 매체가 하나의 주장을 하면 사람들의 의견이 다 한쪽으로만 쏠리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사랑과 결혼에 관련해서는 결혼과 출산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지 현상을 진단하는 콘텐츠들도 많이 나온다. 그것들만 보면 당연히 결혼은 지옥이다. 또 결혼을 하고 나서 또 출산을 하고 나서 인생이 망가졌다는 이야기들도 많이 콘텐츠화되는데 그것들만 보더라도 또 결혼과 출산은 지옥이다. 결혼과 출산이 누군가에게는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지옥임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한 해 20만 건의 결혼이 이뤄지는지, 또 많은 노부부들이 그토록 서로를 아껴주며 아름답게 죽어갈 수 있는지 이야기하는 수십만 건의 진실은 전혀 퍼지지 않는다. 그래서 적어도 15년 동안은 사랑과 결혼을 통해 행복하게 살아온 입장에서 결혼과 출산의 행복을 이야기하며 세상에 조금이나마 균형을 맞춰보고자 하는 것이 이 모든 글들을 쓰는 저자의 마음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우리나라에서 결혼과 출산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이야기만 많고 행복을 고백하거나 행복을 분석하는 이야기가 적을까?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이고 물질적 여건은 그중에서도 상위권임에도 자살률은 그중에서 압도적인 1 위인만큼 풍요로운 물질여건 속에서도 불행이 넘치는 곳이고 획일화된 사교육 열풍으로 오늘도 많은 자녀들까지 전반적으로 불행하게 몰아가고 있는 곳이라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런 환경에서 자신의 행복을 고백하기란 쉽지 않다. 다들 불행한데 혼자 행복하다고 해봤자 자랑질밖에 더 될까. 때문에 행복한 사람들은 그저 조용히 자신들의 행복을 살아가고 있는 까닭에 결혼과 출산의 행복은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을 수 있다. 또 방송매체에서는 통계적으로 결혼건수와 출산이 뻔히 줄고 있는데 결혼과 출산의 행복한 이야기를 말해봤자 현실 부정이라며 비난받을 가능성이 크기에 혼인과 출산 감소에만 초점을 맞춘 까닭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 행복한 사람들이 그 본질을 알려서 엄혹한 현실과 행복의 현실을 균형 있게 볼 수 있도록 해야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런데 2024년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새로운 콘텐츠도 뜨고 있는 것 같다. 나이가 일정 이상을 지나면 결혼시장에서 찬밥신세이기 때문에 빨리 결혼상대를 잡아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기혼자들로부터도 지지를 받는 논지인 것 같다. 물론 결혼이 지옥이라는 주장이 현실 사례를 바탕으로 한 타당한 견해인 만큼 이 견해 역시 내가 보기에도 타당하다. 보통 30대 중반에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배우자감으로서 훌륭하다 싶은 사람들은 이미 결혼했거나 오래 교제해서 결혼을 예정한 사람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이런 견해를 귀담아듣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나는 이런 모든 견해가 다 사실임을 인정하면서도 뭔가 불편함을 느꼈다. 뭐가 그렇게 불편할까 생각하다 보니 한 개의 문장이 떠올랐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이 문장은 내가 정말 살아갈수록 맞는 말임을 체감하는 문장이다. 결혼이 누군가에겐 지옥일 수 있고 우리나라 현실에서 지옥일 수 있는 조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혼이 지옥이기 때문에 비혼을 택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반대로 일정 나이가 넘으면 결혼 시장에서 찬밥 신세이고 좋은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혼시장에서 찬밥신세가 되는 것이 두렵다는 이유로 서둘러 결혼하려 발버둥 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니까 결혼도 비혼도 그 반대의 선택이 나쁘기 때문에 택해서는 안 되는 선택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삶은 나쁜 선택만 피하더라도 좋은 삶이 될 수 있다. 도박과 과도한 음주는 그것을 피하기만 해도 좋은 것의 대표적 예다. 반면 결혼도 비혼도 절대 그런 대상이 될 수 없다. 둘 다 그 자체로는 행복과 불행 그 무엇도 의미하지 않는다. 결혼이 그 자체로 행복하지 않듯 비혼도 그 자체로 행복하지 않다.
그래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혼자 중얼거리는 말을 추천해보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그것이다. 모든 선택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붙이면서 선택을 하면, 혹은 모든 선택을 하기 전에 그 선택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붙일 수 있을 정도로 신중하게 알아보고 선택을 한 뒤, 그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고자 열심히 살아가면 우리 삶에서 후회와 불행이 그만큼 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의 결혼이 그러했다. 내 와이프에 대한 회의감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나에게 과분한 사람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상처로 인한 트라우마도 그로 인한 피해의식도 각인되어 있는 내 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좋은 여자를 평생 잘 데리고 살 수 있는가? 또 한 편으로 사람은 끊임없이 변하는 법. 저 사람의 현재는 나에게 과분하나 미래에는 여느 많은 부부가 그렇듯 서로에 대한 열정이 식고 기계적인 의무만 헌납하는 죽은 관계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아직 한없이 부족한 사람일 수도 있는데 결혼은 영원한 사랑을 보장하지 않는다. 또 나는 여전히 다른 여자를 만나면 어떨지에 대한 호기심에 간혹 사로잡히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앞의 이 여자와 결혼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결심 직전까지 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과 결혼하거나 혼자 사는 다른 선택지를 긍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붙여보았다. 다른 여자를 만나 연애를 해보거나 혼자 사는 선택지, 또 그렇지 않더라도 확신이 설 때까지 연애만 하는 것은 결혼에 대한 반대 선택지였다. 그 선택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긍정적인 것들이 많다. 세상에는 좋은 여자도 많고 나도 과거보다는 훨씬 나은 사람이 되었다. 인생은 어차피 외로운 것이고 누군가와 같이 살아도 외로운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그래, 혼자 사는 것도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것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1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한 이 여자와 결혼해야 하는가?
그 어떤 선택도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라는 것, 또 어떤 선택에 있어서도 행복한 삶이 있을 수 있다는 삶의 진실은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선택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붙여보면 온전히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보통은 그렇게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연발하면서 가만히 생각하다 보면 자꾸 마음이 가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내 와이프와 결혼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선택하니 나도 내 와이프도 후회하지 않도록 하고자 나름 더 최선을 다해 살게 된다. 삶에 정답이 없다지만 신중하게 선택하고 그 선택에 후회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은 삶의 정답이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싶다.
결혼과 비혼의 대립을 떠나 결국 모든 삶의 여정에서 각자의 정답은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 같다. 모든 선택지를 긍정해 보면서 세상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보고, 또 모든 선택지를 냉정하게 부정해 보면서 엄연히 존재하는 세계의 한계와 인생은 어차피 고난의 연속이라는 사실인식을 다 거치고 나면 가장 현명한 선택을 했을지는 모르는 일이더라도 적어도 뒤를 돌아보며 망설이고 후회하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크게 줄일 수 있는 것 같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후회는 그 자체로 불행하니 이것들만 피해도 인생은 크게 나아진 것이나 다름없다.
저출산은 사회문제지만 각 개인은 그걸 염두에 두고 선택할 필요는 없다. 10년 이상을 두고 미래를 전망한 것 중 맞아떨어진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지금의 저출산도 다들 부정적으로 보지만 산업의 급격한 변화와 조금이라도 맞물리면 긍정적인 신의 한 수로 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저출산으로 인한 지방소멸이 드론 기술, 스마트팜 기술 등 노동력을 대체하는 수많은 기술과 맞물리면 우리나라에서도 원가가 압도적으로 낮은 대량 생산 농업체계가 가능할 수도 있다. 이렇게 개인은 각자의 생존과 행복을 위해 알아서 살면 된다. 다만 나는 행복한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순전히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행복한 사람이 주변에 많으면 나도 행복해지기 그만큼 쉬우니 다 같이 행복하길 바랄 수밖에 없다. 결혼과 비혼의 선택은 매우 중요한 인생 문제이기 때문에 이렇게 결혼해서 행복한 사람으로서 소수의견을 적극적으로 외쳐 세상에 균형을 맞춰보고 싶다는 소망을 정리해 봤다. 무엇보다 나와 내 가족이 보기 위한 글이지만 세상에 보여주고 싶기도 했던 터라 내심 불편했다. 내가 무슨 저출산이나 결혼기피 현상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돈키호테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하고. 이제 내가 결혼과 출산, 육아의 행복을 고백하는 이유를 정리해 불편한 마음을 다 정리했으니 남겨진 글들은 내가 그냥 각자 개인이 행복하길 바라는 것처럼 온전히 내 가족의 사랑이야기만 하면서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