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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니아빠 Dec 27. 2023

사랑의 관점에서 본 결혼정보회사

첫사랑이 이루어진 남자, 결혼정보회사를 긍정하다

"여보, 당신과 연애하던 10년이 나에게는 뭐랄까, 인생의 혁명? 뭐 그런 거였거든."

오늘따라 유난히 뒤척이고 쫑알대며 잠 못 들던 두 돌배기 아들내미를 겨우 재우고 나서 식탁에 앉은 부부. 남자가 먼저 운을 띄웠다.


"응 그렇다며.... 지금 들으면 한 서른세번째로 듣는 것 같은데?"

와이프는 여러 번 들은 말이었다. 자신이 그에게 있어 인생의 혁명과도 같은 존재라는 오글거리는 고백.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나 보다.  


"아 들어봐! 근데 분명 그래서 당신과 함께 지지고 볶고, 울고 웃고, 이야기하고 캔커피 하나도 나눠마시던 그런 기억들이 항상 생생하게 기억나면서 가끔 돌아보면 문득 목이 메는 그런 것들이었거든... 그런데 요즘 들어 그 기억들이 조금은 아득해지면서 예전과 같은 뭉클한 감흥까지는 안나는 것 같아..."


"큭. 뭐야! 나에 대한 사랑이 식은 거야?"


"아니 끝까지 들어봐! 그런데 당신에 대한 뭉클한 기억이 없어졌느냐, 애틋함이 사라졌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가 않아. 아니 사실 왜 그렇게 연애 때의 이야기들이 그렇게까지 뭉클했는지 이제 와서 이해가 잘 안 될 정도로 이제는 당신과 함께 우니를 낳은 기억, 같이 키우면서 시행착오도 겪고 당신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던 그 기억들이 더 생생한 애틋함으로 다가와... 이 기억들이 점차 당신과의 어렸던 날의 소중한 기억들을 대체하고 있다고. 너무 아쉽지만 어쨌든 그렇게 되고 있어. 그런데 어쩌면 있잖아. 당신을 만나 10년을 연애하고 비로소 조금이나마 사람구실을 하게 된 나, 그러니까 딱 결혼할 때 그 시점의 성장한 나와 그 시점의 당신이 선을 봐서 만나 결혼을 했어도 지금쯤이면 동일한 수준의 유대감과 애틋함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어. 그만큼 이 녀석은 정말 강렬하다고! 그런 생각이 문득 나서 말을 하고 싶었어. 그러니까 오늘도 수고 많았다고! 당신 그리고 나. 그리고 우니까지. 그러니까 우리!"


 내가 우리 부부의 연애 때부터의 역사를 우리만 구분할 수 있는 픽션을 섞어 글로 남겨보자는 생각을 한 계기이기도 하다. 서로를 사랑한다 속삭였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날도 많았던 날들, 그 상처를 함께 극복하며 비로소 자신부터 사랑하며 상대방도 사랑할 수 있게 된 우리의 역사가 점점 흐릿해지는 게 너무나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연애에 대한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 이토록 강렬했던 나는 평소 선을 보거나 결혼정보회사를 통한 결혼에 대해 원래는 다소 부정적이었다. 딱히 논리적으로 정리된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냥 거부감이 먼저 들었다. 사랑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에게 탄탄한 지지대가 되어주는  인생의 여정을 결혼이라 생각하는 나에게 '거래'의 느낌이 드는 '결혼', '정보', '회사'라는 단어의 결합은 그렇게 좋게 와닿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좀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잘은 모르지만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성숙한 사람이 평생 함께할 인연을 만나지 못해 전전긍긍한다면 결혼정보회사도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선택지는 아닌가 하고. 주변에 결혼할 여건도, 인격도 되고 남음에도 불구하고 '결혼할 사람이 없다.'며 반려자 찾는 일을 아예 놓아버린 남녀가 꽤 많은 최근의 상황과 결혼과 출산, 육아를 통해서 비로소 신도 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내 입장이 뒤섞여 그런 생각으로 이끌었다. 뭐, 심지어는 조금 덜 성숙했더라도 상대방의 고생을 알아주는 진심의 능력만 있으면 어차피 인간으로 성숙해 가는 건 평생 미완의 과제일 테니 남녀가 함께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까지 낳아 열심히 키워보는 일은 인생에서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아예 요즘같아서는 도전해 볼 만한 정도를 넘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가치있는 일 아닐까도 싶다. 물론 결혼에 대한 관점은 중요하다. 누군가와 인연으로 맺어진다면 내가 그 사람을 반드시 지켜주겠다는 책임감과 각오는 결혼을 하고자 하는 남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다만 그것만 있으면 혼자서만 살아가는 것보다 반려자를 만나 살아가는 것이 여러모로 인생을 살만하게 해 줄 뿐이다. 그 생각이 서로의 책임감 있는 행동을 이끌고, 그를 통해 서로의 유대감을 만들어주어 그들의 관계와 각자의 인생까지 탄탄하게 만들어 줄 테니.

  

 여기에 아기를 낳고 키울 수 있으면 인간은 더할 나위 없이 강해진다. 더 강해진 책임감은 더 강력한 헌신을 이끌고 그 헌신은 그 자체로 행복한 동시에 헌신을 통해 받은 아기로부터의 사랑은 그 사랑을 함께 마주한 부부의 유대감과 사랑까지 더 깊게 이끈다. 아기를 낳고 나면 행복의 조건은 더 단순해진다. 나름 거액을 쓰며 하던 신혼부부의 데이트도 어느 순간부터는 익숙해지고 무료해졌다. 주말에 뭘 해야 재미있을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 평일의 스트레스가 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아기를 낳으면 그냥 아기가 잘 먹고, 싸고, 자는 하루도 행복하고 감사해진다. 때로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놓고 같이 휴가를 써서 둘 만의 오붓한 점심만 먹을 수 있어도 환상의 데이트가 된다. 인생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과 현실을 잘 직시하기만 해도 가족 모두가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사함과 행복을 가지고 살 수 있다. 그렇게 아기를 키우면서 삶의 본질과 한계를 인정하고 포기할 것을 포기하는 순간 인간은 가장 자유로워진다. 그러니 누구더라도 각오만 되어있다면, 그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결혼의 기회가 연애를 통해 생기건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생기건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그 이후 삶의 무게는 연애를 10년 했든 3개월을 했든 늘거나 줄지 않는다. 서로 함께 살아나아갈 숙제만 앞에 있을 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023년, 이토록 좋은 결혼과 출산, 육아는 우리네 삶에서 실제로는 긍정적으로 회자되지 않는다. 결혼이 늪이라고 인식되고 출산과 육아는 이 늪을 더 깊게 하는 장애물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이해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이 하나의 인격체라면 너무 억울해할 일이다. 사실 결혼을 빼놓고서도 최근의 20대에서 40대에 이르기까지 행복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마땅히 포기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만으로 자유로워지는 삶의 진실을 통해서 본다면 우리가 인생을 배워온 방식 자체가 우리 세대 불행의 원인은 아닐까 생각해봐야한다. 우리는 인생에서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한계를 인정해 자유로워지는 법을 우리는 웃어른들로부터 배우지를 못했다. 그렇기에 순간이동으로 어딘가 갈 수 없는 우리 존재의 한계는 인정하면서도 모두가 매년 해외여행을 갈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현실적 한계는 인정하지 못해 우리 스스로 자유로워지지 못한다. 인생에 정답이 없는데도 정답이 있는 것처럼 배웠으니 실체 없는 정답을 남과 비교하면서 찾게 된지도 모른다. 책임의 가치보다는 권리를 먼저 배우고 권리를 누리는 대가보다는 권리를 누리는 법만을 배웠다. 헌신의 기쁨보다는 일방적으로 받는 사랑의 감사함을 강요받아 인생의 진정한 맛을 알기 어려워졌다. 이렇게 정리하고보니 시대가 급격히 변해서인지 우리는 지금 시대에서 불행할 방법만을 우리 웃어른들에게 배운 것 같기도 하다.


 결혼이 인생의 늪이라 낙인 찍인 사회에서 결혼을 통해 행복한 사람이 선언한다. 우리는 더 이상 결혼과 출산이 의무가 아니라는 것을 더 적극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의무가 아니기에 필사적으로 배제할 필요도 없다. 우리의 웃어른들은 결혼과 출산이 의무였고, 그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자 있는 사람으로 비쳤다. 의무였으니 깊은 고려보다는 당장의 의무로 어찌 보면 자신에 대한 성찰도 없이 결혼을 '막'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그 안에서 사회에서 결혼한 사람으로서 사회적으로 강요된 것들을 이행하다 보니 결혼이 서로를 구속하는 것도 맞았다. 그래서 많은 경우 결혼은 늪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늪인 결혼은 피하고 반려자와의 진실한 인생을 살 수 있는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다.


 어차피 인생은 그 자체로 구속이다. 우리는 신체에 묶여 제한된 공간과 시간을 살아간다. 그래서 결국에는 답답하고 어차피 외로운 것이 삶이다. 그렇기에 인간에게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말 좋은 것이다. 번식이 본능이듯 서로를 닮은 아기를 키워가는 것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이다. 누구나 결혼과 출산, 육아를 통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행복한 사람은 결혼과 출산과 육아를 해낸 사람 중에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다. 인간의 본능을 현실적인 범위에서 가장 최고로 충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길이 쉽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인생은 그 자체로 위험하고 어려운 것이다. 그나마 운 좋게 의료기술이 발달해 산모와 유아 사망률도 낮아지고 다양한 안전장치들이 생기면서 인류 역사를 통틀어 상위 0.1%의 삶을 지금 살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인생은 여전히 위험하고 어렵다. 언제라도 불의의 사고가 날 수 있고 희귀 질환도 발생할 수 있다. 그 위험을 받아들이고 그 위험이 오늘 현실이 되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머리로 생각하기에 쉽지만 실제 체감하고 감사하고 사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오늘은 감사할 수 있다는 것도 능력이다. 그런데 그 능력은 잃으면 안 되는 소중한 존재들이 내 옆에 생기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며 삶을 고찰하는 것을 통해 가장 잘 배양할 수 있다.


 최근 변화된 나의 이런 생각은 결혼의 본질을 드러내준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연애 때 대화 주제는 다소 다양했다. 데이트하면서 마주친 풍경의 아름다움, 수강한 과목의 어려움에 대한 토로, 사회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 서로의 인생관과 미래 계획 등등 분류하기도 애매할 정도로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대화주제를 정리해 보면 아기의 양육과 교육, 우리 가구의 경제, 이 두 개로 축약된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바로 앞에 당면한 과제들이다. 첫사랑과 연애를 해 결혼에 골인을 했든 선을 봐서 결혼을 했든 결국 서로를 먹여 살리는 데에 앞으로의 삶이 집중될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한다. 인생의 고난을 넘어 서로를 먹여 살리고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결혼의 본질이니까. 그러니 더더욱 결혼의 경로가 연애건 결혼정보회사건 무슨 상관인가? 오히려 투명한 정보를 공개하고 서로 최소한 감당할 수 있는 조건을 소통해 가정을 일구는 것도 최선의 방법은 아닐 지언정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결혼과 출산을 최근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부정적으로 보거나 배제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지 결혼을 누구에게나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은행원으로서 지방 도시에서 수많은 근로자들의 대출을 심사하며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누구나 결혼과 출산에 대해 준비될 수는 없다는 것을. 이 부분은 또 한 권의 책이 필요하고 본인이 남자로서 주변의 많은 걱정에도 불구하고 육아휴직을 쓴 이유들 중 매우 중요한 이유와 엮여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결혼을 긍정하는 것은 그저 정말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도 결혼과 출산을 배제하는 사회에서 균형을 맞추고 싶을 따름이다. 우리나라는 결코 OECD에 있는 국가 치고는 결혼하고 출산, 육아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30대가 절반도 결혼하지 않거나 평균 합계출산율이 0.7이 될 수준은 아니다. 내 주변만 돌아봐도 생각보다 많은 미혼자들이 막상 깊게 이야기를 해보면 다른 사람과 인생의 여정을 함께할 준비가 되어있다. 어쩌면 마음에 흉터와 트라우마 투성이인 나보다는 훨씬 그들의 인격이 성숙되어 있고 그에 따라 더 결혼생활을 잘할 준비가 되어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결혼을 단순히 한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그 과정에서 마주치는 고난을 함께 헤쳐가는 그 이상이라고 생각해 마음 속에서 결혼에 대해 더 큰 장벽을 두고 살아간다. 딱 그것 정도만 나는 걷어내어 보고 싶다. 그냥 내가 지금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기에 이 행복을 더 많은 사람들이 누렸으면 하는 소망이다. 그래서 준비와 여건이 되어있는 사람들도 막연히 이 좋은 걸 배척하는 것만 막고 싶다. 그리고 딱 그 뿐이다. 마음 같아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결혼과 출산, 육아까지 '추천'하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는 나라라서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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