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생각, 결혼에 대한 생각, 산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늘 해왔지만 내 이 모든 생각의 가장 중대한 사건은 출산과 육아였다. 저출산 문제가 아이를 낳기 전에는 막연한 사회문제로 다가왔다가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문제로 다가온다. 누군가 수백 수천조를 줄 테니 지금 내 아이를 잉태하기 전으로 돌아가라 한다면 나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우연의 굴레가 수억 분의 1만 어긋나도 지금 사랑하는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결국 나는 수천조를 넘게 가진 셈이다. 그런 나에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압도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수천조는 고사하고 돈이 '돈 따위'가 되어버릴 정도의 가치를 가진 진귀한 존재와 함께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으로 비춰진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낳고 나서도 아기가 그 정도까지 소중한 존재는 아니었다. 소중하긴 했지만 그 소중함의 의미는 생명체를 낳았다는 막중한 책임감과 각오 정도였다. 지금도 우리 아이가 태어날 때만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다. 와이프는 진통을 11시간 동안 겪다가 아이가 나올 기미가 잘 안보이자 제왕절개 수술에 들어갔다. 허리로 오는 진통이 굉장히 아프다고들 하는데 와이프도 진통이 허리로 와서 극심한 고통을 겪을 만큼 겪고나서야 수술을 통해 아기를 낳은 것이다. 와이프가 그렇게 아파하며 어린아이처럼 우는 것은 처음 봤는데 나 역시 아이가 태어난 날 태어나서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가장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와이프가 진통의 절정에 다랐을 때 울기 시작해 제왕절개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수술비 결제를 한 다음 분만실 밖으로 나와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그 모든 순간까지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아기가 태어나자 간호사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수술실 입구에서 아이를 보여주며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치아가 나 있다며 아기를 보여주셨다. 나는 아이에게 참 미안하게도 "산모는요? 산모는 괜찮나요?"하고 눈물을 훔치며 물어보고 아이는 그냥 보여주셨으니 보는 정도였다. 그때 간호사 선생님께서 아이의 잇몸을 드러내며 보여주신 아기의 치아는 기억나지도 않는다. 수술실에서 와이프가 병실로 돌아오고 나서도 아이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난 날의 기억이라고는 와이프 수술받고 회복하는 내내 질질 짜면서 우는 목소리 그대로 부모님한테 아이가 태어났음을 알리고 저녁에 와이프 기저귀를 갈아주며 피투성이가 된 기저귀와 붓기와 상처로 엉망이 된 와이프의 신체를 보며 또 울던 기억뿐이다. 돌아보면 참 모자라기가 그지없는 아빠였다.
반면 우리 아들 우니는 깊은 배려심을 갖고 태어난 아이 같았다. 예정일을 사흘 앞두고 새벽 양수가 터진 건 아마도 몸집이 작은 엄마가 더 힘들어하기 전에 나와주려는 배려로서 우리 부부에게 느껴졌다. 그 와중 우리는 그가 태어나기 이틀 전 초음파로 그를 마지막으로 보고서는 만개한 벚꽃과 개나리를 함께 보러 봄소풍을 다녔고, 그다음 날은 와이프가 친정엄마와 또 꽃놀이를 하고 오붓한 티타임까지 실컷 가졌더랐다. 아마 더 빨리 나올 수도 있었는데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꽃놀이마저 마칠 때까지 기다려준 배려가 아니었을까.
심지어 새벽에 양수가 터진 것도 우니의 배려였다. 친정이 당시에는 매우 멀었기 때문에 와이프는 만삭인 상태에서 오롯이 집에 혼자 있었다. 나는 아이가 언제 태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3월 말부터는 직장에서 일하면서도 정말 하루 수십 번은 불안감에 휩쓸리고는 했는데 그걸 알고 내가 와이프 곁에 있을 새벽에 몸을 요동처 양수를 터뜨린 것도 우니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싶다. 모든게 배려라 생각될 정도로 그가 양수를 터뜨린 시점은 너무 완벽했다. 우니의 태명은 체리였는데 그의 출산 예정시기인 4월 초에 피는 벚꽃, 영어로는 체리블로썸이 예쁘게 필 때쯤 건강하게 태어나달라는 소망이 섞여있는 태명이었다. 그렇게 우니는 우리 부부의 단 하나뿐인 소망을 들어줌과 동시에 수많은 것들을 배려해 주었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부끄럽다. 엄마 걱정에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하면서 이토록 배려해 준 갓난쟁이 아들의 탄생 시점에 충분히 축복해주지 못했다는 게.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와이프가 수술실에서 나와 마취약에 취한 채로 산소마스크를 쓰고 나와 추위에 온몸을 덜덜 떨며 눈이 풀려있는 와중에 똑같은 말만 여러 번 하는 사람이었다.
"체리 봤어? 당신 수고했어요."
이 말만 서너 번은 한 것 같다. 술 취한 사람이 똑같은 넋두리를 계속 하는 것처럼.
질질 짜는 것밖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과, 자기 자식 잘 봤냐는 말밖에 하지 않는 헌신적인 와이프였기에 그녀만을 걱정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을 수도 있다. 심지어 정말 부끄럽게도 나는 수고하지도 않았고 태어난 체리를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그토록 모자란 존재인 나였으니 그 작은 그릇에 너무 크나큰 존재인 와이프 걱정만 할 수도 있었겠거니 싶기도 하다. 그렇게 그때는 태어난 아이보다도 와이프가 훨씬 소중했다.
와이프가 2주 동안 산후조리원에 있다가 그 이후 3주 동안 산후조리사님과 함께 집에서 아기를 보고 나서야 나는 출산휴가를 써서 아기를 온전히 돌볼 기회를 얻었다. 품에 조그만 우니를 품고 달래다 같이 잠들기도 하고 분유도 직접 타먹이고 목욕도 직접 시키면서 가랑비처럼 부성애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업무로 복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귀여운 두 딸을 둔 직장 선배와 점심을 함께한 적이 있었다. 그 선배가 물었다.
"만약에 와이프랑 아들 둘 다 물에 빠졌고 둘 중 한 사람 밖에 못 구해. 그럼 넌 누굴 구할 거야?"
난 주저 없이 말했다.
"상상하기 싫지만 굳이 그런 상황이 있다면 지금 생각에는 와이프예요. 휴가 기간 동안 애정이 많이 생겼어도 자식은 또 낳을 수 있지만 와이프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 말에 선배는 이야기했다.
"하하, 제수씨를 많이 사랑하네. 그런데 지금은 그렇다해도, 곧 바뀌게 될거야."
이 말이 내가 대학 입학 이후 들었던 "지금은 그렇더라도 결국 너도 달라질거야."라는 말 중 들어맞은 거의 유일한 말이 되었다.
2023년 12월 현재, 아들 우니가 태어난지 2년 반이 훌쩍 넘어간 시점에서 나는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 내게 누가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아들 우니를 먼저 구할 것이다.
아이가 더 소중해져서가 아니다. 지금도 누가 더 소중하냐 묻는다면 도저히 한 사람만 고를 수 없다. 세상에 대한 미움 빼고는 아무것도 없던 나를 견뎌주며 사람의 구색을 갖출 때끼지 기다려주고 그것도 모자라 결혼까지 해주면서 15년을 넘게 함께한 와이프다.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들 와이프도 평생 그에 못지 않고 소중하다. 다만 둘 다 물에 빠졌을 때 아이를 먼저 구하는 것에 주저가 없어진 이유는 역지사지로 생각했을 때 너무 자명해진 하나의 사실 때문이다. 입장을 바꿔 내가 아이랑 물에 빠진다고 했을 때 와이프가 한 명만 구해야 한다면 나는 1초의 생각도 고민도 없이 아들을 선택하라고 할 것이다. 아이의 존재는 나에게 목숨보다 훨씬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아이 엄마가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육아를 함께한 입장에서 너무 잘 알고 있다. 이 사실 때문에 정말 상상하기 싫고 상상만 해도 짜증이 나서 목이 메이지만 누가 그런 상황을 가정한다면 와이프를 위해서라도 아이를 구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물론 그런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고 온다고 한들 둘 다 구해서 우리 세 명이 행복하게 계속 사는 게 최선일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서 이런저런 끔찍한 가정을 해보는 것은 우리 삶의 진실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 김에 한 가지 가정만 더 추가해 보겠다. 이번에는 내가 죽어야 와이프와 아들 둘이 살 수 있는 상황이 있다면?둘을 구하기 위해 내가 죽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런데 이 점에서 나는 사랑의 신비를 느낀다. 분명 예전의 나는 어떤 상황을 가정한다고 해도 죽는 게 두려웠다. 지금도 죽는 게 두려운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분명한 예외가 생긴 것이다. 이제 와이프와 아들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목숨이 전혀 아깝지 않다. 그렇게 보면 내 목숨값은 싸졌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데, 이상하게도 내 목숨은 아이를 낳기 전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이 비싸졌고 소중해졌다. 나의 평소 생활을 보면 나는 아이를 낳기 이전보다 내 스스로를 훨씬 아낀다. 음식도 건강에 훨씬 신경써 먹고 술도 거의 먹지 않으며 운동도 다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열심히 한다. 한 편으로는 한 없이 보잘것 없어졌지만 또 한편으로는 훨씬 소중해진 목숨에 대한 모순. 그것이 내가 경험하는 사랑의 신비다.
사랑이 인생에서 중요함을 넘어 모든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신비로운 화두가 된 이유를 따지고 들어가면 우리 부부가, 무엇보다도 내가 아들로부터 받은 사랑이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큰 사랑? 아니, 낳아보니 이제 알겠다. 부모가 아기에게 주는 사랑은 아기가 부모에게 주는 사랑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글에서 부모의 조건없는 사랑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조건없이 사랑을 주는 것은 아기들이다. 부모는 다만 자식에게 조건 없이 받은 사랑에 대한 은혜를 갚고 있을 뿐이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에 대한 진실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부모가 사랑을 주고 자식이 은혜를 갚는다고 알았지만 실상 완전히 반대였던 것이다. 사랑은 자식이 주고 은혜는 부모가 갚는다. 아기가 말을 못하니 겉으로 보기엔 부모가 말 못 하는 자식의 똥오줌을 치워가며 헌신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부모가 아이를 먹이고 재우는 것은 생명을 낳은 책임으로서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그 당연한 것을 해주는 대가로 아기들은 최선을 다해 살아가며 사랑을 준다.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머리도 가누기 힘들 때 발버둥치며 고갯짓을 하고 누워있는 상태에서 몸부림을 다해 뒤집기를 시도한다. 그러다가 결국 기는 데에 성공한다. 그렇게 혼신을 다해 움직이려는 목적이 무엇일까? 겨우 단 하나, 엄마아빠한테 가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혼신을 다해 옹알이를 한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어떻게든 말을 하려고 안간힘을 다한다. 그렇게 말하려는 목적은 또 단 하나, 결국 엄마아빠를 부르는 것이다. 부모를 사랑하겠다는 일념으로 아기들은 혼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다. 그 사랑이 너무 깊은 나머지 부모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듣지 못해도 그것을 다 느낀다. 부모가 잘 살 건 못살건 집에서 녹물이 나오건 상관없다. 부모는 아이를 낳고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는 순간 세상 최고의 존재가 된다.
한 편 많은 지금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이런 고백을 일종의 '감성팔이' 혹은 곧 지나갈 잠깐의 추억으로 생각하고 2023년 한국의 냉혹한 육아와 교육의 현실을 말할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말한다. 나는 슬럼가에서 중학교를 다니면서 방황에 나쁜 짓을 저지르는 수많은 청소년을 보았고 나도 한 때 그들에 속했지만 거기에도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은 착한 아이들이 있었다고. 그리고 우리가 흔히 나쁜 환경이라고 말하는 곳에서 마저도 올곧은 아이들의 비결은 사랑이라고. 지금도 기억난다. 중학교 때 '기술과 가정'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지금도 왜 그렇게 과목을 구성했는지 이해는 안 가지만 기계를 다루는 법과 옷을 꿰매는 등의 가정적인 일을 모두 그 시간에 배웠다. 일명 '기가 시간'이라고 불렀다. 공부도 반에서 상위권이고 굉장히 착하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있었는데 어느 날 기가 시간에 "아빠가 엄마의 집안일을 잘 도와준다, 하는 사람?" 하는 기가 선생님의 질문에 손을 번쩍들었다.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등 행실이 좋지 않은 아이들 중에서 이 질문에 손드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행실이 좋지 않은 아이들과 이야기해 보면 그들의 가정에는 불화와 폭력, 서열의 지배가 일상적이었다. 그런데 슬럼가 중학교에서 도처에 담배 피우고 폭력을 행사하는 아이들이 많던 와중에도 성실하고 착했던 그 아이는 주저 없이 손을 들었다. 당시로서 아빠가 엄마의 집안일을 잘 도와준다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그는 슬럼가에서 공부도 잘하고 약한 이를 괴롭히지 않는 소수였지만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 소수이기도 했던 것이다.
나는 은행에서 소득과 자산이 많지 않은 사람들에게 저금리로 전월세자금과 주택구입자금을 대출해 주는 정부지원 상품을 총괄하던 팀에서 해당 업무를 맡으면서 알게 되었다. 언론에서는 다들 결혼하지 않는다고 난리지만 우리나라 한 편에서는 정말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결혼하며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그분들 중에서는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면 우리 아이가 뒤처지거나 어긋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분들에게 꼭 이야기해 주고 싶다.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서로를 사랑하는 부모가 사랑으로 최선을 다해 자식을 키운다면 그 자식은 결국 인생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며 자신도, 또 다른 사람도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오히려 넉넉하지 못했던 성장 환경에서 사랑을 받으며 살아간다면 그것이 자신의 생명력을 더 강하게 계기가 되어줄 것이라고. 부모가 서로 사랑하고 그 사랑이 자녀에게도 전해진다면 부족한 환경은 오히려 아이를 위한 신의 한 수가 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아이가 엇나가기 힘들다는 사실은 어찌보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사랑하면 존중하고 경청하게 된다. 사랑하는 가족 사이에는 불운한 정신질환이 아닌 이상 폭력도 깃들지 않는다. 이것까지는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사춘기를 완전히 지나기 전까지 부모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 부모가 올바르게 살고 서로를 사랑하며 존중하면 그 보호 아래서 자라나는 아이는 사랑과 존중을 배울 수밖에 없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중할 줄 아는 존재가 되면 가장 먼저 사랑하고 존중하게 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자신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알면 남도 사랑하며 존중할 줄 알게 된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남에게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남에게 가치 있는 것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돈을 벌며 자기 스스로를 건사할 수 있게 된다. 자기 스스로를 건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존중과 사랑이 몸에 밴 사람은 매력이 없기가 힘들다.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기 때문에 똑같이 사랑과 존중이 몸에 밴 누군가가 그와 사랑에 빠지고 그렇게 행복과 사랑이 그들의 뫼비우스의 띠가 될 것이다.
그렇게 이번에도 사랑만이 결혼의 현실이며 여기에 출산과 육아도 예외는 아니라고 나는 외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게 맞으니까.
이렇게 사랑이 결혼과 그 이후의 삶의 모든 것이라는 진리에는 우리 삶에 또다른 진실을 하나 시사한다. 바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행복만 추구해도 된다는 것이다. 아니 누구든 자신의 행복이 최우선이라는 것이다. 많은 젊음들이 부모에게 누가 될까봐 자신의 진로를 자유롭게 결정하지 못한다. 마냥 어린 날의 꿈으로 진로를 결정할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진로를 결정하는 현실 속에 '효도'라는 단어가 있어선 안된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고 고마워해서 효도하려는 마음은 아름다운 것이나 그것은 결코 의무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미 자식은 어렸을 적 부모에게 모든 효를 다했다. 그러니 부모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결정을 자기 자신의 온전한 의지로 내릴 수 있다. 자신의 건강과 행복이 어쩌면 가장 큰 효도다. 그것을 잊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수많은 젊음들을 응원하고 싶은 메시지인 것 같지만 어쩌면 나한테 가장 간절히 하는 말이다. 혹시나 내가 받은 우리 아이의 조건없는 사랑을 잊고 딴 생각을 품을까봐. 딴 생각 품지 말고 현실적으로 살아야 한다. 즉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